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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이런 사랑 이야기가 있구나"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 입력 2022.07.06 11:41
  • 수정 2022.07.06 13:29
  • 기자명 차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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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1. 영화를 보았다

드디어 개봉날. 지난 6월 29일 오후 광양 LF스퀘어 CGV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를 보았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따라 영화를 향한 내 마음은 3단계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어, 이상해, 이게 아닐텐데, 이건 박찬욱이 아니야" 지루하고 어색하고 무디었다. 겨우 이런 작품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고? 이상한데?

그다음 영화 초중반쯤 두번째 단계에선 상황이 바뀐다. 푹신하게 드러누운듯한 자세를 고쳐서 다시 반듯하게 앉고서는 "어, 그래 맞아, 그렇지, 이제 뭐가 나오기 시작하겠군," 이름값 제대로 할것같은 느낌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다가왔다.

그리고 주욱 진행되면서 세 번째엔, 허리를 곧추 세웠다. 눈을 반짝였다. 한편으론, 영화에 깊이 몰입하고 다른 한편으론, 생각에 몰두하며.

2시간 20분 동안 끝까지 긴장을 유지했다. 아니, 영화가 나를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다. "명불허전, 명성이 헛되지 않고, 이름이 날만한 까닭이 있음에 흔쾌히 동의했다."

2. 박찬욱을 생각하며

내용을 장황히 소개하지는 않겠다. 허나, 먼저 관람한 자의 예의로 몇가지 생각해 보고자한다.

산 암벽 추락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이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범행을 밝혀야 하는 형사, 여자는 범행을 의심받는 용의자.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타살인가?

잔혹한 범죄 스릴러의 형식과 외피를 띠고 있지만 분명 멜로드라마이다. 영화관에 가기 전 가능하면 박찬욱을 조금 알아보면 도움이 될것 같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모두 그의 작품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작이며 동시에 세계적 걸작이다. 주제는 인간 심연에 도사린 증오와 복수가 주류를 이룬다. 또한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나 영상미학의 예술적 측면에서도 독보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러기에 세계적 유수한 영화제에서 굵직한 큰상도 휩쓸어 담았다.

첫째, 그의 작품은 모두 하드코어다. 강도가 높고 거세고 빡세다. 선정성, 폭력성, 노출, 잔혹장면, 엽기적 범죄... 가히 세계정상급.

가령 '올드보이'를 떠올려보라. 15년 동안 '오대수'를 사설감옥에 쳐넣어놓고 군만두만 먹인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수긍이 갈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영화 말미에는 스스로 자기 혀를 동강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해된다. 세상은 하드코어이다. 우리네 삶을 둘러싼 것들을 떠올려 보라. 고통, 슬픔, 폭력, 투쟁, 억측, 이별, 질환, 차별, 질투, 살인, 이기심, 전쟁, 무관심과 방관, 그리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삶의 모순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펼쳐지고 서로에게 늑대가 되어 자기 이익을 위해 으르렁거린다. 인간세상은 짐승이며, 아수라이고, 아귀의 지옥이다. 언론의 사회면, 경제, 정치, 국제면을 한번만 훑어보면 부인하기 어렵다.

인생이 분명 이런 속성이 있을진대 그리하여 이런 내용을 표현하려는데 어찌 하드코어가 동원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를 이해해야 한다. 그의 고민에 동참해봐야 하리라.

둘째, 뿐만아니라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중첩적이고 비약과 은유가 곳곳에 숨어있다. 정신 바짝차리고 내러티브(인과관계에 따른 줄거리 전개)를 잘 따라가야한다. 자칫하면 놓친다. 동시에 가끔, 갑자기 과거로 시점 이동하며 회상과 반복 강조를 위해 활용되는 플래시백(Flashback)도 잘 수용해야 한다.

셋째, 또하나 미장센(영화장면에 나타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경, 의상, 물건, 색상, 조명, 소품 등등 )에 주목해야 한다. 고도의 상징성을 담고 있으면서 장면 하나하나를 통해 배우들의 대사 이외에 상당한 이야기를 전하려한다.

