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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것은 '낭만'이 아닙니다
탁트인 바다를 보고 '갈매기'처럼 느끼는 자유가 바로 '낭만'
  • 2019.02.09 05:27
종포 해양공원을 들른 관광객들이 밤사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던 모습

그것은 낭만(浪漫)이 아닙니다.

축방에 걸터앉은 아이들은 물끄러미 발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해초 사이에 불가사리도 있고 말미잘도 보였습니다. 아이들 시선이 흩어졌습니다. 꽁치떼가 지나가면서 수면이 일그러졌기 때문이었었습니다. 

물이 다시 잔잔해지자 검은 성게가 물속 바닥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눈을 찔끔 감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바닷물이 분수처럼 튀어 오르고 나머지 아이들도 무더기로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이제 아이들에게는 높았던 축방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자맥질을 하여 성게를 따고 고동도 잡아 올렸습니다. 다시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느그들 장군도까지 안 갈래?”
“저그는 먼디야.”

“안 멀어야. 돌산 뱃머리보다 가까워야.”
“그믄 니는 돌산까지 수영해서 가 봤냐.”

“암것도 아녀.”

여수에 돌산대교가 놓여지기 전, 해상케이블카가 오가기 전, 낭만포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술판을 벌이기 전, 해양공원 옛 지명 '종포'는 아이들에게는 '낭만'을 배우는 공간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소년은 중년이 되어 청춘들과 여수를 찾아왔습니다. 청춘들은 어느 가수가 유행시킨 '여수 밤바다'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여수를 가장 먼저 구경시켜 줄 해양공원에 서서 장군도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무를 둘러싼 화려한 조명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낭만포차

“나무들이 많이 아프겠다.”

청춘 한 명이 혼잣말로 웅얼거렸습니다. 고향이 여수인 나는 가슴이 뜨끔거렸습니다.

" 궂은 비 내리는 날 ♬ ~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스폰 소리 들어 보렴 ~♬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리 들어 보렴 ~

<중략>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 낭만에 대하여 ♬~♩ ~ "

 

구수한 허스키 목소리 중년 가수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 라는 노랫말입니다. 여수 하멜 해양공원에서 등대를 바라보며 부르기 좋은 노래이지요. 그 노래는 위스키 아니라 소주나 막걸리라도 목에 넘어가게 만듭니다. 

마침 해양공원에는 낭만포차가 줄지어 늘어져 있으니 술을 마시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딱 좋게 조성해 놓았습니다. 돌산도를 잇는 대교와 허공을 가르는 케이블카 푸른 조명을 받아 인조 된 낭만이 질퍽거립니다.

 

그러나 … 애석하게도 왜곡된 낭만에 대한 관념 대부분을 충족시켜 주는 최백호의 노랫말은 낭만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네는 낭만을 끈적거리는 회고적 감성 따위 정도로 인식하지만, 실은 이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 낭만입니다. 

인조된 분위기에 젖어 청춘의 들끓는 피를 자극하는 것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멉니다. 그러니까 노랫말이 고취시키고 있는 ‘낭만적 정서’는 실은 ‘낭만주의’ 와는 전혀 무관 합니다. 이런 낭만은 천민자본주의가 왜곡 조작해 낸 상업 정서에 불과합니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태동한 낭만주의를 주창한 대표적 작가 노발리스(Novalis, 1772~1801) 작품 어느 곳에도 최백호의 노랫말같은 회고조의 끈적거림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낭만주의자를 자처한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혁명가, 복고주의자, 무신론자, 신앙인 등 얼핏 보아서는 서로 정반대의 신념을 가진 복합체적 사상가들 중 어느 누구도 낭만을 최백호 정서로 주장한 사상가는 없습니다. 

고전음악 대위법을 청산하고 악곡의 형식에 구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한 낭만파 작곡가 쇼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멀리서 바라다보이는 여수 종포해양공원 야경은  술집 난장판이 눈으로 보이지 않아서 좋다.

본디 낭만주의는 데카르트 이후 이성이 인간의 감성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감성우선주의 문예사조입니다. 사물과 현상을 꿰뚫는 지적능력과 탐구력과 직관에 두었던 것이지요. 낭만주의는 다음의 기본적 사고들을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감정(직관)이 이성보다 중요하며, 집단보다는 개인이, 분석보다는 종합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따스한 육체와 피를 가진 창조적 영혼을 차디찬 이성으로 마비시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낭만주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흔히 로망이라고 하는 로망스(ROMANS)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구의 로망스가 일본에 유입되고 표기 되면서 일본식 발음으로 낭만이 되어버리고, 이것이 다시 한국에 들어오면서 취음(取音)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낭만(浪漫)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유자가 물 건너오면서 탱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의 유년시절 여수바다는 낭만을 훈련하는 푸른 운동장이었습니다. 남쪽으로 장군도는 그저 아이들 개구리헤엄으로도 도달할 수 있는 무인도였고, 동쪽 애기섬, 엄마섬도 수영으로 갈 것 같고, 북쪽으로는 휴전선 너머 중국 러시아 유럽을 휘젓고 다닐 꿈을 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돈키호테처럼 허세를 부리며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푸른 고등어처럼 수영을 했고, 갈매기처럼 바다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그것이, 여수가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본디 '로망스'라고 하는 낭만이라는 것입니다.

해양공원 근처 인도에 쌓인 쓰레기

그런데 누가 해양공원에 술집을 갖다놓고 여수 맛이라고 '낭만포차'라는 엉터리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것이 과연 여수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여수의 맛을 알리는 효과가 있을까요. 

관광객들은 그저 선창가 술집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않는데 누가 낭만포차라고 불리게 했을까요. 

그게 무슨 낭만이라고 어느 누가 선창가 포장마차를 찾아 다시 올까요. 

소년의 꿈에 날개를 퍼덕이게 했던 아름다운 여수바다가 어쩌다 이런 상업적 낭만에 오염되었을까요. 

반민족 분단주의 독재에 맞선 여순 항쟁 때 청년학생들이 진압군 상륙을 저지한 종포 해안이 어쩌다 난장판으로 변질되어 있을까요. 

언제쯤이나 여수를 찾는 청춘들이 미래  꿈을 향해 마음의 유영을 할 수 있는 해양공원 낭만이 되찾아질까요.

낭만포차가 종포해양공원 시민 휴식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해양공원 낭만이 아닌 난장판 포장마차 앞에서 김광섭 시인의 시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양영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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