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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칼럼] 서글플 땐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

껍데기처럼 사는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입력 2023.09.26 13:35
  • 수정 2023.09.27 07:25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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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꽃으로 피어났다. 슬픔이여! 이젠 안녕.
▲ 마침내 꽃으로 피어났다. 슬픔이여! 이젠 안녕.

엊그제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학생들과 감상하였다. 작품 감상이 끝날 무렵 U군이 뜻밖의 질문을 하였다.

“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나요. 시를 배우고 나서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횡포나 백성을 위선으로 대했던 위정자의 태도를 곱씹어보니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예상치 않은 질문인지라 우린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고, 잠시 삶을 돌아본 후 사람과 삶에 대한 관점을 학생들에게 말하였다.

”어린 시절 이 말을 들었을 때 자부심을 가졌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너처럼 인간을 극찬한 문장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 특히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었기 때문일 거야.

보편적으로 많이 배우고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영장(靈長) 지수가 높아야 하잖아. 배움이 많은 것과 지위가 높은 것하고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 요즘 역사를 공부하며 사람들의 언행을 들여다보며 상처를 받곤 했어. 학교에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역사를 배웠을 때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시장, 검사, 회장 등등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삶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후로는 그 사람의 언행을 찾아보고 관찰하며 평가하고 있어. U군아, 너의 질문에 정답을 줄 수 없지만, 너의 의문에 공감하고 있어.“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 전문을 음미해 보자.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구름아! 함께 동행하자꾸나.
▲ 구름아! 함께 동행하자꾸나.

시인 신동엽은 1960년대에 활동했던 시인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나 지위에 맞지 않게 살았던 위정자(爲政者)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는 독재자와 외세를 껍데기에 비유하며 시를 썼다. 그가 말했던 껍데기는 강대국이면서 약소국을 침략하고 찬탈했다던가,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않게 살았던 리더자를 그렇게 표현했다.

그는 이 시에서 '4·19와 동학 혁명'에 참여한 민중의 마음을 찬양했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역사를 올바르게 쓸 수 있으며, 정의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학생과 시민은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며 4.19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은 부정과 부패의 껍데기를 없애기 위해 목 놓아 울부짖었으며, 순수와 자유가 살아있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며 목숨까지 바쳤다.

시인은 1894년 탐관오리와 집권 세력 그리고 외세에 짓밟혔던 농민의 아우성을 시의 한복판에 불러들였다. 그들은 동학년 곰나루에서 주체성과 자주성을 되찾기 위해 외세나 위정자에게 저항했으며,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시인은 이렇게 우리 민족의 운명을 제멋대로 재단했던 열강들에 “너희들이 바로 껍데기다”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였으며, 3.18선을 만든 너희들이 이 땅에서 물러가면 우리 손으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자주적으로 한반도를 지키겠다고 다짐하였다.

7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의 모습은 어떠한가? 과연 국민은 사람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우린 이른바 민주주의의 국가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시인 신동엽이 말했던 껍데기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우리나라에는 껍데기 같은 삶을 사는 사람보다 알맹이나 흙가슴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운명이다.

▲ 아픔과 슬픔은 머지않아 아름다운 자아를 선물할 것이다.
▲ 아픔과 슬픔은 머지않아 아름다운 자아를 선물할 것이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마음을 강하게 부여잡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히틀러의 독재에 반기를 들며 권력과 고독하게 싸웠던 카를 로츠 목사를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여러분, 우리 국민의 위태로운 상태에 대한 제 글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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