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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조건을 극복하는 집념과 실행이 창의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김경수 교수

  • 입력 2015.02.12 17:23
  • 수정 2015.02.16 09:02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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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가 현재 전국 관객수 479만 여명(156개관)을 동원하며 독립영화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이는 역대 다큐멘터리영화 사상 최고의 실적이자 최다 개봉관이란 기록으로 총 제작비 1억2천만원의 저예산을 투자하여 2000%의 투자 수익율을 올린 성과다. 또 다양성 영화 부문에서도 최단기간 박스오피스 1위의 흥행 기록이다.

그동안 다큐멘터리영화의 최대 관객 기록은 2009년 293만명을 동원한 ‘워낭소리’였고, 다양성 영화는 작년에 342만 여명을 모은 ‘비긴어게인’이었으나 ‘님아’가 이를 한꺼번에 경신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란 실재 있었던 어떤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 없이 그 전개에 따라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고, 다양성 영화란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영화를 포함한 영화를 말한다.) 또한 ‘님아’는 작년 겨울에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관객상, 2014 올해의 영화상 독립영화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도 해외의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고 있다.

‘님아’로 인한 ‘사랑 신드롬’ 현상도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90대 노인들인데, 20대가 주도가 되어 SNS 등의 입소문을 이끌었던 것. 사랑의 배터리가 길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도 나이와 상관없이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다큐멘터리영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님아’는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고시리의 한 산골마을에서 76년 동안 순수한 사랑을 지키며 살아온 강계열 할머니(89), 조병만 할아버지(98) 부부의 일상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다. 이 작품을 만든 이가 전남 해남 출신의 ‘진모영 감독’이다.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

긍정적인 역발상과 거침없는 실행

진 감독이 이 노부부를 처음 본 건 ‘KBS 다큐멘터리의 인간극장’이었다. 그의 첫 소감은 “이 방송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내기는 너무 아까웠다.”고 했다. 그러나 “TV로는 안 할 거다. 전 세계인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계획했단다. “영화는 TV와 다르게 극장에서 90분 동안 집중해서 보기 때문에 더 깊이 있는 교감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 감독은 KBS 다큐 인간극장이 끝난 다음 날 바로 전화를 드리고 강원도 횡성으로 달려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그 가족들의 허락까지 받았다. 처음 몇 번은 카메라도 없이 찾아가서 이들의 삶이 TV에 비춰진 모습 그대로인지, 촬영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 나름 검증을 했다고 한다.

촬영 초기에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대다수였다. 2011년 1월에 SBS 스페셜 ‘너는 내 운명인가’에서 잠시 출연 후, 같은 해 11월에 KBS1 TV의 다큐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에서 5부작에 걸쳐 방영되었으니 “이미 TV에서 방영됐던 것을 왜 또 하냐?” “노인 이야기로 되겠느냐?” “한 번 본 것을 누가 또 보겠냐?” 재탕, 삼탕이란 시선과 우려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진 감독 역시 그런 반응을 예상했단다. 하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저 이야기는 된다.”고 확신했다. 안 될 이유를 찾지 않고, 오직 해야 될 이유만 찾았던 것이다.

이러한 진 감독의 역발상은 오히려 영화제작에 이점이 되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던 것.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KBS 다큐 백발의 연인’에서 5부작이란 비중있는 촬영 경험과 TV 시청을 통해 카메라가 그리 낯설지 않았으리라. 때문에 ‘님아’에서 훨씬 더 자연스러운 행동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님아’를 위한 리허설이 충분했던 셈이다.

문제는 다큐멘터리 제작비였다. “늘 열약한 환경이었지만, '님아'를 시작할 때도 ‘10개월 동안 제작비가 0원’이었다. 모 진흥재단에서 제작비 지원이 약속되어 있었지만 마냥 기다려야만 했었고, 그 시기에 “빚을 내서 촬영하고, 굶으면서 촬영해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필자는 여기서 진모영 감독의 ‘도전적인 역발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TV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를 다시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오직 진모영 감독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재의 독창성’과 ‘주제의 보편성’에서 성공예감을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뭔가에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진 감독은 한 술 더 떠서 ‘세계시장’까지 내다봤다.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야기는 전 세계인들이 봐도 공감해 줄 것”이라며 “영화로 만들어서 세계시장에 내놓겠다.”는 큰 계획을 촬영 전부터 세웠다. 그래서 '님아'의 국내 개봉이 결정되기 일 년 전에,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전문배급사인 캣엔독스와 전세계 배급 계약을 체결했고, 세계 최대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IDFA)’에서 피칭 공모를 통해 제작비 펀딩은 물론, 사전 마케팅, 스토리텔링 개발 및 구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덴마크 국영방송인 DRTV에 방영권을 판매했고, 현재는 중국과 일본 등에 상영 계약을 막바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해외에서 ‘님아’의 가치를 알아본 결과가 아니겠는가. 진 감독의 역발상이 ‘때’를 만난 격이다.

