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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코 베간다? 이곳에선 다반사

  • 입력 2012.05.06 18:20
  • 기자명 박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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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포트 역 모습
ⓒ 오문수

카메라도둑


‘호시탐탐‘이란 뜻을 사전에서 살펴보면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또한 ‘도둑 한 놈에 지키는 사람 열이 못 당한다‘라는 말이 있다. 인도 아그라포트 역에서 카메라를 도난당한 사건을 두고 꼭 이런 비유를 들고 싶었다.

일행이 인도에 온 지 20일이 지났으니, 이제 인도에 웬만큼 적응이 됐다. 긴장이 풀릴 때도 됐지만 20명 학생을 인솔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입장은 다르다. 계속 잔소리를 하고 "물건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앞 사람과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차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해야 했다. 아그라에서 타지마할 관광을 마친 일행은 아그라성이 있는 아그라포트 역에서 다음 목적지인 자이푸르행 오후 7시 반 열차를 탈 예정이었다. 인도 열차는 언제 올지 언제 떠날지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두 시간 전에는 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기다려야 한다.

오후 5시에 아그라포트 역에 도착한 일행은 대합실에 배낭을 두고 1, 2조가 먼저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오면 3, 4조가 교대해 식사를 하기로 했다. 1조인 5명 학생들이 역 인근 포장마차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시장으로 가서 과일을 사들고 대합실로 돌아와 2조와 합류하고, 3, 4조는 식사를 하러 대합실을 떠났다.

출발 예정시간이 다 됐는데, 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알아보니 10시쯤이면 출발이 가능하단다. 학생들은 잡담을 하거나 책을 보기도 하고, 피곤한 학생은 의자에 앉아 잠에 곯아 떨어졌다. 반대쪽 의자에서는 사홍이가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그동안 찍은 자신의 사진을 감상하고 있었다.

카메라, 잠깐 의자에 내려놓는 순간 훔쳐가 버렸다





야간에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침대열차. 3층으로 되어있다. 일행은 분실을 방지하기 위해 자전거용 열쇠를 준비해 배낭을 철제 다리에 꼭 묶어 두고 잠을 잤다.
ⓒ 오문수

카메라도둑







웨이팅 룸의 모습. 학생들은 배낭을 벗어놓고 잡담을 하거나 쉬고 있었다. 일종의 대합실이지만 열차표가 없으면 웨이팅 룸에 들어갈 수 없다.
ⓒ 오문수

카메라도둑


나는 도난사건이 일어날지도 몰라서, 한쪽 구석에 배낭을 모아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때마침 형선이가 영어 소설을 가지고와 해석이 안 된다고 설명해 달란다. 둘이 한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웨이팅 룸에는 1, 2조 학생과 10여 명의 인도인 속에 서양인 여행자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홍이가 후다닥 달린다. 덩달아 인도사람과 학생들이 철로 쪽을 향해 달리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뭔가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나는 반사적으로 책을 던지고 뒤를 쫓았다. 아이들을 만나서 "무슨 일이냐? 왜 그래?"하며 물었다. 사홍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카... 카메라를, 내 카메라를 훔쳐 갔어요."

"뭐라고? 그러면 잡아야지 왜 그러고 있어."

"저! 강도가 카메라를 들고 달리는 열차 사이로 뛰어 넘어 가 버렸어요. 어떻게 쫓아가요?"

혈기왕성한 중·고등학생들은 씩씩대며 잡지 못한 것을 분해했다.

"우리와 인도사람들이 거의 다 잡았는데, 철로로 내려가 달리는 열차 사이로 도망 가버렸어요."

