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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시평]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 입력 2015.09.07 07:08
  • 수정 2015.09.07 10:01
  • 기자명 장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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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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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시입니다. 작가는 성산포에 살던 모습 그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바다가 흔들리고 술이 취해버리면 섬이 잠든 것인지. 내가 잠든 것인지. 그리움은 마음 한켠에 숨어사는 바이러스 같은 것. 성산포에는 그 그리움으로 가득한 실루엣이 있는 셈임니다. 화산섬에서 흔하디 흔한 무덤, 어쩌지도 못하고 산자와 죽은자가 나딩굴고 있더라도 그것이 그냥 일상의 모습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서 가난하고, 술좋아하고, 그리웠던 사람들에게 그저 그 바램하나로 달래서 바람결으로 훨훨 날려보낼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60평생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또 기다리는 사람' 인 것이다. <장희석/여수넷통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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