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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미비' 거소투표소, 대리투표 이어질 위험 있어

타인에게 표를 양도해도 적발 힘들어... 선관위 "면밀한 검토 필요성 느껴"

  • 입력 2017.05.06 21:01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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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소투표지 봉투 여수지역의 한 시설 장애인이 우편으로 배달받은 거소투표 봉투를 들고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 거소투표지 봉투 여수지역의 한 시설 장애인이 우편으로 배달받은 거소투표 봉투를 들고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 정병진

 


현행 선거법에 거소투표소 설치 의무는 있지만 관리 규정이 미비해 '부정 투표'로 이어져도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음이 드러났다. 

거소투표 신고자가 10인 이상인 시설이나 기관의 장은 반드시 거소투표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거소투표 신고인들이 투표소를 이용하지 않고 각자 개인적으로 기표해 우편 발송해도 아무런 벌칙은 없다. 더욱이 거소투표 신고자가 자신이 받은 투표지를 다른 사람에게 몰래 양도하여도 그것을 적발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선거법에 따르면 장애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요양소·수용소·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기거하는 사람, 또는 사전투표소 및 투표소를 설치할 수 없는 지역에 거하는 유권자를 수용하는 시설과 기관의 장은 거소투표 신고인이 10인 이상이면 투표소를 설치·운영하게 돼 있다. 

이를 위반하는 시설장과 기관장에 대해 선관위는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기자가 지난 2일과 4일 19대 대선 거소투표소 두 곳에 들러 투표 과정을 지켜본 바, 거소 투표소 관리 규정의 미비로 자칫하면 '대리 투표'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거소투표  한 시설에 마련된 거소투표소에서 투표하려고 기다리는 거소투표 신고인들
▲ 거소투표 한 시설에 마련된 거소투표소에서 투표하려고 기다리는 거소투표 신고인들
ⓒ 정병진

 


전남 여수의 A노인요양원과 B장애인 시설은 거소투표소를 설치하고 2시간 동안 투표소를 운영하였다. A노인요양원에는 70여 명의 노인이 거주하는데, 거소투표 신고자는 31명이다. 

요양원 관계자는 "미신고 노인은 치매 등의 이유로 인지능력이 없어 신고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신고자 31명 중 27명이 거소투표소에서 투표하였고 나머지 4명은 투표하지 않았다. 그중에 3명은 몸 상태가 안 좋아 기표소에 나오지 않았고 1명은 외출해 투표 마감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B장애인 시설의 수용인원은 79명이고 거소투표 신청자는 58명이다. B시설은 4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동안 투표소를 운영하였고 45명의 장애인이 투표하였다. 신고자 중에서 13명이 귀가 및 입원 등의 사유로 투표하지 않았다. 

이들이 거소투표소에서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편으로 받은 거소투표용지를 반납해야 하는 건 아니다. 신고인이 그 투표용지에 기표한 뒤 회송용 봉투에 담아 본 투표일인 9일 오후 8시까지 선관위에 도착하도록 우편 발송하면 된다.
 

거소투표 광경 팔이 없어 기표가 힘든 장애인을 위해 참관인들이 기표소에서 기표를 돕고 있다
▲ 거소투표 광경 팔이 없어 기표가 힘든 장애인을 위해 참관인들이 기표소에서 기표를 돕고 있다
ⓒ 정병진

 


시설과 기관에서 거소투표소를 설치하였다는 이유로 지역 선관위 직원이 현장에 나가서 투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은 없다. 현재 선관위에서는 규정은 없지만 투표가 진행되기에 공명선거지원단을 보내 거소투표 관리 업무를 돕고 있긴 하다. 그러나 설령 선관위가 이처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책임을 물을 근거는 없다. 해당 시설과 기관의 투표소 설치 의무 규정만 있을 뿐이지 그 투표소를 선관위가 관리·운영해야 한다는 규칙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거소투표소 운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거소투표 방식은 두 가지다. 자신이 머무는 거소에서 투표하는 방식과 거소투표소에 나가서 투표하는 방식이다. 본인이 굳이 기표소에 나가 투표하기 싫은데 그를 기표소에 가서 투표하도록 강제할 방법은 없다. 거소투표소를 설치하는 건 투표의 편의를 돕는 서비스 차원이지 반드시 여기서 투표하라는 강제 사항이 아니다.

또한 '거소투표인이 투표지를 타인에게 양도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지적은 꼭 기관·시설의 거소투표소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거소투표라는 것은 본인의 신고에 의해 저희(선관위)가 거동이 불편한 분으로 확인이 되면 투표지를 드리는 거다. 큰 시설이나 기관에서 대리투표를 했다는 정황이 보이면 당연히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에 대한 조사를 할 것이다. 하지만 거소투표 신고인이 투표지를 배달받아 타인에게 양도하였는지 여부까지 저희가 파악하긴 힘들다. 선관위도 거소투표 제도 자체에 대해 전반적으로 면밀히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거소투표 봉투의 이송 거소투표 봉투를 큰 봉투에 담아 가까운 우체국에 전달하고자 가는 참관인과 시설 관계자
▲ 거소투표 봉투의 이송 거소투표 봉투를 큰 봉투에 담아 가까운 우체국에 전달하고자 가는 참관인과 시설 관계자
ⓒ 정병진

 


현행 선거법의 거소투표 신고 규정에는 "그밖에 필요한 사항은 중앙선관위 규칙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법 제38조 8항). 선관위가 의지만 있다면 거소투표의 제도상 미비점을 '공직선거관리규칙'을 마련해 보완하는 게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선관위의 거소투표소 투표 관리를 의무화하고, 거소투표소가 설치된 시설·기관의 신고인이 투표소에 나가 투표하지 않으면 이미 배달받은 투표용지를 반납하게 하는 등 거소투표의 부정 개입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규정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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