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광무동 큰길가 언덕배기에는 대장장이 서인식(75)씨가 산다. 서씨는 여수에서 홀로 남은 유일한 대장장이다. 어렵사리 만난 그였지만 취재요청에 한사코 손사래다.
지난 28일이다. 여수에 하나뿐인 진남 대장간에서 만난 그는 “별 할 얘기가 없다”며 무심한 얼굴로 섭씨 1천500도가 넘는 화덕에다 쇠붙이를 넣어 달군다.
불에 달군 쇠붙이 탕탕 쿵쿵... 자동차 판스프링이 호미로 변신
서인식씨는 경력 48년째인 베테랑 대장장이다. 그의 대장간에서는 삼면이 바다인 여수의 특성상 바다에서 난 갯것을 채취하는 도구를 주로 만든다. 이곳에서 도구 제작에 사용하는 쇠붙이는 폐차장에서 구해온 자동차용 판스프링으로 쇠가 강해 그 쓰임새가 많다.
그는 굴까는 조새, 밭을 매는 호미, 쇠스랑, 등 농어업용 도구와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사용하는 특수 공구 등을 만든다.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그의 제품은 사용이 편리한 데다 튼튼해 한번 사용해본 고객들이 다시 찾는다. 실용성은 물론 쇠의 강도가 좋은 고급 제품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자신이 만든 제품이 수입산 보다 더 품질이 뛰어나다며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에게 화덕 온도를 묻자 “갈탄을 넣어 불을 붙인 화덕에서 쇠가 녹을 정도니까 1천500도는 넘는다”며 “바람 좀 세게 하면 화력이 세져 쇠가 녹아내려요.”라고 말했다.
이어 불에 달군 쇠붙이를 모루에 올려 망치질하기를 수차례. 다음은 자동 해머에서 메질을 반복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농기구인 호미 형태가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호미 4개를 동시에 만든다. 한 시간여 남짓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호미 만들기 작업이 종료되었다.
대장장이 서인식씨가 수작업으로 직접 만든 호미 한 개의 가격은 9천 원, 쇠스랑은 한 개에 2만5천 원이다.
그는 “여수에 대장간이 6~7개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까 다 사라지고 10여 년 전부터 혼자 남았어요. 특별하게 주문 들어오는 것은 없고 잡동사니를 다 만들어요. 중국산에 비해 단가가 높아 우리 가게에는 꼭 필요한 사람만 찾아오죠.”라고 말한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알려주었다. 대장장이는 1975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배우려고 하신 분들 없어요?’”라고 묻자 “돈벌이가 되어야지?”라며 오히려 반문했다.
이어 그는 그라인더에다 칼을 연마해 날을 세운다. 그라인더 커터날이 할퀴고 지나간 칼날에서 수많은 불꽃이 피어난다. 10여 평 남짓한 서씨의 대장간에는 한낮에 울려 퍼지는 금속성의 그라인더 소리만이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