▲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의 피칭 공모 ‘엽서’

공감대가 높은 창의적人 소재 발굴

필자는 관점을 바꿔서 ‘님아’의 ‘창의적인 소재’에 대해 살펴보았다. 창의는 어떤 분야에서도 중요하지만, 꾸밈없는 소재를 집중 조명해야 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창의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영화에서 창의적인 소재는 바로 ‘조병만 할아버지(98세)’와 ‘강계열 할머니(89세)’다. 특히 ‘사랑’이란 분야의 ‘지속성’에서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세상의 어떤 할아버지가 야밤에 화장실 가기 무섭다는 할머니를 매번 데려다 주고, 보초를 서면서 노래까지 불러줄 수 있겠는가.

노부부는 항상 손을 잡고 다닌다. 서로의 신발을 신기 좋게 돌려 놔주고, 늘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잠을 잔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노부부를 본 적이 있는가? 76년 동안 어떻게 이런 사랑표현이 가능했을까? 왜?

필자는 이 주인공들의 ‘남과 다른 창의’에 대해서 역추적해 보았다.

진모영 감독은 ‘님아’를 소개할 때 “노부부의 작지만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 또 “이 영화를 완성한 분은 할머니이지만, 사랑을 완성시킨 분은 할아버지”라고 했다. 진 감독이 남자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편에서 이야기한 걸까? 아니다. 우리 농촌은 대개 권위와 힘으로 가정을 지키며 살아온 가부장적 문화이기에 조병만 할아버지는 별에서 온 존재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진 감독은 이를 ‘밥상철학’으로 요약했다. “할아버지는 반찬이 맛있으면 많이 먹고, 맛없으면 조금 먹을 뿐, 결코 맛이 없다고 투덜대거나 화를 낸 적은 없다.”고 했다.

할머니도 이에 못지않다. 필자가 추측건대 강계열 할머니의 부모님은 분명 금술이 좋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보고 배운 스승은 100% 할머니의 부모님이었을 터.

조병만 할아버지는 11살에 조실부모를 겪고 고아로 살다가 23살에 할머니 댁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14살의 강계열 색시를 만나고 새로운 가족까지 얻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을지 짐작이 간다. 할머니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우애하고 사는 모습이 할아버지의 눈에 무척 좋아 보였을 것이다. 또 처갓집에 얹혀살았기에 행동이 조심스러웠고, 칭찬 받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이게 ‘평생 습관’이 되었으리라.

또한 이 집의 위치가 한 몫 하였다. 시골에서도 꽤 한적한 곳이라 속세와 적당히 단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가 묻지 않은 곳이기에 순수한 사랑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할머니는 겉모습만 할머니일 뿐, 행동은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평소에도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를 연발한다. 할머니의 얼굴엔 늘 수줍은 미소와 웃음, 칭찬, 감사로 가득하다. 행동 또한 말을 따라간다. 89세의 나이에도 커플복을 준비하고, 머리손질, 손잡기, 쓰다듬기, 먹여주기. 주물러주기, 눈싸움하기, 장난치고 삐지기 등 닭살 돋는 스킨십과 사랑표현들이 ‘창의 그 이상’이다.

물론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커플들에게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연애할 때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도록 만드니까. 문제는 결혼 이후부터다. 사랑이 서서히 변하고 사라진다는 것.

그런 면에서 창의는 사랑과 닮아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생각을 일시적으로 하느냐, 지속적으로 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은 이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뉴스를 보면 최고의 교육을 받은 고위층들이 다투고 이혼하고 소송까지 가는 소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성공 교육’은 가득한데, ‘행복 교육’이 부족한 결과일까?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비창의적’이라는 증거인가?