마침 웨이팅 룸 옆 열차 선에는 시멘트를 실은 듯한 화물차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바로 옆 차선에는 승객을 실은 여객열차가 달리고 있었다. 카메라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 수는 없다. 화물 열차는 칸과 칸을 연결하는 부분이 있어 사람이 건너 갈 공간이 있었다. 우리는 화물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옆 차선의 여객열차는 제법 속도를 내고 있었고, 객차와 객차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막혔기 때문에 절대 못 넘어 갔든지 아니면 차에 치여 죽었을거라는 상상을 했다. 열차 두 대가 모두 지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달리는 열차 사이를 건너 도망가 버려





카메라를 도둑 맞았던 아그라포트 역 모습. 강도가 카메라를 들고 도망갈 당시 사람들이 걸어가는 쪽으로는 화물차가, 그 다음 선로에서는 승객을 실은 열차가 달리고 있었다. 강도는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한 화물차 연결 부분을 뛰어 넘어 속도를 내고 있던 객차쪽으로 사라졌다.
ⓒ 오문수

카메라도둑


기가 막혔다. 아니 제법 많은 사람이 웨이팅 룸에 있었고, 나도 학생들도 잡담하거나 놀고 있었는데 카메라를 훔쳐가다니…. 사홍이한테 자초지종을 물었다. "시간이 있어 20일 동안 찍은 사진을 감상하다가 잠깐 의자에 카메라를 놓는 순간. 앞에 있던 20대로 보이는 인도인이 훔쳐 달아났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 엄마한테 혼날까 걱정하는 사홍이한테 "괜찮다. 카메라 한 대가 목숨보다 소중하냐? 내가 네 엄마한테 말씀드릴게"라고 말했다.

분했다. 사무실에 알아보니 철도 경찰 사무실 위치를 알려준다. 열차는 연착해 12시가 되어서야 들어온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반대편에 있는 철도 경찰 사무실로 가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분실증명서를 쓰겠으니, 용지를 달라고 요청했다. 담당 경찰은 "인도에 온 손님인데 안 좋은 일이 벌어져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사홍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도둑놈이 훔쳐갔는데, 분실이라고 쓰라니....







아그라포트 역 철도경찰 사무실에서 작성한 카메라 분실보고서. 귀국해 여행자보험증과 분실보고서를 제출해 보험회사에서 20만 원을 보상 받았다.
ⓒ 오문수

카메라도둑


 

 

 

다시 사홍이를 데리고 와 분실증명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여권번호와 인적사항, 날짜, 아그라포트역 등 세부 사항을 적었는데, 거기에 "missed(분실)"로 쓰라는 것이다.

나는 "분실이 아니고, ‘stolen(도난)‘이다. 학생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도둑놈이 훔쳐 갔는데, 왜 학생이 잘못한 것처럼 분실로 쓰느냐?"며 10분여 실랑이를 했다. 기사를 쓰면서 어휘 하나 차이가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책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지만 담당 경찰은 굽히지 않는다. 도난이라면 모델명과 구입증명서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마지못해 ‘missed(분실)‘로 적었지만 여기가 한국이 아닌 걸 어쩌랴. 사건이 나자 경찰들은 2명씩 경찰봉을 들고 와서 우리가 있는 웨이팅 룸을 돌며 수상한 인도인들을 쫓아 버렸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사홍이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여행자보험 증명서와 아그라역 철도경찰소장의 직인이 찍힌 분실증명서를 보험회사에 제출하도록 했다. 며칠 전 사홍이 엄마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덕분에 보험회사에서 20만 원을 보내왔어요. 고마워요"라고 문자가 왔다.





리쉬케시에서 바라나시로 야간 열차를 타고 가다 만난 인도 아가씨들. 오른쪽이 마드후리나(Madhurina)로 왼쪽은 친한 친구다. 바로 이웃한 침대에서 잠을 자던 친구는 고급 카메라와 지갑을 도난당했다. 울상이었는데 사진을 찍느라고 미소를 지어보여 마음이 아팠다.
ⓒ 오문수

카메라도둑


리쉬케시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 열차에서도 바로 옆자리 인도 아가씨가 몇백만 원 하는 DSLR고급 카메라를 도난당하는 걸 목격했다. 그 아가씨는 결혼식 행사에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아가씨였는데, 밤에 침대칸에서 잠자는 사이 카메라와 지갑을 잃어버렸다. 물론 옆에는 가족들까지 있었는데도. 나는 아그라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며 경찰서에 가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고, 경찰서장의 직인을 받아 보험회사에 제출하라고 설명해줬다.

해외 여행시에는 도난을 조심해야 한다. 일행은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자전거용 열쇠로 배낭들을 함께 묶어 철제 침대 다리에 묶고 잠을 잤다. 특히 주의할 것은 사고가 났을 때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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