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이 걸었던 '눈물의 길'을 따라 순천역에서 벌교를 거쳐 소록도까지 걷는 길 3일째(3월 29일) 일정은 남양면에서 고흥읍까지다. 흐린 날씨라 걷기는 좋았지만 손이 시릴 정도로 바깥 날씨가 차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주말이어서일까? 남양면 사무소 인근에 왔는데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득량만을 바라보며 징검다리처럼 펼쳐지는 드넓은 갯벌에 물드는 노을빛이 아름답다는 '증산일몰전망대'를 지나 '우도레인보우교'로 갔다. 남양면 남양리 1311번지에 있는 우도는 남양면에 위치한 증산마을에서 하루 두 번 물이 빠졌을 때 약 1.2㎞의 '노두길'을 건너면 갈 수있다.
원래 섬 연안에 소머리 모양의 가로 1.3m 세로 8m 가량 되는 바위가 있어 '소섬' 또는 '쇠이(牛耳)'라 불렀으나 임진왜란 때 대나무로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여 '우죽도(牛竹島)'로 불리다가 '죽(竹)'자를 없애고 '우도'라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도시에서 살고 승용차만 타고 다니다 고흥 옛길을 따라 걸으니 도로 주변에는 식품공장과 농기계정비공장이 많이 보인다. 농촌에도 기계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순천역에서 벌교역, 벌교에서 녹동을 향해 계속 걸었더니 엄지발톱에 문제가 생겼다. 피멍이 든걸 보니 도보여행을 마치면 오른쪽 엄지발톱이 빠질 것 같다. 까짓것 뭐 훈장으로 여기지 뭐. 그러다 한하운의 <전라도 길> 시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天安)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西山)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가도 천 리(千里) 먼 전라도 길.
고흥갑재민속전시관...고흥의 옛 정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
고흥에는 주요한 생활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놓은 3개의 전시관이 있다. 3개 전시관이란?
고흥분청문화박물관 - 고흥의 역사문화, 분청사기와 설화 문학 자료 1200여점 전시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문학관 – 예술인 2대의 삶과 문학, 가족 이야기 1280여 점 전시
고흥갑재민속전시관 – 고흥의 근현대 생활문화와 생업 관련 민속유물 1250여점 전시
고흥군 두원면 두원운석길 9에는 (구)운대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8년 6월 25일에 민속전시관으로 개관한 '고흥갑재민속전시관'이 있다. 아픈 다리도 쉬어 갈 겸해서 들어가니 담당자가 "박물관 설립자를 불러드릴까요?"라고 질문에 "좋다"고 했다. 설립자가 올 동안 전시실을 둘러보니 옛 추억이 깃든 생활유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민속전시실 – 고흥의 사계절을 주제로 한 민속용품 100여 점 전시
학교 – 일제 강점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학교에서 사용하던 자료 150여 점 전시
마당 – 1960~1970년대 마당에서 사용하던 도구 등 생활용픔 50여 점 전시
집안 – 1980년대 고흥지역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픔 500여 점 전시
기타 시설 – 민속유물 750여 점을 모아둔 개방형 수장고
전시관에서는 생활, 놀이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전통 민속놀이, 농기구, 다도, 염색체험 등 상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실을 돌아보고 있는데 설립자가 오셨다. 인자한 얼굴을 한 설립자와 대화를 나눴다.
"갑재라는 명칭에 무슨 뜻이 있습니까?"
"어릴 적에 부모님이 부르던 이름이 갑재였습니다. 제가 유물을 모으게 된 계기는 어릴 때 영광법성포 큰집에 제사 지내러 갔을 때 옛 물건이 정겹게 다가왔어요. 고흥과 여수 등지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민속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수집한 자료가 많이 쌓이자 동강매곡초등학교에서 박물관을 운영하다가 고흥군에 기증해서 현재 고흥군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학교' 전시실이라고 한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교복을 입고 기념사진 촬영하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라고 말한 이기재 선생에게 수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돈이죠 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흥 읍내가 가까워지자 도로변에 노인요양병원과 노인전문병원 치매전담병원 등 노인과 관련된 병원이 줄줄이 서있다. 많을 때는 7만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는데 현재 고흥은 대표적인 인구 소멸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어 안타깝기만 했다.
아름다운 경치와 비옥한 농토,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는 고흥을 살릴 방도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