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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은 우리 역사에 '광주' 못지않은 충격"

[현장] 한홍구 교수 초청강연

  • 입력 2015.07.20 08:52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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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6시 반, 여수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열린 한홍구 교수 초청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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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수) 오후 6시 반, 여수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는 '세월호로 보는 한국 현대사 그리고 책임'이라는 주제 강의가 있었다. 한홍구 교수의 강의에는 여수 시민 50여 명이 참석했다. 

한홍구 교수는 역사학자이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관피아라고 지적하며 마이크를 든 뒤 곧바로 대한민국이 처한 수많은 어려움이 관피아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역사에 '광주' 못지않은 충격을 안겨줄 겁니다. 세계에서 배를 가장 많이, 가장 잘 만든다는 나라에서 대형 선박사고가 발생했어요. 우리는 300여 명이 고스란히 물에 잠기는 과정을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국가는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입니까? 이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족속입니까?"

가만있으라 세월호에, 가만있으라 서울에

한홍구 교수는 우리나라 역사에는 이준석 선장보다 더한 사례가 있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들었다. 6.25가 터지고 수도 서울이 함락위기에 빠지자 이승만은 비상국무회의(1950년 6월 27일 오전 1시)를 소집해 수원천도를 결정했다. 이승만을 태운 열차는 수원에 멈추지 않고 대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장거리 전화로 서울 중앙방송국을 연결해 방송 녹음을 했다.

"유엔에서 우리를 도와 싸우기로 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라."

이 방송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할 때까지 내보냈다고 한다. 이승만과 언론이 잘못된 정보를 마구 보내고 있을 때 한강 다리 폭파가 준비됐다. 6월 28일 오전 2시 30분경 육군 총참모장 채병덕 일행이 한강 인도교를 지난 직후 육군 공병감 대령 최창식은 한강 다리 폭파를 명령했다. 다리위에 있던 피난민과 차량은 '꽝'하는 소리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관련자들은 적게는 500명, 많게는 800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 작전이 이뤄지고 서울탈환이 임박하자 이승만 정권은 희생양을 찾았다. 한강 다리 폭파 책임자인 최창식 대령을 사형시켰다. 채병덕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가만 있으라!는 말을 믿고 서울에 남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해방이 되자 국회는 일제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반민특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경찰들의 습격으로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됐다 풀려난 악질 고등경찰 노덕술 일당은 경찰에서 헌병으로 업종을 바꿔  부역자처벌에 열을 올렸다. 

한 교수는 "현 정부도 책임을 유병언에게만 돌리고 있다"며 "세월호를 낳게 된 연원은 6.25전쟁이 터지기 직전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역사에 있다"며 통탄했다. 

"가만있으라!'란 말만 믿고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을 빨갱이로, 부역자로 잡아 죽이며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그것이 수십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공안 권력의 출생 비밀입니다. 공안권력은 대한민국 수구 세력의 중추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수많은 마피아 집단들은 다 여기서 파생된 것입니다."

한 교수는 공안세력의 계보를 1940년대 백선엽, 1950년대 김창룡, 1960~1970년대 이후락으로 들었다. 이들은 관피아로 연결됐고 관피아가 세월호를 낳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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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구 교수가 지적한 대한민국의 공안계보를 잇는 사람들. 백선엽, 김창룡, 이후락 등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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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는 세월호 사건으로 해양수산부 출신의 해피아가 부각됐지만 재정경제부 출신의 모피아, 국토건설부 출신의 건피아, 교육부 출신의 교피아 등등 정부부처 개수 만큼이나 많은 관료 출신 마피아를 싸잡아 관피아라고 불렀다. 

한국의 진보는 원래 진짜 보수였다

극우파 김구의 수행비서였던 장준하는, 김구가 남북협상에 나서자 공산주의자와 무슨 협상이냐며 광복군 참모장 이범석과 함께 떨어져 나왔고, 이승만 정권의 국무총리가 된 이범석이 좌익 전향자들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이자 좌익들에게 관대하다며 이범석과도 갈라선 강골 극우파였다. 

신의주 반공학생의거 주역 함석헌, 미군 장교였던 문익환, 7년간 국군 장교로 근무했던 리영희, 유학을 중단하고 군에 복무하기 위해 돌아온 백낙청 등은 보수의 가치를 지킨 양심적인 인물들이었다. 한 교수는 현정부의 고위직에 있었던 군면제자들의 계보를 도표로 보여줬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꿀 기회가 세 번 있었다며 한 교수가 보여준 예로 1978년 6월 항쟁, 1997년 재벌개혁, 2004년 탄핵을 들었다. 이승만 같은 자들이 선장을 하고 김창룡, 원용덕, 노덕술, 박종표, 이근안 같은 자들이 선원질을 한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한홍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강의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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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세월호 사건 당시 의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한홍구 교수가 보여준 세월호의 의인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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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복원력 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강의에 참석했던 여수부영여고 2학년 강미경 양의 소감이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던 근현대사를 알 수 있는 기회였고,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 역사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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