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필리핀 의료 봉사 활동, 병 주고 약 줄 뻔했다

[필리핀 의료봉사체험기 6]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 입력 2017.11.10 08:42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명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진료받으러 온 필리핀 현지인이 선물 받은 풍선을 들고 기념촬영했다
▲  세명의 어린아이를 데리고 진료받으러 온 필리핀 현지인이 선물 받은 풍선을 들고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사)여수지구촌사랑나눔회원들의 필리핀 의료봉사 4일째는 산페드로시에 위치한 빈민가 꾸얍이다. 이 지역은 3일 차 방문했던 란다얀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최대 호수인 베이(Bay) 호숫가에 위치해 우기엔 상습침수지역이다.

일행이 의료봉사를 할 공간이 마련된 체육시설로 가는 길은 비좁아 차량 두 대가 비껴갈 수가 없어 반대쪽에서 차가 오면 한편에 비켜 있다가 지나가야 했다. 진료센터가 마련된 마을 체육시설에 도착했다. 폭 15m, 너비 30m쯤 되는 체육시설 벽에 '비상대피소'라고 적혀 있어 침수 시에 주민들이 대피하는 공간인 것 같다.
 

 봉사단일행이  산페드로시를 방문해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곳 중 꾸얍이 가장 열악했다. 하수시설이 안돼 길가에 냄새나는 오폐수가 흐르고 있었다.
▲  봉사단일행이 산페드로시를 방문해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곳 중 꾸얍이 가장 열악했다. 하수시설이 안돼 길가에 냄새나는 오폐수가 흐르고 있었다.
ⓒ 오문수

 

 

 의료봉사활동이 진행되는 체육관 인근에서 구경하는 아이들 모습
▲  의료봉사활동이 진행되는 체육관 인근에서 구경하는 아이들 모습
ⓒ 오문수

 


꾸얍지역의 상황은 지난 이틀 동안 방문했던 바얀바야난과 란다얀보다 훨씬 열악하다. 하수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골목길 옆으로 오·폐수가 흘러 냄새도 심하기 때문이다.

봉사단 일행이 방문한 세 곳은 아이들 세상이 됐다. 한국에서 진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5백 명 이상의 주민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양식도 제공하고 봉사단에 참여한 한국 중·고등학생들이 제기차기와 풍선, 사탕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봉사단으로 따라온 한국 중학생을 좋아하던 필리핀 여학생, 또다시 찾아와

진료가 시작되고 의사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봉사단 옆에 필리핀 여학생들 몇 명이 보인다. 낯익은 얼굴이다. 봉사단이 란다얀지역에서 진료 활동하는 동안 온종일 머물며 약품을 나르고 통역을 해주던 학생들이다.
 

 여수시 시의원인 최석규씨가 처방전에 따라 약품을 조제하고 있다
▲  여수시 시의원인 최석규씨가 처방전에 따라 약품을 조제하고 있다

 

 내과 정대호 원장과 필리핀 학생 안졸리 모습. 안졸리가 정대호 원장의 아들 지웅이를 좋아해 이틀 동안 사진을 찍고 싶어했지만 지웅이가 거절하자 아빠가 대신 따뜻하게 안아주며 공부 잘하라고 다독거려줬다. 하마터면 병주고 약줄뻔 했다.
▲  내과 정대호 원장과 필리핀 학생 안졸리 모습. 안졸리가 정대호 원장의 아들 지웅이를 좋아해 이틀 동안 사진을 찍고 싶어했지만 지웅이가 거절하자 아빠가 대신 따뜻하게 안아주며 공부 잘하라고 다독거려줬다. 하마터면 병주고 약줄뻔 했다.
ⓒ 오문수

 


까무잡잡하고 똑똑하게 생긴 필리핀 여학생 '안졸리'는 12살이다. 안졸리는 3일 차 봉사 활동이 진행됐던 란다얀에서 봉사단을 온종일 도우며 약품 수발과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4명의 친구들과 재잘대며 주위를 맴돌았지만 안졸리의 행동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봉사단으로 따라온 한 학생 주위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현장을 취재하던 중 갑자기 소아과 박승원 원장 부인 김다영씨가 안졸리 손을 잡고 정지웅(중1) 학생에게 다가와 "지웅아 얘가 너하고 사진 좀 찍자고 하는데 어때?"라고 말하며 함께 사진 찍을 것을 권하자 지웅이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다른 쪽으로 가버렸다.

김다영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안졸리가 다가와 "나 저 학생을 좋아하는 데 사진 좀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지웅이가 사진촬영에 응하지 않자 안졸리는 지웅이 아빠인 정대호 원장(내과)에게까지 부탁했다는데 지웅이는 자꾸 피하기만 했다.


교직에 오래 몸담았던 필자는 약간 걱정이 됐다. 안졸리가 상사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일행이 란다얀지역 의료봉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타는 순간 그녀가 턱을 괸 채 심각한 눈으로 떠나는 차량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인 의료봉사가 진행될 꾸얍에 그녀가 나타났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전거를 타고 30분 걸려 이곳까지 왔단다. 그런데 안졸리 얼굴이 어제와 달리 환해졌다. 밝은 얼굴로 현지인들과 봉사단 사이에서 통역하는 안졸리. 지웅이 아빠가 그녀를 불러 얘기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어줬기 때문이다.

한국도 방문하고 싶다는 안졸리는 공부를 잘해 반에서 3등이라고 한다. "한국에 오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해라"고 하자 웃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지웅이와 얘기를 나누며 봉사 활동 소감을 들었다.
 

