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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가 이렇게 낭만적인 새인지 몰랐네요"

자주 하늘 보시라, 흑두루미떼가 하늘 지나는 풍경 볼 수도 있으니

  • 입력 2025.03.18 07:43
  • 기자명 김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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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습지 입구에 위치한순천만자연생관과 순천만 천문대줄다리기 하는 인형들이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순천 사람들 같다 ⓒ김용자
▲순천만습지 입구에 위치한순천만자연생관과 순천만 천문대줄다리기 하는 인형들이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순천 사람들 같다 ⓒ김용자

3월의 봄빛이 완연한 지난 11일. 친구들과 함께 아직 떠나지 않은 철새, 흑두루미를 보기 위해 전남 순천만습지를 찾았다. 이곳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매년 수천 마리의 철새가 머물다 떠나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습지 입구 왼쪽에는 새벽 드론 촬영을 통해 기록된 겨울철새 모니터링 결과가 게시되어 있었다. 그날 순천만에서 관찰된 흑두루미는 3871마리. 재두루미와 검은목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기러기류 등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해설사 설명에 따르면 올겨울 이곳을 찾은 흑두루미는 약 7600여 마리였다고 한다. 절반 가까이가 아직 북으로 떠나지 않은 셈이다.

▲겨울 철새 모니터링 결과2025년 3월 11일 순천만 습지 입구 왼쪽에 게시된 겨울철새 ⓒ김용자
▲겨울 철새 모니터링 결과2025년 3월 11일 순천만 습지 입구 왼쪽에 게시된 겨울철새 ⓒ김용자

보통 흑두루미는 10월 중순쯤 남쪽으로 날아와 겨울을 나고, 3월이 되면 다시 먼 길을 떠난다. 서산을 지나 대동강 유역,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 아무르강까지의 긴 여정. 봄철 번식지로 북상할 때는 한 달이면 도착하지만, 가을철 월동지로 내려올 때는 두 달이 걸린다. 어린 새끼들과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곳이 있으면 쉬어가며 천천히 남하하는 것이다.

람사르 탐조길에 접어들자, 멀리서 흑두루미의 낯선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신비로운 소리에 감탄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외쳤다.

"헛, 저기 진짜 흑두루미가 있어!"

모두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달려가 보니, 논두렁에 홀로 남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해설사는 짝을 잃은 흑두루미라고 설명했다.

두루미는 평생을 짝과 함께하는 새다. 부부애가 깊어 한 마리가 다치면 다른 한 마리는 끝까지 곁을 지킨다고 한다. 짝을 잃으면 한동안 홀로 머무르다 떠난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감탄했다.

▲울타리 너머에 뭐가 있을까?울타리 너머로 흑두루미 보고 있는 필자의 친구들 ⓒ김용자
▲울타리 너머에 뭐가 있을까?울타리 너머로 흑두루미 보고 있는 필자의 친구들 ⓒ김용자

길을 따라 걸을수록 흑두루미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갈대 울타리 사이로 수많은 흑두루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갑자기 하늘에서 한 무리가 일제히 내려앉았다.

경이로운 풍경들... 흑두루미 보호 나선 순천시

그 장관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누우 떼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군무. 키 1m가 넘고, 날개를 펼치면 1.8m에 이르는 흑두루미들이 볍씨를 먹고 있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흑두루미식사 순천시에서 제공하는 유기농 볍씨 먹는 모습 ⓒ순천시
▲흑두루미식사 순천시에서 제공하는 유기농 볍씨 먹는 모습 ⓒ순천시

순천시는 흑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09년 흑두루미의 주요 서식지를 생태계보호지구의 전선 충돌을 막기 위해 전봇대 282개를 뽑고 62ha 규모의 '희망농업단지'를 조성했다.

농민들은 유기농 농법으로 벼를 재배하고, 수확한 볍씨 일부를 흑두루미를 위해 남겨둔다. 한 마리가 하루에 먹는 볍씨는 약 227g, 6,900알 정도 된다고 한다. 흑두루미를 위해 한 도시가 한마음으로 보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흑두루미는 야생에서 25~30년을 산다고 한다. 예로부터 두루미류는 장수의 상징이자, 기품과 행운을 의미하는 새. 우리의 조상들은 문관의 관복에 학을 수놓았고, 울산에서는 학춤을 추며 그 뜻을 기렸다. 그들의 우아한 몸짓과 끈끈한 가족애를 떠올리며, 자연이 준 또 하나의 깨달음에 숙연해졌다.

탐조대에 도착하니 20m 거리에서 흑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었다. 2층에 마련된 망원경을 통해 더욱 가까이 들여다보니,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가는 두루미들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2009년부터 시작된 흑두루미 보전 노력으로 흑두루미와 인간의 경계거리가 1㎞에서 20m까지 가까워진 것이다.

▲이렇게 가깝게 볼 수 있다니탐조대에서 바라본 20m 거리 흑두루미 ⓒ김용자
▲이렇게 가깝게 볼 수 있다니탐조대에서 바라본 20m 거리 흑두루미 ⓒ김용자

돌아오는 길, 순천만 습지 전시관을 들렀다. 갯벌의 역사와 생태적 가치, 철새들의 이동 경로를 자세히 배우고, 망원경이 설치된 순천만 천문대도 들러서 다시 한 번 더 볍씨를 먹고 있는 흑두루미 무리를 망원경으로 볼 수 있었다.

▲순천만자연생태관 내부습지생물들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필자 친구들 ⓒ김용자
▲순천만자연생태관 내부습지생물들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필자 친구들 ⓒ김용자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는 순천의 시조(市鳥)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보호받고 있다. 순천시는 이 소중한 새를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매년 2월 28일을 '순천만 흑두루미의 날'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연다. 3월 중순까지는 흑두루미를 볼 수 있다고 하니, 가족과 함께 꼭 탐조 여행을 즐겨보길 추천한다.

특히, 동이 틀 무렵 갯벌에서 순천만 하늘을 가로질러 농경지로 향하는 흑두루미들의 군무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황홀한 장면이다.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흑두루미의 자연 월동지 순천만.

매화 향이 짙어진 3월,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봄을 찾으러 떠난다. 순천만 흑두루미도 봄철 상승 기류를 타고 장거리 비행 연습을 하는 시기다. 흑두루미들도 곧 순천을 떠나 먼 길을 떠나겠지. 하지만 10월 20일 즈음이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흑두루미 군무해질무렵 하늘을 나르는 흑두루미 모습은 장관이다 ⓒ순천시
▲흑두루미 군무해질무렵 하늘을 나르는 흑두루미 모습은 장관이다 ⓒ순천시

3월 15일 아침, 순천만 습지 보전팀에 따르면, 또 천 마리의 흑두루미가 떠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으니 떠나는 흑두루미들의 여정이 어떨지 상상해보게 된다.

자주 하늘을 보시라, 흑두루미가 V자 편대로 여러분이 사는 도시의 하늘을 지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굿바이, 흑두루미. 내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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