어렸을 때 어머니가 시장에서 '몰'을 사다가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 주었던 몰무침이 생각난다. 입맛 없을 때 짭조름한 그 몰무침 한 볼태기 하면 밥맛이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밥상에서 이 몰무침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그 몰무침을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몰’은 우리 여수 말이고 정식 이름은 ‘잘피’다. 잘피를 우리 여수 말로 ‘몰’ 혹은 ‘몰캥이’라고 한다.
이 ‘잘피’는 여러해살이 바다풀로 속씨식물이다. 부추처럼 잎이 작은 갈대 모습이다. 유성생식을 하고, 여름에 줄기 중 하나가 생식기로 변해 여기에서 암꽃 수꽃이 생겨 수분을 하고 씨앗을 맺는다. 바다 바닥에 떨어진 씨앗은 겨울에 발아해 새로운 잘피가 된다. 잘피의 성장과 번식은 벼와 비슷하다.
‘잘피’는 바닷속 물고기의 보금자리 산란장이다. 바다숲을 이루어 바다 생태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잘피는 수질 정화, 산소공급, 온실가스 제거, 물고기의 은신처와 산란장, 바다생물의 숲이 된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홍수가 나고 산사태가 나듯이, 바다에 잘피가 없으면 해저토양이 씻겨 나가고 바다식물과 생물이 사라진다. 바다식물과 생물이 사라진다는 말은 ‘바다사막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육지만 사막화되는 것이 아니라 바닷속도 사막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갯녹음현상’이라고 하는데, 이 바다의 사막화는 20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산업화 도시화로 생활 하수, 산업폐수, 어로 기술 발달, 양식 남발 등의 바다숲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황폐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바다사막화’(갯녹음현상) 해양오염과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바닷속 탄산칼슘(석화가루)이 바닥이나 바위 등에 하얗게 달라붙어 바다를 알칼리성으로 바꾸는데, 이는 중성조건에서 광합성을 하는 해조류가 살아남기 어려운 현상을 만드는 것이다.
영양물질을 만들고 바다생물의 1차 먹잇감이 되는 바다숲의 뿌리가 되는 해조류가 자연 암반에 서식하지 못하고 점점 말라 죽게 된다는 것, 이렇게 되면 바닷속은 사막처럼 점점 황폐화가 가속화되고 이렇게 하여 바다식물과 생물이 사라지고 그들이 하던 역할이 사라지게 된다.
갈수록 폭염, 열대야가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상기후 때문이며, 이것은 온실가스 과잉이 그 원인이다. 온실가스를 흡수하던 자연이 파괴되면서 지구의 이상기후, 온난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도시화가 심화되기 전에는 산림, 토양, 바다, 습지 같은 자연이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를 흡수, 격리하면서 탄소순환의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해 왔다.
이렇게 바다도 그 일익을 잘 담당해 왔다. 바다숲은 광합성 작용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그 속도가 육지의 숲보다 50배 이상이나 빠르고, 이산화탄소 저장 용량은 5배 이상이나 많아서 온실가스 문제의 상당부분을 해소해 왔다.
그런데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산업화 도시화를 가속해 오면서 바다숲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많이 훼손되었다. 흡수되지 못한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위기는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다.
‘바다의 사막화’(갯녹음현상)를 줄이고 바다숲을 살리는 것은 곧 인류를 환경재앙에서 구하는 길이고 파괴되어 가는 지구를 살리는 길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사막화된 육지숲을 복원하기 위해 나무를 심듯이, 바다숲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해조, 해초류를 심어야 한다. 건강한 바다를 회복하기 위해서 바다숲에 잘피, 감태, 모자반, 등 다양한 해조, 해초류를 다양하게 많이 심어 연안생태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바다식물들이 착근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하고 거기에 작은 옆새우, 요각류, 곤쟁이들이 돌아오고 해마 등 바다생물들이 돌아오게 해야 한다.
잘피는 해양생물의 보금자리이자 바닷속 탄소흡인 원인 ‘블루카본’이다. 잘피숲은 퇴적층을 포함한 약 10ha 규모의 잘피 서식지가 자동차 2,800대가 1년간 배출하는 탄소량과 비슷한 탄소 약 5,000톤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산림보다 온실가스 흡수량이 30배 이상 많다. 그래서 유엔 Ipcc는 잘피를 3대 블루카본 중 하나로 선정했다.
잘피숲이 바다숲으로 복원되게 하면 탄소흡수 외에도 복원 전 대비 인근 생물 개체수가 2.5배 증가, 생물 종류가 1.5배 증가, 다양성 지수는 1.2배 증가하게 된다.
생활하수, 산업폐수, 양식업 관리, 어로 방법 개선, 그리고 잘피 해조 해초류의 이식 등의 활용을 통해서 바다를 살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50년 전부터 잘피이식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잘피이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지역이에서도 빨리 활성화 되어야 한다. 바다생태계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우리 지역 해안의 잘피가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지역의 바다가 심각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항구도시인 우리 지역이 바다 생태계의 지표인 잘피가 죽어가는 것을 손 놓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존을 방치하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고, 우리의 건강한 삶을 방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몰무침을 밥상머리에서 다시 마주 대하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건강한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수 있을까? 바다숲을 이루는 잘피를 잘 보호하고 관리하여 건강한 바다를 회복할 때 지난날의 건강한 삶의 기억이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정한수 의장(여수환경운동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