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는 여수에서 사는 동안 자신을 돌봐주고 카약탈 때 데리고 다녔던 분을 한국인 아버지라고 불렀다.
출발 지점인 호곡은 급류가 형성되는 곳이다. 뾰족한 바위들이 많이 나와 카약타는 기분보다는 래프팅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물살이 세고 파도가 치는 곳이다. 카약이 심하게 흔들리며 온몸이 물에 젖었지만 모두 즐거워했다. 이런 맛으로 카약을 타지 않을까?
급류 지점을 벗어나 잔잔한 호수 같은 지점에서 우리는 물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야말로 유유자적이다. 양쪽 산 그림자가 물 위에 비쳐 탄성을 자아낸다. 100여m 앞 뾰족 솟은 바위에서는 왜가리가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강물이 흐르고, 카약이 흐르고, 자전거 도로에는 자전거가, 아스팔트 도로에는 승용차들이 흐른다. 때마침 경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를 탄 관광객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옛날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중학생 시절 겨울 방학이 되면 아버지와 형과 나는 리어카를 끌고 압록 근방까지 나무하러 다녔다.
포장 도로는 생각할 수 없고 신작로에 자갈이 깔렸던 시절. 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나와 형이 뒤에서 밀며 10여km를 나무하러 다니던 길이다. 당시 나는 카약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영화나 외국 뉴스속에서나 보는 꿈같은 얘기로만 알았다.
도깨비 동상이 서 있는 곳에 오니 일행이 연유를 물었다. 어른들이 살뿌리라 불렀던 지역은 물이 깊고 소용돌이가 치는 곳으로 고기가 굉장히 많이 잡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깨비인 마천목장군 상이 있는 이곳은 도깨비마을 전설이 있는 곳 중에서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이다.
물 속 바위만 들면 팔뚝 만한 고기가 잡히는 섬진강. 목욕하다 모래 속에 발을 묻으면 때로 발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팔뚝만한 모래무지를 잡고 환호했다. 독일 라인강가에 있는 로렐라이 언덕보다 아름다운 섬진강. 이곳을 4대강처럼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친구들은 여름철이면 종일 물 속에서 놀다 등에 허물이 다 벗겨지고 새까맣게 타도 신경쓰지 않고 놀았다. 동자개, 송사리, 은어, 메기, 가물치와 잉어가 잡히고 가끔 홍수가 나면 참외와 수박이 떠 내려와 수영 잘하는 우리 차지가 됐던 추억 어린 곳이다.
상념에 젖어 물 흐르는 대로 내려가다 기차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카약이 바위에 걸렸다. 간신히 물이 많은 곳을 택해 빠져 나오려고 노력했지만 바위에 걸려 요지부동이다. 이리저리 비틀다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가슴까지 물이 찬다. 강 기슭에 배를 대고 뒤집어 보니 카약이 찢어졌다.
찢어진 카약을 강 기슭에 둔 일행은 3명 1조가 되어 종착지인 압록 근방까지 오니 강 속에서 열심히 다슬기 잡는 사람이 있었다. "많이 잡았냐?"고 묻자 "예전에는 많았는데 하도 많이 잡아서 지금은 별로 없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슬기는 요즘 귀한 대접을 받는다. 없어서 중국에서 수입까지 한다고 하니 그럴 법하다. 어릴 적 밤에 고무 타이어에 불을 붙여 다슬기 잡으러 나가 큰 돌을 하나 들고 손으로 쓸어내리기만 하면 한 주먹씩 잡히던 곳인데... 어디 그뿐인가? 배구 그물을 강 양안에 걸어놓고 다음날 아침에 가면 참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곳이었다. 지금은 "아! 옛날이여!"를 외친다는 고향 친구들의 전언이다.
자동차로 10여 분이면 닿을 거리를 두 시간여 만에 목적지인 압록에 도착하니 200여 명의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피서객이 가장 많을 때는 2천 명정도가 온다고 한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압록 다리 밑은 수심이 6m정도나 되어 위험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