예컨대, 이런 경우이다. 부산의 구소산은 증오하는 ‘기도수’. 이포의 호미산은 사랑하는 ‘해준’. 구소산에서는 그놈을 추락시킨다. 호미산에서는 그이를 백허그한다. 이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고도의 상징이다

색상도 그렇다. 빨간색은 범죄 폭력의 현장에 등장한다. 초록빛은 생명 진실 구원을 상징한다. 무릇 대부분의 영화, 거의 모든 감독이 이런 미장센을 추구한다. 하지만 박찬욱은 더욱 특별하다.

▲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3. Love Story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박 감독은 이 작품에서 우리에게 배신을 때린다. 그동안 다른 영화에 표현되었던 위에 언급한 강렬한 하드코어는 여기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거나 애써 참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어찌보면 하드코어에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당의정을 씌워서 그는 이제 사랑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러브스토리도 강렬하다.

이 작품은 분명 사랑이야기이다. 이유를 아시겠지요?

이 세상은 위에서 언표한대로 강렬하고 엽기적이며 부정적이고 범죄적인 요소들이 있다. 허나 동시에 맑은 물줄기처럼 흐르는 깊고 뜨거운 사랑이 있다. 거센 폭우와 따스한 햇살이 교차하듯.

이때 사랑을 얘기하면서 감독은 사랑의 .종류에 대해서는 굳이 분별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사랑의 스펙트럼은 얼마나 넓고 다양한가? 제대로 된 사랑부터 시작하여 불륜이든 엇나간 사랑이든 온갖 사랑을 상정하면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

사랑이 어찌 표현되며, 어떻게 진행되고 결말짓는가를 주목해보면, 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명징하게 몇가닥 생각이 흐를 것이다. 분명히.

4. 사랑의 증거 (A)

영화에서 남ㆍ녀가 엇갈린듯 하면서도 결국은 사랑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한 부분을 소개한다.

여자가 말한다. "당신은, 분명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남자가 대답한다. "내가 언제? 내가 그랬다구요? "

사실은 이렇다. 수사관인 남자는 늘 그랬듯이 철저히 수사하고 여자의 결백으로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후 여자가 일하는 집에서 결정적 범행증거를 발견한다.

이때 남자의 선택은? 형사 '해준'은 여자 '서래'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완벽히 구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즉, 범죄의 증거가 또렷한 휴대폰을 건네주며 말한다. 그것을 바다에 버려 증거를 인멸하라고. 그러면서 자신은 스스로 붕괴되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여인은 그것을 사랑으로 인식한다. 자신을 붕괴시키고 여자를 구하려는데 어찌 그게 사랑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전에 깊은 교유도 있었다. 여자가 맞았다. 남자는 다만 애써 표현하지 않으려 참았을 뿐이다.

노래 ‘사랑이야’ 에는 이런 시 구절이 나온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촛불하나 이렇게 밝혀 놓으셨나요” 이것이 여인의 확신이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사랑의 감정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들, 굳이 감추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들이 있게 마련이다.

5. 사랑의 증거 (B) - 직업윤리, 섹스윤리, 그리고 사랑윤리

두 남녀 사이에 오갔던 정황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봐야겠다. 윤리라는 것은 모두를 편하게 만들려는 약속이자 장치이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쉽게 보인다. 규정의 범위 내에서 충실하면 모두 평안하다. 허나, 인간사는 자주 엇나가게 되어있다. 그것 또한 자연의 이법(理法) 아닐까?

자, 세심히 들어갈까요? 남자는 직업윤리를 어긴다. 사랑을 위하여,,, 범죄를 확인하고서도 그것을 덮는다.

여자는 섹스윤리를 어긴다. 사랑을 위하여,,,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제약을 넘나든다.

물론 남자도 더불어 섹스윤리도 어긴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모든 생각과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그 두 사람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그래서 결국 남자는 여자와 1차 결별을 결심한다. 이때 남자는 선언하는데, 사뭇 비장하고 엄숙하다.

”당신 때문에 나는 (직업적 자부심도 잃고, 품위도 잃었으므로) 붕괴되었다. 이제 당신은 바다 깊숙한 곳에 아무도 모르게 이 휴대폰을 버려라. (당신을 보호할 것이다)(증거를 인멸하라)".

