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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 위에 끌로 새겨낸 동백은 어떤 모습일까

여수미술관 변정옥 초대전 '동백, 흙으로 피어나다'

  • 입력 2020.04.12 20:40
  • 수정 2020.04.21 11:33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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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옥의 작품은 탐미적이다. 대상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작품에 온전히 담아내어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11일 변정옥 초대전이 열리는 여수미술관에서 변 작가를 만났다.

도예가라고 하지만 그녀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그릇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도예가지만 도예의 방식으로 벽에 거는 평면 작품을 탄생시켰다.

작품 제작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1센치도 안되는 얇은 흙판 위에 분장토를 발라 하얗게 만든다. 그러고 나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다.

판을 건조시키면 가장자리가 먼저 마르므로 작품이 틀어지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작품에 들어가기 전 판을 만드는 일에 오래 공을 들인다.

앏은 판 위에 그림을 끌로 새겼다. 꽃술 위에 작게 도기를 붙여 입체감을 느끼도록 했다

평면 도예 작업에는 두께가 1cm도 안되는 아주 얇은 판이 사용된다. 동백꽃을 붙인 이유도 관객들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림만 있으면, 그냥 손으로 그렸나보다, 라고 생각하지 이 작품이 도판에 흙판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꽃을 붙여서 관객들이 입체감을 느끼도록 했죠”

도예 작품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바닥에 배치한다고 생각하지만 변 작가는 미술관 벽과 바닥에 그림과 조형물을 함께 배치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했다.

물건을 담는 용도가 아닌 오로지 감상만을 위한 도예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가마 속에서 굽고 나면 도자기 크기가 최대 30%까지 축소되기 때문에 크기가 큰 작품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긴장감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일반 회화와 달리 가마 속에서 깨지기라도 하면 작품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과정은 훨씬 까다롭지만 도예의 작품 크기로 가치를 매기는 관람객들은 그 수고를 짐작하기 어려워요"

변 씨의 작품은 선이 아니라 끌로 파내 더 새롭다. 흙판이 단단해지기 전에 뾰족한 물건으로 그림을 새긴다. “펜이든 나무막대든 연필이든 뭐든 가능하다”며 자신은 대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사용한다고 말했다.

둥근 테두리는 속이 비어있다. 흙덩어리로 꽉 채우면 굽는 과정에서 터지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 여러곳에 작게 숨구멍이 나있다

다음으로 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일반 수채화물감이나 유화는 굽는 과정에서 모두 타버리기 때문에 도자기물감처럼 고운 돌가루를 섞어 사용한다.

또한 가루이기 때문에 안으로 스며들지 않아 손이 닿기라도 하면 안료가 지워지므로 주의해서 발라야 한다. 변 씨의 작품이 더 회화적으로 느껴지는 건 흙판에 물을 섞는 방식으로 그라데이션 기법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후 초벌로 굽고 완료처리 한다. 도자기 공예가들조차 변 씨의 작품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두께가 얇을 수 있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같은 독창적인 기법은 변 작가가 고등학교 시절 배운 회화를 도예와 접목하면서 생겨났다.

고등학교 시절 회화를 주로 그린 변 작가는 어느 순간 ‘흙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도예학과로 진학했다.

변정옥 도예가

“그 생각을 안했어야 했는데”라고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도예라고 하면 백자 기법, 분청 기법이라는 걸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개념 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라고 독창적 세계를 구축하게 된 비결을 설명했다.

"손으로 조물조물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작품에 꽃 말고도 사람을 붙여본 적도 있다"

그의 말을 들으면 즉흥적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 같지만 의외로 작품에 들어가기기 전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시간이 길다.

평면작업인 경우 스케치로 머릿속 구상을 옮기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종이에 스케치를 하긴 하지만 도기 같은 입체작업은 형태에 따라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작품 배경에는 돌가루 섞은 물감을 사용해 색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했다

특히 도자기는 굽는 과정에서 자주 깨진다. 변 작가는 “40년 도예작업을 하다보니 이제는 작품을 만들 때 욕심 없이 마음을 내려놓고 임한다”고 웃어보였다.

“깨지는 경우도 많지만 예상과 다른 색이 나오기도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재밌는 형상이 나오기도 한다. 그게 도자의 매력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작업 과정이 매우 즐겁다 나는 즐겁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도자기를 오랫동안 굽다보니 깨지며 작품이 완성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그러다보니 결과보다 과정에 더 의미를 두게 됐다. 온전한 작품이 나오면 내 실력이 아니라 덤으로 얻은 행운이라고 여긴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변 작가는 어떤 계기로 동백꽃을 소재로 작업하게 되었을까.

“20년 전 영취산 진달래꽃을 보러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흥국사 산속을 들어가서 동백숲을 봤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오동도 동백꽃이 발자국으로 모습이 흐트러진 것과 달리 흥국사 동백은 꽃이 그대로 떨어져 땅바닥에서 원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아직도 동백꽃과 관련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서봉희 관장은 변 작가의 작품을 두고 장식성이 짙은 점이 특징이라 말했다.

서 관장은 “최근 도기 작품의 유형은 실용성보다 장식성을 추구한다. 초기에는 실용적인 접시를 만들어내는 도예 위주로 작업했지만 최근 회화색이 짙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동백꽃이 떨어진 오동도숲을 형상화했다

그러면서 서 관장은 “변 작가의 작품은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맛이 있어 소장하고픈 마음을 드러내는 관람객들이 많다. 특히 여수 시민들은 동백꽃이 낯설지 않으니 더욱 친숙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 김지연 씨 역시 “변 작가의 꽃은 살아있는 생화같다”고 평했다.

한편 단국대 대학원 도예학과를 졸업한 변 작가는 현재 전남대 여수캠퍼스 평생교육원 전담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7월 달빛갤러리에서 ‘동백’을 테마로 전시회를 연다. 이번 여수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이 아닌 새로운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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