 의료봉사가 진행되는 공간 인근에 식당이 없어 점심시간에 햄버거로 해결하고 있는 봉사단원들
▲  의료봉사가 진행되는 공간 인근에 식당이 없어 점심시간에 햄버거로 해결하고 있는 봉사단원들
ⓒ 오문수

 

 

 필리핀 의료봉사단에 동행해 봉사활동을 펼친 한국학생들. 왼쪽부터 정지웅(중1), 김동욱(중2), 김성은(중2) , 현형찬(민다나오 다바오시 고3).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쩍 성장했다
▲  필리핀 의료봉사단에 동행해 봉사활동을 펼친 한국학생들. 왼쪽부터 정지웅(중1), 김동욱(중2), 김성은(중2) , 현형찬(민다나오 다바오시 고3).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쩍 성장했다
ⓒ 오문수

 


"봉사 활동을 하면서 세상에는 잘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 제 행동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아빠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앞으로 봉사 활동하며 살뿐만 아니라 음식도 남기지 않겠어요."

봉사단에 참가한 중학생에는 김태헌(16세)군도 있었다. 중3이지만 키가 182cm이고 몸무게는 비밀이란다. 약품을 수발하는 동안 땀을 흘리며 연신 종이로 부채질하며 "힘들다!"고 말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그가 더운 나라에서 봉사 활동하는 게 힘들었을까? 4일째 되던 날 코피를 터뜨렸다.

코피를 쏟은 콧구멍에 커다란 종이뭉치를 틀어박은 모습이 우스워 여러 사람들이 웃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약품을 수발하며 현지인들에게 약품 사용법을 설명하는 그가 대견했다. 김태헌군의 봉사 활동 소감이다.
 

 10cc 주사기로 환자 엉덩이에서 고름을 15개나 빼내며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안스러운 심병수 원장의 부인 김소양씨가 땀을 닦아주고 있다.
▲  10cc 주사기로 환자 엉덩이에서 고름을 15개나 빼내며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안스러운 심병수 원장의 부인 김소양씨가 땀을 닦아주고 있다.
ⓒ 오문수

 

 

 중3이지만 키가 182센티미나 되는 김태헌 군이 봉사활동 4일때 되던 날 코피를 쏟았다. 콧구멍에 커다란 종이를 틀어 막고 환자에게 약품 사용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  중3이지만 키가 182센티미나 되는 김태헌 군이 봉사활동 4일때 되던 날 코피를 쏟았다. 콧구멍에 커다란 종이를 틀어 막고 환자에게 약품 사용법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 오문수

 


"힘들었지만 뿌듯했어요.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상냥해요. 빈민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필리핀에 오기를 꺼렸는데 필리핀 사람들과 지내보니까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정도 많아 정성을 다해 봉사하게 됐어요."

일주일간의 필리핀 봉시활동 기간의 내 룸메이트는 여수시의회 최석규 의원이다. 함께 지내는 동안 여수시의회 의정활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가 살아온 인생역정을 들으며 깊은 교감을 나눴다.

어릴 적 지게로 나무를 해 나무장사를 한 이야기부터 생선장사와 체육관을 운영했던 그의 경력을 헤아려보니 20여 개나 됐다. 부자로 살아서 그냥 그런 자리에 오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인생이라는 짐은 쉽지가 않다. 만만한 삶은 없다. 가까이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고 선입견으로만 남을 판단하기 때문에 다툼을 낳는다. 최 의원의 얘기다.

"의사 선생님들과 일주일간 함께 봉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지구촌사랑나눔회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합니다."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

(사)여수지구촌사랑나눔회가 봉사활동 장소를 필리핀 산페드로시로 정한 데는 산페드로시의 요청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산페드로시의 빈민가에서 목 회활동을 하는 선교사 부부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교사인 이성원 조아라 부부는 바얀바야난, 란다얀, 꾸얍의 세 지역에서 14년째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란다얀에 있는 '빛과 소금' 교회에는 현재 교인이 180명 정도 되며 나머지 지역에는 순회 선교를 하고 있다는 이성원 선교사가 초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줬다.

"필리핀에 가톨릭교도가 많잖아요. 처음에는 닭의 목을 잘라서 교회 주변에 피를 뿌리고 저주하면서 나가라고 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특히 한국의료진의 무료 봉사가 저한테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사)여수지구촌사랑나눔회원들이 산페드로시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통역과 안내를 맡은 이성원, 조아라 선교사 부부. 란다얀 지역에서 14년째 '빛과 소금'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  (사)여수지구촌사랑나눔회원들이 산페드로시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통역과 안내를 맡은 이성원, 조아라 선교사 부부. 란다얀 지역에서 14년째 '빛과 소금'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 오문수

 

 

 란다얀 지구에서 이성원 조아라 부부가 선교활동하는 빛과 소금 교회. 베이 호수 인근이라 우기에는 침수가 되기도 한다고.
▲  란다얀 지구에서 이성원 조아라 부부가 선교활동하는 빛과 소금 교회. 베이 호수 인근이라 우기에는 침수가 되기도 한다고.
ⓒ 오문수

 


8살에 필리핀으로 이민 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조아라씨는 영어와 현지어인 따갈로그어에 능통해 공식행사 통역을 도맡았다. 그녀가 한국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필리핀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게 따분해 중학교 시절 한 학기를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한국 중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그런데 공부 못 한다고 손바닥을 때리고 매일 학원 다녀야 하며, 왜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 사느냐? 고 차별하더라고요. 3주 만에 필리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차별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봉사자 모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