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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칼럼] 있잖아! 너는 소중해

‘카르페 디엠’을 다시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 입력 2023.09.30 19:00
  • 수정 2023.09.30 19:16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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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잡아라. 미래는 믿지 말고.
▲ 오늘을 잡아라. 미래는 믿지 말고.

삶은 불꽃이다. 뜨겁게 타 오르다 차갑게 식어 버리는 이름 없는 불꽃이다. 올 여름도 그 뜨거움을 다하고 구름처럼 사라지고 있다.

“여름아! 너는 불꽃처럼 살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구나.”

뜻밖의 한 숨을 서글프게 내뱉는다. 찬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시원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하다. 여름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자연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인가 보다.

우린 여름을 쉽게 만나기 때문에 마치 철부지 아이처럼 엄마의 소중함을 모른다. 더불어 그 인연의 소중함을 기억하지 못한 채 곁만 떠나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는지 돌아다볼 일이다.

시인 정현종은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라는 시에서 지금과 현재를 이렇게 읊조린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란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들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는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모든 것은 시들고 곧 사라지니 지금 사랑해야 한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시인은 우연히 지금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보았나 보다. 밤꽃이 막무가내로 피고, 파가 쑥쑥 자라듯 아이도 할아버지도 처녀들도 주어진 시간을 지금 노래하고 있다.

또 시인은 그의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서 삶을 꽃봉오리에 비유한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나는 꽃이며 생명이며 우주이다.
▲ 나는 꽃이며 생명이며 우주이다.

시인은 모든 순간 피어날 꽃이 바로 나이며 생명이며 인생이라고 말한다. 우두커니처럼 주어진 순간을 사랑해야만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득 가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생각난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애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중략>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갈 한 번의 인생아”라며 삶을 즐기란다. 그러니 주어진 오늘의 시간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단단히 부여잡으란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도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그는 부자들 앞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제의했던 건배사를 들려준다.

“내겐 숨 쉴 공기가 있고 그림 그릴 도구도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리 밑에서 잠들 때가 있는가 하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배에서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샴페인을 마시고 있지 않느냐. 어느 누구도 앞일을 모르니까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가난한 무명 화가인 그도 ‘카르페 디엠(지금을 소중히 하라)’이라고 부자들 앞에서 감히 말한다.

사람들은 ‘아모르 파티’나 ‘카르페 디엠’이란 말을 자주 듣지만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안에 수많은 과거의 노력과 고민이 녹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는 미래에 이룰 목적 때문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그 자체에 목적과 가치가 충분히 들어있다.

카르페 디엠은 고대 로마의 시인 퀸투스 호라티우스가 <송가>의 연작시에서 처음으로 사용한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세월은 우리를 시기하며 흘러만 가네.
오늘을 잡아라. 미래는 믿지 말고.

"Carpe diem"의 어원은 이렇다. ‘diem’은 ‘낮’ 혹은 ‘날’을 뜻하는 ‘dies'에서 왔고 ’carpe'는 ‘추수하다, 수확하다’를 의미하는 ‘carpo'에서 왔다. 즉 "Carpe diem"은 ’날(日)를 수확하라, 낮을 추수하라‘라는 의미이다.

‘카르페 디엠’ 은 퀸투스 호라티우스 이후로 많은 사람에 의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가 삶을 이렇게 간결하게 정의해 주었으니 우린 명언을 몸으로 기억하고 순간순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우리는 참으며 기다리는데 익숙하다. 더 기다려야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 때문이다. 현재를 즐기고 낭비하면 미래는 어둡다는 베짱이의 이야기는 잊어야 한다. 매일 일만하는 개미의 삶 또한 찬양해서는 안 된다. 지금 그리고 여기를 사랑해야 한다.

‘카르페 디엠’을 다시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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