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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진실 규명과 해원, 그리고 상생

  • 입력 2021.06.19 10:10
  • 수정 2021.06.19 11:16
  • 기자명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회 민덕희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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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소개글

여순사건특별법이 지난 4월 법안소위 통과 두달 만에 국회 행안위를 통과했다. 2001년 16대 국회에 처음 발의되고 나서 20년만이다.

무고하게 희생당한 민간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발의된 여순사건특별법은 좌우 이념 문제가 개입하며 오랜 시간 법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여순사건특별법은 21대 국회에서도 계류되며 법안 통과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행안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며 역사적 당위성을 인정받았다.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 진상을 규명하는 법이 통과되기까지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홍보단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지난 2019년 제주도를 방문해 제주4.3위원회와 여순사건특별법 제정방안을 논의했고 지난 11월에는 여수 시내 곳곳에서 ‘여순사건특별법제정 촉구 출근길 캠페인’을 펼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지역민들의 숙원인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해 그동안 여의도 국회로, 바다 건너 제주로 동분서주한 여수시의회 여순특위 민덕희 위원장의 기고문을 싣는다.

▲여수시의회 여순특위가 이순신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특별법제정을 촉구했다
▲여수시의회 여순특위가 이순신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특별법제정을 촉구했다

굴곡이 많은 해안선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를 가진 반도의 끝 ‘여수’.

이순신이 연전연패하던 조선 수군을 이끌고 첫 승리와 함께 개선했으며,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의 상황에서 나라를 지켜냈던 거북선을 만들었던 호국의 성지.

그러기에 여수는 바닷가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허투루 볼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쉼없이 출렁이며 바다와 함께 살아온 여수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도 여수밤바다를 유유히 흐르고 있다.

고소동 오포대에 올라 여수밤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회가 새롭다.

밤늦도록 내항을 오가는 배를 따라 시선을 옮겨 돌산대교와 장군도, 돌산공원, 거북선대교의 모습이 관광도시로서의 여수를 알리며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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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순특위 민덕희 위원과 주철현 국회위원이 국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을 만났다

그리고 거북선대교 너머 시선이 멈춘 곳에 보일 듯 말 듯한 ‘애기섬’이 눈에 들어온다. 여수 사람에게 ‘애기섬’은 가슴 아픈 곳이다. 여순사건 이후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하여 통치수단으로 삼았던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보도연명에 강제 가입되어 감시대상이었던 여수여천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이 애기섬 근처로 끌고 가 수장시켰다.

우리가 보고 있는 여수밤바다의 화려한 조명 속에 가려진 여수의 아픈 역사는 우리 주변 곳곳에 치유되지 않은 채 덩그러니 또다른 여수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현대사의 질곡

▲여순사건 유족 서장수 씨와 여수시의회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15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실을 방문했다
▲여순사건 유족 서장수 씨와 여수시의회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15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실을 방문했다

여순사건은 여수사람들에게 아직도 크나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함부로 들춰낼 수 없는 여수의 아픈 이야기인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남아 있는 사람들은 눈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엎드려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아직 진실이 낱낱이 규명되지 못한 채 여러 개의 왜곡된 시선이 존재한다.

실례로 마래터널을 지나 만성리해수욕장으로 가다보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 이어지고 그 길 가운데 산쪽으로 움푹 패인 곳에 여순사건 위령비가 남해 바다를 굽어보고 외로이 서 있다.

위령비 앞에는 표지판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서 있다. 왼쪽 안내판에는 ‘만성리 희생지’, 오른쪽 안내판에는 ‘만성리 학살지’로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위령비 후면에는 '......' 만이 새겨져 있어 고인과 유족들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아직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현대사의 질곡을 여실히 보여준다.

해방 이후 어수선했던 국가적 상황은 여수도 비껴가지 않았다. 신월동에 주둔했던 14연대가 제주 4・3사건의 무력진압 출동명령을 거부하면서 평온했던 생활 터전이 일순간 살육이 난무하는 비참한 현장으로 뒤바뀐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여순사건으로 인한 피해자가 1만 5천명에서 2만 5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피해 규모 측면으로 보면 제주4・3사건(피해자 2만5천~3만명 추정)에 못지 않은 국가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제주4・3사건, 거창학살사건, 노근리학살사건, 5・18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 등은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실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선 반면 유독 여순사건만큼은 지난 16대부터 현재 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특히 지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여순사건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개별적인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권고한 바 있음에도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을 들어 반대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개별적인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는 포괄적 과거사를 다루는 위원회의 성격과 기능으로는 여순사건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구조를 제대로 조사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직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시간이다

 

이제, 우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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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특위 민덕희 위원장과 주철현 국회의원이 유가족을 만나고 있다

눈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엎드려 울어야만 했던 유가족들에게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해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더 나아가 지역을 위한 상생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의 기다림은 남은 유가족들에게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것과 다름 없다. 21대 들어 전남동부권 5인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한 여순사건특별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늦은 면이 없진 않지만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은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장으로 매우 뜻깊게 다가온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 가짐으로 특별법 제정의 고비를 유가족을 비롯해 모든 시민과 함께 넘을 수 있도록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회도 함께 할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여순사건의 진실규명과 해원, 그리고 지역의 상생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간절히 기도한다.

국회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정부는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명예회복과 피해 보상에 적극 나서기를 촉구한다.

여순특별법 제정은 대한민국의 국격과 정치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회는 특별법이 제정되는 그날까지 모든 시민들의 염원을 모아 해원과 상생의 길을 열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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