이 말은 남자가 여자에게 던지는 가장 강렬한 “I LOVE YOU” 이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는 없었지만, 그 시각, 온 우주는 그 남자의 그 여자를 향한 “I LOVE YOU”로 메아리쳤다.

이에 여자는 응답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이 나게 되었고, 당신의 사랑이 끝이 나자,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사랑을 향한 이런 깊은 사유와 결의를 서툰 한국어로는 할 수 없다. 당연히 그녀의 모국어인 중국어로 윤율에 맞춰 노래하듯 언명한다.

이 4 구절의 의미가 바로 다가오시나요?

이후 여인은 어떤 행로를 걷고 남자는 어떤 삶을 살까? 그리고 영화 말미, 남자는 깊이 깨달았다. 품위로, 이성으로, 윤리로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운명을, 그 운명적 사랑을 수용하려한다. 온 몸을 던지며 밀물이 거세게 그를 덮치는 절체절명의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여자를 목놓아 부르며 애타게 찾는다. 이제 아무 소용없는 일인데,,,

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윤리가 이해되는가? 남자는 사랑을 위하여 자신을 붕괴시킨다. 여자는 사랑을 위하여 자신을 우주에 내던진다. 이 지점에서는 그 사랑이 어떤 종류인가를 따지는 것은 저 피안으로 승화되어버리는 것일까?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의 공원 (The Garden) 이라는 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천년이 또 천 년이 더 걸린다 해도 충분하지 않으리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입맞춤한 그 영원의 한순간을 말하기에는"

6. 헤어질 결심

제목이 궁금한가? 마치 이혼 직전의 두 남녀가 벌이는 심리적 갈등인 것 같은가?

전혀 아니다.

이 제목은 절묘하고 탁월한 작명이다. 영화에는 ‘헤어질 결심’이라는 말이 딱 한 번 표현된다. 처음 사건에서 둘의 관계가 잠정적으로 종료되고 13개월이 흐른다. 두 사람은 다른 도시에서 다시 또 만난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여자는 재혼한 상태.

이후 우여곡절의 잔혹한 사건이 흐른 후 남자가 여자에게 답답해하며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훌륭한 사람인데 왜 저런 엉망진창인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인가?"

여자는 이에 답한다. "다른 사람과 '헤어질 결심'을 했기 때문이지요."

즉, 당신과 헤어지기 위해서 구태여 의지를 동원해 큰 결심을 해야했고, 좋아하지도 않은 남자와 결혼한 것이라는 것이다. 당신을 잊기 위하여 억지로 한 것이라는...

▲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7. 정훈희 송창식 - 안개

뜬금없이 등장하는 7080 가수 두사람은? 영화의 OST를 이 둘이 부른다. 노래는 "안개"

실은 박찬욱 감독이 오래 전 이 노래에 꽂혔고, 어쩌면 이 노래가 이 영화의 최초의 모티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안개도시 '이포' 이다. 바다에도 늘 안개가 드리워져있다.

상황이 그렇다. 어느 하나 분명한 것이 없다. 흐릿하고 경계도 모호하다. 범인인지 아닌지, 사건의 전개 과정도, 두 사람의 관계도, 사람들 마음 속 심리상태도...

영화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은가? 이 노래 '안개'는 정훈희가 매우 어렸을 적 세상과 사랑을 잘 알지 못했을 10대 시절 불렀는데 이번에 새로 녹음한 노래는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파란만장 세월 후 할배 할매가 된 이 두 사람은 노래에 무엇을 담았을까? 어떤 인생이 담겼을까? 두번 성대결절 수술을 한 송창식, 55년을 건너온 정훈희, 꼭 들어보시기 바란다.

노래는 중요한 삶의 자료이다. 오랜 세월 스쳐간 온갖 인연과 추억들이 노래에 스며들어있다. '안개' 들으며 음미하니 지난 세월이 소환된다. 곡도 시도 절창이다.

