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습 중 잠수지시를 따르다 희생된 고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2주기 촛불문화제가 웅천에서 열렸다.
6일 오후 7시 여수 웅천공원에서 열린 추모촛불문화제는 여수를 비롯한 광주전남 사회, 노동, 교육 등 30개 단체로 구성된 추모위원회가 주최했다. 위원회는 현장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비극을 멈추기 위해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고 촛불문화제 개최 의미를 설명했다. 함께 한 시민들은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추모촛불문화제 사회를 맡은 여찬 추모위원은 “물을 무서워하고 잠수 자격증도 없지만, 사업주에게 하기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홀로 차가운 바다에서 밤하늘의 별이 된 지 2년이 되었다”며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추모문화제에 함께 해달라”고 말했다.
문화제는 여수민예총의 지전무 공연으로 시작됐다. 지전무 공연은 망자의 명복과 살아계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 당시 실습생이던 홍정운 군은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없이 혼자 바닷속에서 따개비를 따는 작업을 해야 했다. 결국 홍 군은 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회자는 “추모제가 열린 지금이 시간, 국회에서 직업계고 학생을 위한 예산을 잼버리 사태 수습비용으로 돌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며 “이를 막아내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전했다.
가수 서혁신은 추모공연에서 정운이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추모곡으로 이하이의 ‘한숨’과 자작곡 ‘예쁜 꽃은 빨리 지나 봐’를 불렀다. 이어 추모위원회 대표로 민주노총 최관식 여수시지부장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정운이가 밝혀놓은 길...약속과 다짐의 자리가 되길
최 지부장은 “오늘 정운이의 부모님은 살아있었다면 성인이 되었을 정운이를 위해 새 옷과 새 신발을 준비해 놓으셨다. 정운이는 이제 교복을 벗고 새 옷과 신발을 신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낼 것이다”고 말했다.
“가끔씩 정운이가 일했던 요트장을 찾아가 봅니다. 그때마다 요트장 펜스에는 정운이의 사진이 가지런히 걸려 있고 옆에는 국화꽃이 놓여있습니다. 정운이 부모님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르셔서 자리를 정돈해놓으신다 하십니다.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물며 아직 사회에 첫 발을 내딛지도 못한 현장실습생이라면 몇 배 더 강화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정운이와 같은 실습생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내갈 미래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안타까운 사고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정운이의 후배들이, 정운이가 밝혀놓은 길을 따라 미래를 열어가도록 응원해주고 힘을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2주기 추모촛불문화제는 추모를 넘어 함께 약속과 다짐을 하는 자리입니다.”
정운이가 희생된 지 2년... 제도개선은 커녕 후퇴하는 현장교육
여수공고 3학년 김명진 양은 ‘천년을 하루같이’, ‘천개의 바람이 되어’ 두 곡을 오카리나로 연주했다. 고 홍정운 군의 아버지 홍성기 씨는 유가족 인사를 전했다.
“현장실습생으로 고된 노동과 거부하기 힘든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실습이 끝나면 요트를 운전하며 바다를 달릴 상상에 모든 것을 이겨내려 애썼을 것입니다.
정운이가 희생된 지 2년, 얼마나 많은 제도가 개선되는지, 정운이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현장실습생을 보호하려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현장교육이 더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지금 당장 완벽한 대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꾸준히 요구하고 잊지 않는다면 정운이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정운이를 잃었지만 힘을 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광양에서 온 싱어송라이터 이수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을 희망한다”며 정운 군이 좋아하는 곡 ‘밤하늘의 별을’ 과 ‘노래여 날아라’ 두 곡을 불렀다.
진성여고 2학년 학생은 고 홍정운 군을 추모하기 위해 신경림 시인의 시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를 일부 변경하여 낭독했다. 해당 시는 지난 2019년 세월호 참사 5주기를 기리며 발간된 추모시집에 실렸다.
“아무도 우리는 네가 우리 곁을 떠나 아주 먼 나라로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보다 알차게, 우리가 꿈꿔갈 세상을 보다 참되게,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아름다운 정운아. 추위와 통곡을 이겨내고 다시 꽃이 피게 한, 진정으로 이 땅의 큰 사랑아”
추모제가 끝나고 참여자는 정운이의 사진이 걸린 사고 현장으로 자리를 옮겨 헌화했다. 여수해양과학고등학교 김희헌 교장도 추모식에 함께 했다. 김희헌 교장은 전남 완도군에서 근무하다 올해 9월1일자로 여수해양과학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김희헌 교장은 “학생의 안전을 최대한으로 신경 써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현장실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추수지도를 실시해 교사가 직접 현장에서 발생하는 부당함을 면밀히 살펴 학생의 노동권이 보장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참여자들은 고 홍정운 군이 잠수작업을 위해 들어간 마리나 부근으로 이동해 묵념 후 헌화했다.
한편 촛불문화제가 열린 6일 오전 11시에는 고 홍정운 군이 잠들어 있는 여수 예다원에서 추도식이 진행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