▲ 야밤에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화장실에 배웅하는 장면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은 하루에 약 300쌍이 이혼을 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기혼부부 3쌍 중 1쌍이 이혼하는 것과 같은 수치라고 한다. 과연 부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 주고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그날까지 함께 웃고 울어 수 있는 부부의 존재가 보석보다 귀하고 소중한 게 아닌가. ‘있을 때 잘해라’는 것이 괜한 말은 아니다.

TV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 매체들은 일그러진 부부상을 부추긴다. 막장 드라마가 아니면 시청률을 올릴 수 없다?, 폭력적이지 않으면 영화가 재미없다?, 선정적이지 않으면 걸그룹이 뜰 수 없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판매가 안 된다?, 왜 이렇게 세상이 비창의적으로 가는가?

‘님아’가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사랑’이라는 흔하고 뻔한 주제지만, 그 본질을 명쾌하게 꿰뚫었다. ‘미혼 관객들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기혼 관객들에게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도록 유도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는 꾸밈없는 소박한 사랑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고,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란 듯이 보여주었다. 노부부의 사랑이 속세의 허(虛)를 찔렀다.

진 감독은 “사랑은 하나씩 쌓이면서 그 신뢰와 배려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것”이라며 “영화의 흥행보다는 ‘나도 저렇게 사랑해야지’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연인 혹은 부부가 조금이라도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그 가치를 어떻게 환산할 수 있겠는가.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소재 발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진 감독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창의적인 주인공’을 발굴했던 셈이다.

다큐멘터리다운 진실성과 지속성

진모영 감독의 이른 해외진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진 감독의 선배들이 이미 그 길을 닦아놨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이자 마켓’으로 불리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2009년 박봉남 감독의 ‘아이언크로우즈’가 대상, 2011년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가 장편경쟁 진출, 같은 해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이 대상 등을 수상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이 중에 진모영 감독을 다큐멘터리의 세계로 이끈 인물은 2013년 12월에 작고한 고 이성규 감독이다. 진 감독은 “이성규 감독님은 저의 독립PD 선생님이자, 친형 같은 존재였다.”며 “이 분이 힘들게 개척한 길을 자신이 따라왔고, ‘님아’는 이성규 감독의 유산”이라고 했다. 이 감독의 평생소원은 “관객이 가득 찬 극장에서 우리 영화가 개봉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님아‘를 통해 고인의 꿈이 이루어졌으리라.

▲ 할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흐느껴 우는 할머니의 마지막 장면

‘님아’에서 또 하나의 창의는 다큐멘터리의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내레이션(Narration)’과 ‘과거 사진’들을 일절 배제시킨 것이다. 진 감독은 “두 분의 주인공이 우리에게 들려줬던 대화, 목소리만 가지고 하기로 했다.”며 “다큐는 시나리오 내 가상세계가 아니라 실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다큐멘터리다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한 ‘다큐멘터리스트 정신’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노력은 ‘님아’의 곳곳에서 ‘반전’으로 드러난다. 할아버지의 생신 날 자식들이 실랑이하는 장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검이 공개된 장면 등에서 관객들은 ‘진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스쳤을 것이다.

그러나 진 감독은 죽음을 눈물의 소재로 남용하지 않았다. 그는 “관객을 펑펑 울릴 수 있는 촬영분은 넘쳤지만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장면은 단 두 컷만 사용했다.”며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가쁜 호흡을 내쉬는 장면, 할머니가 그 옆에서 통곡하는 장면, 가족들이 장례식 때 오열하는 장면 등을 다 걷어냈다.”고 했다. “그런 장면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진 감독은 이런 작업과정에 대해 “박 터지게 싸웠다”고 했다. 그만큼 치열한 고민을 통해서 제작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님아의 백미’는 할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흐느껴 우는 할머니의 마지막 장면이다.

눈 내리는 설경을 배경으로 할머니가 일어서듯 풀썩 주저앉고, 또 걷다가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우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가슴이 아리다. 진 감독의 동료인 한경수 PD는 “그렇게 움직였는데도 카메라의 고정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 놀라웠다.”며 ”원래 그 정도면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게 끝나는데 할머니는 끝까지 프레임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며 “그야말로 신이 주신 장면"이라고 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통해서 전 극장은 ’눈물바다‘가 되었으리라.

