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래산이 태양 절반을 삼키고 있었다. 햇살은 날카롭게 분절되어 스카이타워 전망대 통유리를 뚫고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덕충동 사방을 내려다보았다. 널빤지로 얼기설기 이어 만든 판잣집들 대신에 아파트가 세워져 있고 바닷가에는 엑스포 전시장 건물들이 들어차 있는 이곳은 영자가 살았던 곳이다.
영자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창 영자는 밥장사를 한다. 건설현장을 따라 다니며 인부들 도시락이나 밥을 판다. 영자는 여수 이곳저곳에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밥장사가 꽤 괜찮은 장사라고 했다. 요즘은 섬에서 밥장사 한다. 낙후된 어촌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뉴딜사업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은 영자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는 중이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유년시절에도 있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달고나 뽑기 선수였고, 고무줄놀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당시 초등학교 앞에는 연탄화덕에 국자를 얹혀 놓고 베이킹소다를 섞은 설탕을 달구어 파는 달고나 장사꾼이 있었다.
장사꾼은 설탕을 녹여 만든 화려한 왕관이나 칼 등을 걸어놓고 남자아이들을 달고나 판에 끌어들였다. 달고나 뽑기에 성공하면 받을 수 있는 상품들이지만 그건 전교 일등 하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은 이른바 달고나 선수인 영자에게 투자했다. 영자는 남자아이들에게 웃돈을 받아 챙기고 대신 달고나 뽑기를 하여 남자애들 손에 칼을 쥐어주었다. 영자에게 붙는 프리미엄 값은 치솟았다. 그러나 영자가 뽑기에 실패해도 남자아이들이 투자한 돈은 회수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때가 아마 영자의 일차 전성시대였던 것 같다.
영자는 또 고무줄놀이에도 여왕이었다. 최후까지 살아서 고무줄을 타는 여자아이는 바로 영자였다. 영자가 고무줄놀이 여왕으로 군림하던 영토는 여수 덕충동 연탄공장 앞 공터였다. 지금 내가 있는 스카이타워 건물 자리인 것이다. 여기에는 항상 귀환정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고 바닷가에는 쥐치포가 그물망에서 미라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쪽방촌 귀환정 아이들 영토였다. 영자는 이곳에서 살았다.
영자 아버지는 귀국동포였다.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갔다 해방 후 귀국선을 타고 도착한 곳이 여수 덕충동, 지금의 여수 엑스포 전시관 자리였다. 여수사람들은 이곳을 귀환촌이라고 불렀고, 귀국동포들은 귀환정이라고 불렀다. 원래 이곳에는 철도도 여수역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이 지배하면서 중국대륙 침략하기 위해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만든 것이 여수역이었다. 해방과 더불어 일제로부터 탈영토화 된 이곳을 감싸 안은 것은 여수 인민위원회이었다.
여수 인민위원회는 귀환정 귀국동포 구제사업을 펼쳤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자연의 섭리에 따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여수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이 인민위원회라는 자율적 행정집합체로 결집된 것이었다. 여수 인민위원회는 1948년 여순10.19 때도 행정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담당했다. 박애, 상호부조, 평등이라는 상호부조적 인적 연합체 여수 인민위원회 성격은 다름 아닌 아나키즘(anarchism)의 발로인 것이다. 아나키즘은 민중이 창출해 내는 의식이고 지배의식과 탄압에 저항하는 민초들의 풀뿌리 저항의식이며, 지배체제가 무너진 공백시기에 권력을 대신한 상호연대부조 정신이 아나키즘적 공동체 정신인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이승만 초대정부가 들어서긴 전 해방정국에서 이곳 귀환정 주권은 국가가 아니라 여수 공동체에게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초대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지자 귀환정은 철도청 즉 국가소유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귀환정 귀국동포들은 무단으로 땅을 사용하는 불법점유자가 되어버렸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영토와 주권을 가진 국가가 탄생함과 동시에 시민권이 상실되는 호모사케르가 생겨난 것이다.