난 지금 노래 '안개'를 연속재생으로 수십번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 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 다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안개, 이 노래에서는 이렇게 권유한다.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이젠 잊고 새길을 가라고 넌지시 옆구리를 찌르는 듯하다.

그러나 여자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지 않는다. 확정했던 사랑의 행로를 그대로 따른다.

백사장 모래를 깊이 깊이 파고 자신을 묻는다. 거대한 밀물에 운명을 맡겨 스스로를 모래톱 깊은 곳으로, 바다 깊은 곳으로 잠들게 한다. 우주 한가운데로 보내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의 계속되는 사랑을 우주에 봉인(封印)해 버리고 그것을 통해 사랑의 영원성을 획득하려 한다. 안개 드리운 바다에서...

'안개' 기회가 되면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8. 사랑의 발명

어쩌면 감독은 우리에게 강권한다. 토목기술보다도, 휴대폰 전자기술보다도,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보다도, 시급히 발명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사랑을 발명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증오와 방관으로 공멸할지도 모른다고.

‘사랑의 발명’ 이라는 시(詩) 한편을 소개한다. 제목이 참 기발하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 이영광 -

9. 요즈음, 사랑이 더욱 그리워

요즈음 왠지 쓸쓸할 때가 종종 있다. 나이를 조금 먹은 때문일까? 이럴수록 더욱 사랑의 힘이 필요한데 주변에선 쓸쓸한 소식이 들려온다.

오랜만에 간 국민학교 동창회에서는 보고싶은 친구 하나가 오지 않았다. 알아보니 몸져누웠다가 지금 회복중이다. 통화해 보니 목소리 힘이 예전 같지 않다. 쾌유를 빈다.

젊은 날 경쟁하듯 치열하게 토론했던 영혼의 친구 수십년 만나지 못했는데 그사이 목사가 되어있었고 며칠전 느닷없이 연락이 왔다.

지금 병원에 있다고. 지금은 통화도 할수 없다. 쾌유를 기도한다.

함께 강의하면서 깊이 교유했던 친구, 뜬금없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60세 이상은 이민제도를 없애도록 국가에 건의를 해야하는 것인가?

하지만, 빛나는 성취의 소식이 또 많이 들려온다. 사랑의 힘이다. 어찌하든 사랑을 발굴해야 하겠다. 마치 여름날 제습기가 공기 중의 물을 채집하듯.

사랑을 찾아내야 하리. 글을 맺으려 한다. 포만감으로 배가 부르다. 그리하여, 아량을 베풀어볼까요?

영화 초두 약간 어색함과 영화 말미 생뚱맞게 형사로 등장하는 어느 개그우먼에 대한 아쉬움은 기꺼이 용서한다.

나의 두가지 에피소드로 맺는다.

첫 이야기. 요즘 나는 새로운 습관 하나가 생겼다. 우유를 작은 팬에 붓고 불에 데워서 밤꿀을 넉넉히 탄 후, 달달하고 뜨겁게 우유를 마신다. 이것을 보고 딸이 묻는다.

"아빠, 요즘 왜 그리 마셔요?"

"글쎄, 그냥“

생각해보니 어렴풋한 추억 하나 생각난다. 어린 시절 어느날 아버지는 여수 관문동에 있는 어느 다방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당신은 커피를 마시고, 내게는 우유를 시켜주셨다. 달콤했던 우유를. 아마 지금 나는 그 추억을, 그 사랑을,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이야기. 영화 보던날. 스토리가 종료되고 화면에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송창식 정훈희의 듀엣 '안개'가 흐르면서. 영화에 대한 예의로 나는 그대로 앉아 끝까지 볼 작정이었다. 다 오르면 박수를 힘껏 칠 요량이었다.

십수명의 다른 관객은 어느새 퇴장. 이때 입구에는 영화관 직원이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감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때 난 잠시 더 앉았다가 그냥 일어섰다. 노래는 계속 흐르고, 화면은 움직이는데 그냥 일어섰다. 퇴장하는 입구에서 그 젊은이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도 인사를 건네고 극장을 나섰다.

아마 박 감독은 나의 우렁찬 박수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 국제학부 차성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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