당초 진 감독의 의도는 할머니가 떠나는 모습을 풀샷(Full Shot)에 담기 위해 준비했단다. 그는 1년 동안 동고동락한 조감독 두 명에게 “버텨라”를 가르쳤다고 했다. “카메라를 잡으면 마음이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한 컷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니 섣불리 바꾸지 말고 버틸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촬영 현장에서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오랜 시간 동안 훈련된 결과였다.

‘님아’의 성공은 운이 좋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진 감독이 어려운 경제적 여건 때문에, 혹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유 때문에 잠시라도 집중력을 잃었다면 오늘날의 ‘님아’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진 감독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찍는 과정들이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다큐멘터리스트’였다. 또한 그것이 할머니와의 첫 약속이었다.

필자는 ‘님아’가 다른 흥행영화들과 다르게 ‘안티 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가 의아했다. 꽤 많은 인터넷 자료들을 살핀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년 12월 16일, ‘주인공과 그 가족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공식 기자회견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 진 감독은 ”할머니를 지켜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영화가 잘 되더라도 할머니가 힘들어진다면 영화를 만든 의미가 없다.”며 ‘집으로’, ‘워낭소리’ 이후 생활터전이 파괴되었던 사례, ‘산골소녀 영자’ 다큐 이후 아버지를 잃었던 사례를 제시했다. ‘할머니의 여생에 대한 걱정’을 진심을 다해 호소했기 때문에 베테랑 기자들까지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이후로 할머니의 생활은 안정이 됐고, 수익배분에 대한 질문도 거의 사라졌다.

‘님아’가 한참 흥행기록을 경신하고 있을 때도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다른 다큐 영화들과 공생하기 위해서 ‘상영 축소’를 자발적으로 요구한 것. 그는 “향후 다큐멘터리영화 제작 방향에 있어서 좋은 선례를 남겨야한다는 책임감이 뒤따랐다.”고 했다.

또 한국기자영화협회 주관의 ‘2014 올해의 영화상’ 수상소감에서 "저희 영화의 공은 세 분이 세우셨다. 먼저 주인공 두 분이 거의 다 영화를 만드셨다. 내가 창조한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기자와 대한민국 500만 관객이다.”라며 겸손을 잃지 않았다.

모 기자는 ”진모영 감독은 매사 신중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인터뷰 도중 조금이라도 기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않거나, 오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꼼꼼하게 부연설명을 했다.“고 전했다. 진 감독만의 ‘진실한 소통’이 까칠한 기자들의 마음까지 녹여버렸던 게 아닐까.

▲ 극장에서 강계열 할머니와 진모영 감독의 재회

필자가 만나 본 진모영 감독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은 전남 해남 출신, 지방대 졸업, 비정규직 신분으로 마이너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며 “창작자의 권리도 없고 저작권도 없는 독립PD 생활을 10년 동안 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다큐멘터리를 고집할 생각이다.”며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진 감독은 “흥행을 위한 마음으로 ‘님아’를 만들었다면 이런 결과가 안 나왔을 것”이라며 “사건의 진실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대중과 소통하고, 관객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관객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큐멘터리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분들이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실 것을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진모영 감독이 생각하는 창의에 대해 물었다. 그에게 창의란 “모두가 악조건이라 생각하는 것을 호조건으로 바꾸어내는 긍정적인 집념과 거침없는 실행”이라며 박노해 시인의 글을 소개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고 이성규 감독은 살아생전에 “다큐멘터리영화는 비효율적인 집념과 인내력의 산물”이라며 “우리가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단다. 그리고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를 많이 사랑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진모영 감독이 이 숭고한 뜻을 받아 ‘세계 최강의 다큐멘터리스트’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진모영 감독의 창의 요약

1. 긍정적인 역발상과 거침없는 실행
2. 공감대가 높은 창의적人 소재 발굴
3. 다큐멘터리다운 진실성과 지속성

‘님아’의 소재는 이미 ‘KBS 다큐 인간극장’ 등에서 여러 차례 공개되었기에 다시 제작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진모영 감독은 TV가 아닌 ‘영화’라는 역발상을 하였다. 노부부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창의적인 소재’였고, ‘전 세계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여러 난관들이 있었지만 1년3개월 동안 ‘다큐멘터리스트 정신’으로 버텼다. 전 세계 배급 계약과 지원을 통해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영화의 성공보다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미래, 그리고 주인공 할머니와의 약속을 우선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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