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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포즈하기 전에 "불이야"... 이런 게 운명?

  • 입력 2014.03.25 15:47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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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차곡차곡 돌탑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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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란 시작하기 전이 가장 멋지다."

<고독한 밤의 코코아> 저자 다나베 세이코는 이렇게 말했다. 연애란 코코아처럼 달콤할 것 같지만, 사랑하면 할수록 더 고독했던 밤이 있다는 사실.연애해 본사람은 다 안다.

누구나 남부럽지 않은 ‘러브스토리‘를 지니고 산다.이 글은 읽는 독자 역시3박 4일도 모자랄 한 보따리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연애에 관한 기억은 세월이 쌓여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첫 프러포즈, 결혼기념일은 크리스마스이브

나의 결혼기념일은 좀 특별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녀를 만나 이브 날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연애에서 결혼까지 산뜻하게딱 일 년 걸렸다. 결혼식 날 첫눈이 소복이 내렸다. 첫눈이 오면 잘 산다는데 현실은 그것도 아닌 듯싶다. 중년이 되어도 큰 돈 벌어놓은 것 없이 아등바등 살기 바쁘다. 축복이 꼭 돈뿐이겠는가마는 돈에서 해방될 날은 언제쯤 올는지…….

하지만 연애 시절만큼은 즐거웠다. 손만 잡아도 전기가 통했던 그 시절.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보다 왠지 형님께 미안함이 떠오른다. 당시 함께 자취하던 형님의 애마 빨간 프라이드를 빌려 타고 그녀와 드라이브를 떠났다.

그때는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되어 운전이 서툴렀다. 한적한 시골 길에 접어들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우 이영하씨가라디오에출연해선우은숙씨와 연애 시절 차에서 손을 지긋이 잡고 사랑을 속삭였던체험담이 생각났다.나도 꼭 한번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운전 중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기분이 황홀하고 몽롱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얼마나 좋을꼬. 꿈이 아니길 바랐다. 한참을 지났다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님의 애마인데 큰일 났다, 이게 무슨 일이람? 견인차를 부르면 형님께 탄로 날 텐데……."

조수석에 있는앞뒤 바퀴가 도랑에 그대로 빠진 듯해 보였다. 다행히 지나가던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들이 차를 세워 우리 차를 끌어 올려줬다. 일단 위기는 모면했다. 집에 들어가 형님께 차 키를 내밀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 후로 형님은 말이 없었다. 모르는 건지, 알고도 이해해 준 것인지. 아무튼, 이 기회를 통해 큰형님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한 시간의 기다림, 일생을 함께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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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애마 빨간 프라이드는 아내와 나의 사랑을 연결해 준 징검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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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난 동갑이다. 보육원 교사로 근무하던 그녀는 참 마음이 고왔다. 우리는 ‘청년Y‘라는 사회봉사단체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첫 프러포즈한 장소가 지금도 선명하다. ‘추억 만들기‘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렵게 그녀와 만날 약속을잡았다.

이브 날은 교대근무라서아침 근무를 마치고 오후 3시에 퇴근했다. 그녀를 만날 시간이 조금 여유 있게 남아 있었다. 당시 자취방 주인이 새 보일러를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보일러는 금세말썽을 일으켰다. 보일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나는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직접 수리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일러를 수리하는 도중 기름을 받아 놓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불이 퍼졌다. 난 재빠르게 방으로 뛰어가 젖은 이불로 불을 진화했다. 하지만 화재 여파로 보일러 장치가 시커멓게 타고 말았다.

많이 놀란 탓에 피곤함이 엄습했다. 잠깐 누워 있다가 보니 잠이 들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어느덧 오후7시가 넘었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미 늦어버려 안 나갈까 고심도 했다. 하지만 그녀를 그냥 바람 맞추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외출 준비를 하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큰일 났다, 보나 마나 100% 가 버렸을 거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헛고생 말고 집에 돌아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건성으로 두리번 두리번 거리니 안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에 막 돌아 나가려는 참이었다.

"명남씨 여기예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정신이 확 깨었다. 한쪽 모퉁이에 예쁜 정장을 차려입은 그녀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고 천사였다. 꿈이 아니길 바랐다.

"기다리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어요, 1분만 더 기다리다 안 오면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녀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쓰디쓴 커피가 이렇게달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우리는 찻집에서 나와 식사를했다. 또 시내 구경을 다녔다. 꽃을 파는 노점에서 그녀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사 주었다. 내 마음의표시였다.

시골집으로 가는 막차 시간이 다 되어 그녀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주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녀 역시 장미꽃 한 다발보다 한 송이 장미가 그렇게 의미가 컸단다. 이후 나는 이 정도 나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면 내 인생의 반려자로 삼아도 손색이 없겠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 급속히 가까워졌다.

인생의 동반자가 된 지금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대의 뜨거운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을까? 오늘 ‘사랑이 뭐길래‘ 응모 글을쓰면서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또 다짐해 본다.

"달링! 모진 풍파가 세상을 휩쓸지라도 우리 사랑 변치 말고 쭈~욱 가자,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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