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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해우소 옆 홍매화

정영희

  • 입력 2015.03.26 16:03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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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틀림없이 그곳에는 홍매화가 피었겠다. 골바람을 이겨내고도 모자라 진눈개비를 훌러덩 뒤집어쓰고도 넉넉하게 버티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본디 성품이 고결하고 용감하여 절개가 넘쳐흐르기에 그렇게 여겨왔을 테고, 그래서 사군자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게 홍매화가 아닌가? 거기에 붉은 빛을 머금고 선암사 경내를 환히 밝히는 등불 노릇까지 겸임하고 있으니 축복 받을 일이다.

천년고찰 선암사 뒤뜰에 홍매화가 낭자할 때는 아무리 바빠도 만사 때려치우고 가야한다. 시름과 고민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나무 아래 앉아 거친 가지에 박힌 하늘을 우러를 일이다. 더하여 꽃술 한 모금 찍어 맛을 볼 일이다. 예비한 꽃자리가 따로 없으니 당신이 앉는 자리마다 꽃이요, 온기다. 냉기 때문에 주저한다면 가는 길에 들러 녹차 한 잔 비비고 나면 온 산이 따뜻해질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

무엇보다 시름을 털어내는 장소로 선암사 해우소 만큼 여유로운 곳도 없다. 벽 틈새로 기어드는 햇발은 생의 찬란함을 응시하는 기운이요, 와송(臥松) 또한 자비로운 생을 엮어가는 또 다른 해탈일지니 꺼림칙하다고 마당에서 머뭇거리는 일은 당신의 번뇌가 매우 온당치 않다는 표징이다. 말끔히 버리지도 못하면서 채우기에 급급한 범인(凡人)은 나 혼자로 끝나야함에도 털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삼월의 백련사 동백처럼 널려 있으니 이 또한 어찌할까?

아직도 바람이 꽃을 시샘한다며 다시 꺼내든 외투가 껄적지근하다. 그동안 혹한에 물든 탓도 있겠지만 햇발이 어김없이 옷깃 속으로 파고든다. 무당개구리를 핑계로 나무 혈관을 뚫어 피를 빨아먹는 족속이 아닐 바에야 홍매화 아래서 잠시나마 온기를 나눠야한다. 자고나면 일가족이 생명을 팽개치고, 친족이 친족을 멸하는 피의자 수갑, 청년실업을 미끼로 갑질을 해대는 가진 자의 횡포 때문인지 올봄이 이렇게 더디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도 꽃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밥 한 공기를 위해 폐지를 주워야하는 노인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밤새 알바를 하는 학생들, 구조 조정으로 거리에 나앉은 이웃들을 위해 올봄에는 일 년 내내 홍매화를 피워 올려야한다. 한 부모 가정의 학생도, 다문화 가정 학생도, 친구간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냉담 과정에 있는 학생들도, 그리고 이 땅의 청소년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꽃은 줄창 피어나야 한다. 감성이 축축한 땅에서 피워 올리는 꽃들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는 법도 알기 때문이다.

혹, 선암사에 가거든 해우소 옆 홍매화를 주의 깊게 읽어보시라.

살아있는 것은 다 꽃이라고 부르지요

선암사 해우소 옆 홍매화를 보았지요
찬물에 햇살만 비벼 넣어도
물방울 머금은 꽃봉오리가
봉긋해지구나 했지요

이미 붙박이장으로 밀쳐버린 외투도 틀림없이
무슨 생각이 있나 봐요
아무리 닫아도 문틈으로 조갯살처럼 옷깃을
내미는 것을 보면요

살아 숨 쉬는 꽃이고 싶은 게
벌써 경칩을 불러들였네요
길 가다 누구라도 마주치면
온기를 함께 나눠 갖고 싶은 것이겠지요

아침에는 외투까지 데리고 나가는 게 아무래도
바람이 꽃을 시샘하나 봐요
아니 벌써 꽃이고 싶어 하나 봐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도
꽃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어요

<졸시 : 선암사 해우소 옆 홍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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