새로운 지배권력은 국민통합을 내세우면서도 시민과 시민 아닌 사람으로 갈라치기 했다. 국가에 대한 빚을 지도록 만들어 이를 변제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분류했던 것이다. 지배체제와 권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 즉 국가와 지배권력에 조응할 수 있는 국민과 그럴 능력이 없는 채무자로 나누었던 것이다. 지배질서가 작동하는 사회시스템 안에 편입된 사람이 시민이고 귀환정 사람들은 사회시스템 테두리 밖으로 튕겨 나갔다. 국가가 사람을 이렇게 분류하는 까닭은 다름 아닌 지배권력에 복종하게 만들기 위한 권력기술인 것이다.
귀환정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국가에 빚을 지고도 갚지 않는 악성 채무자가 되어버렸다. 사회와 법 테두리 밖으로 튕겨나간 이런 채무자를 조르지 아감벤 (Giorgio Agamben, 이탈리아의 철학자 1942년 4월 22일 ~)은 ‘호모 사케르라’ 고 부른다. 로마법에 의하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토지를 소유한(슈미트) 시민권자의 권리는 옹호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법의 보호 테두리 밖으로 추방된 자들이 호모 사케르인 것이다. 그리스 폴리스에서도 내분류에 따라 국가와 법의 보호와 투표 등의 권리를 갖는 시민은 아무나 될 수 없었다. 여성, 노예, 외국인은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분류는 사유재산제 발달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시민권이었다.
시민에 속하지 못하는 호모 사케르 귀환정 사람들의 삶은 그리스 시민사회 개념을 끌어와 붙이자면 조에(zoe)적이었다. 조에 라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 공통으로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표현’ 한 것이다. 즉 물리적으로만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조에적 삶에 대한 전근대적 통치방식을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력이라고 푸코는 진단했다. 전제군주시대에는 이렇게 몫 없는 자들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국가가 탄생하고 근대적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 이들은 살게 내버려 두고 죽게 만들었다. 지배권력은 자신들이 구축하는 사회질서와 지배체제에 순응하여 편입되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갖도록 하여 사회화로 길들이는 것이다. 영자의 달고나 뽑기 기술도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연마되었다. 시민사회에 편입된 아이들과 어울리려면 뽑기라도 잘해야 했다. 영자의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귀환정 사람들이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1969년 채권자인 국가는 악성 채무자인 귀환정 사람들을 국가권력을 이용해 강제명도실행을 했다. 이른바 사람이 죽어나가던 귀환정 철거사태인 것이다. 여수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신 어르신들은 몇날 며칠 동안이나 전쟁과도 같았던 귀환정 철거사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특공대를 투입해서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여수는 1948년 여순사건 학살로 한번, 그리고 1969년 귀환정 철거사태로 다시 한 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쳐 지배질서에 종속되어 갔다.
결국 귀환정 사람들도 국가폭력에 의해 사람이 죽어나가는 과정을 견디어냈지만 지배질서에 편입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힘의 논리에 복종하게 된다. 그것이 철도청에 납입하는 지대사용료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귀환정 사람들이 비오스(bios.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성)적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배권력이 통치하기 유리한 특정한 비오스를 심을 수 없는 사람들로 이미 낙인 찍혔기 때문이었다. 짐이 곧 국가이고 아버지라는 봉건적 지배의식이 착종된 군사독재권력은 귀환정 사람들에게 지대납부를 받고서도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 두었다. 생사여탈권을 지닌 아버지 즉 국가가 버린 자식들인 것이다. 귀환정에는 수도시설도 없었고 화장실도 한 곳 밖에 없었다.
그 후 세월이 또 흘렀다. 귀환정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여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개발 명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자신들의 터전을 내주고 말아야만 했다. 2012년 여수엑스포 행사였다. 그로써 영자의 전성시대도 막을 내렸다.
그러나 영자는 도태되지 않고 여수 개발붐을 타고서 다시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영자가 늘 기대하는 것은 여수 도처에 낙후된 지역이 철거되고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구는 발전을 위해서 개발을 주장하고, 누구는 그로인해 이득을 챙기겠지만, 영자는 개발지역 밥장사를 하면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나 살펴봐야 한다. 여수시와 여수시 의회는 더욱더 세심히 살펴야 한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어울려 살아야 하는 여수공동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