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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르포] 필리핀 3일간의 봉사 현장에 다녀오다

셔터를 누르기 전, 나는 먼저 마음을 눌렀다

  • 입력 2025.08.04 20:15
  • 수정 2025.08.04 20:18
  • 기자명 정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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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에서 출발전 단체사진 ⓒ정종현
▲ 인천공항에서 출발전 단체사진 ⓒ정종현

셔터를 누를 때마다 마음이 떨렸다. 필리핀 3일간의 봉사 현장에서 셔터를 누르기 전, 나는 먼저 마음을 눌렀다. 무엇을 찍을지보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2025년 7월 26일부터 31일까지. 나는 여수지구촌사랑나눔회의 필리핀 산페드로시 의료봉사 현장에 사진가로 동행했다. 카메라로 기록한 이 3일은, 단지 '촬영'이 아닌 '동행'이었고, 그 안엔 눈물과 땀, 미소와 존엄이 뒤섞인 찰나들이 빛나고 있었다.

▲ 진료를 받기위해 기다를는 환자들 ⓒ정종현
▲ 진료를 받기위해 기다를는 환자들 ⓒ정종현

카메라가 마주한 첫 장면, '기다림'

봉사 첫날 아침, 임시 진료소(농구장)에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을 찍으며 나는 잠시 멈췄다.
그 얼굴들에 절실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떤 이는 아픈 자식을 품에 안고 있었고, 어떤 이는 몇 시간째 가족과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렌즈를 들면서도 나는 조심스러웠다. 그 장면을 훔치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존중하기 위해.

▲여수제일병원 강병석 단장이 귀가 아픈 환자를 진료하고있다 ⓒ정종현
▲여수제일병원 강병석 단장이 귀가 아픈 환자를 진료하고있다 ⓒ정종현

진료실 안, 땀 흘리는 사람들의 손

의료진의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땀에 젖은 이마, 굽은 허리, 통역 도움이의 목소리, 그리고 환자의 눈동자 하나하나가 사진 속에서 ‘진심’으로 남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여수제일병원 강병석 원장이 귀가 아픈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을 이었다. 그 한 컷에 ‘의사’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고 나는 믿는다.

▲ 도시락을 전할 때, 셔터가 아닌 마음을 눌렀다 ⓒ정종현
▲ 도시락을 전할 때, 셔터가 아닌 마음을 눌렀다 ⓒ정종현

수재민 대피소에 도시락을 전달하던 날. 맨발의 아이들, 알몸의 아이들, 아름다운 기다림의 눈동자...

카메라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지만, 그들과 눈을 맞추는 순간들에는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사진보다 더 강하게 남은 건, 부족한 발음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두 손으로 도시락을 받던 가족들 떨리는 손이었다.

▲ 수상가옥 어린이들, 기뻐하는 모습들 ⓒ정종현
▲ 수상가옥 어린이들, 기뻐하는 모습들 ⓒ정종현

마지막 날, 의료봉사자 전원이 쌀, 빵, 옷 가방을 들고 낡은 다리를 건너 어린이들 한명 한명에게 전달을 할때, 나는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다리는 단순한 나무 구조물이 아니었다. 삶과 삶을 잇는 다리,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

아이들이 그 다리를 건너며 보인 표정은, 그 어떤 사진 촬영보다 진짜였다.

▲ 드론으로 영상 촬영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환자들의 밝은 모습. ⓒ정종현
▲ 드론으로 영상 촬영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환자들의 밝은 모습. ⓒ정종현

3일간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카메라에는 수천 장의 이미지가 남았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단 한 장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 많은 아이의 미소. 그리고 그 아이를 바라보는 의료진들의 따뜻한 눈빛. 나는 사진가로서 이 봉사에 참여했지만, 사실 가장 많은 위로를 받은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 접수를 기다리는 환자들ⓒ정종현
▲ 접수를 기다리는 환자들ⓒ정종현

이번 봉사에서 내가 느낀 것은, 사진은 증거가 아니라 다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 변화의 순간을 ‘기록’하고, ‘공유’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힘. 그게 내가 이 봉사를 통해 배운 진짜 ‘사진의 역할’이었다.

▲ 3일째 진료 끝난 후 단체사진 ⓒ정종현
▲ 3일째 진료 끝난 후 단체사진 ⓒ정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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