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중인 전갑생 연구원은 1971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역사에 관심을 가져 대학에서 국문학과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내공이 쌓여 명실상부 국내 최고 폭격전문가로 통한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원, 국가기록원 국외자료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한 그의 주요 저서는 '경남, 섬의 역사'(2021·선인), '인천과 한국전쟁 이야기: 한국전쟁 70년, 평화를 묻다'(2020·글누림), '일본군 위안부 미국 관계 자료'(2020·선인), '주권의 야만(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 등 불운했던 근현대사의 명확한 기록에 입각한 저서를 써오고 있다.
여수MBC 보도특집 다큐멘터리 '폭격-그날의 진실'
여수 이야포·두룩여 미군폭격사건을 담은 <여수MBC> 보도특집 다큐멘터리 '폭격-그날의 진실'이 23일 오후 9시 방송을 앞두고 지난 9일 여수시의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미군폭격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전문가 초정간담회’가 다시한번 회자되고 있다.
이날 여수시의회 미군폭격사건 특위(위원장 박성미)가 주관한 간담회에 시민추진위원회(위원장 심명남) 위원과 지역사회연구소(소장 박종길) 유가족을 비롯 관계자 20여 명이 참석해 두시간 동안 열띤 토론이 오갔다.
이번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이야포·두룩여 미군폭격사건이 미국 워싱턴에서 헤드라인으로 보도된 사건에 대해 전갑생 박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보도가 나갔기 때문 미국방부 정보국은 이미 알고 있을거다. 결국 미국에 자극을 줄 수 있어 의외로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이 될것 같다. RFA가 관심을 갖고 보도했을때 우리 국방부도 당연히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공군 작전항로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미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이런 부분이 케이스가 된다면 다른 사건들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전갑생 박사는 "중요한것은 진실규명 차원에서 아픈 역사를 국가가 나서야 할 부분인데 지역 의원님들이 나서고 있다"면서 "국가가 그 역할을 못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탄식했다.
이날 이야포 특위 김채경 부위원장은 "여수시 잔해 인양모색 방법.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며 "미5공군이 기총소사했던 위치와 가라앉은 배의 위치상 위도경도 오차가 있지만 자연 조류 차이를 감안해 위치가 파악된다면 그 결과로 밀어붙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면서 피난선 잔해물 인양을 강하게 촉구했다.
이에대해 전갑생 박사는 선박 관련 현재 좌표와 미군좌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면서 "위도 경도를 안다면 좌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좌표 파악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내년 3월 시애틀에서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열기에 파악된 근거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자료를 살펴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고 폭격전문가인 전갑생 박사는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청(NARA)에서 올해만 7개월을 머물렀다. 미국은 내셔널 아카이브(한국의 국가기록원) 자료가 나가는 것을 꺼린다. 왜냐면 여전히 미국이 분쟁에 직접 개입하고 있고 한국쟁도 끝난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자료들이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갑생 박사는 이날 미국립문서보관청(NARA)에서 기밀해제된 미육군참모부 RG319, 미공군사령부 RG342와 RG554 정보보고서 등을 통해 이야포와 두룩여 미군폭격사건 기록을 자세히 설명했다.
총 10개 상자 중에서 극동사령부 작전참모부에서 작성한 저널에는 1950년 8월 3~10일 사이 여수 안도 이야포와 여수 시내 폭격 내용을 담고 있다. 8월 10일 5공군 B-29 에서 관찰한 9일 14시 10분경 34.35 N, 127.53 E에서 250척의 선박들을 목격. 여수지역으로 선박들이 흩어졌고, 1950년 8월 3일 미극동사령관(Commanding General, Far East Air Forces, COMGENFE)이 미육군부 전신국을 통해 워싱턴 공군사령부에 보낸 전문에 F-51 20대가 진주, 김천, 여수, 목포 구역직전. F-28이 여수 구역에서 작전중 1대 트럭과 4대의 보트를 피해 입힌 내용도 기록했다.
RG342 공군사령부 문서에는 한국전쟁 초기 미극동공군 5공군 소속의 폭격단들이 선박을 공격하기 위한 훈련 프로젝트 메모에 1950~51년 사이 극동공군 5공군 소속 B-26과 F-80, 81이 해상에서 대형부터 소형 선박을 폭탄과 기총소사를 통해 침몰 시키는 훈련 장면의 사진을 담고 있다. 미5공군이 전쟁 초기 남서해안 일대에서 민간선박을 대상으로 폭격 또는 기총소사 훈련을 실시했다는 것은 민간 선박도 적으로 간주했음을 보여준다.
오퍼레이션 오더 정찰 결과로 다음날 작전 펼쳐
기밀전보 형식으로 작성된 <작전명령(Operation Order)>를 보면 1950년 8월 전술정찰대대가 사진 정찰한 여수(34.03 N) (34.44 N) (127.43 E), (127.04), (34.43 N) (34.45 N), (127.43 E), 1:5,000 지도에 나와 있다. 이 문서는 임무 내용과 좌표 등을 숫자가 아닌 문자로 전송하는 텔레그래프 라는게 특징이다. 이런 훈련을 통해 미공군이 작전을 펼쳤다. TRS를 통해 여수를 비롯해 안도까지 내려가서 정찰을 했고, 정찰한 결과를 가지고 그다음날 작전을 펼쳤다.
1950년 7월부터 10월까지 한국전쟁 초기 미극동공군(FEAF)사령부 5공군(5th Forces) 소속의 폭격단(Bob Gp)들의 작전을 24시간 단위로 정리한 보고서에는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사실을 정리하고 있다.
1950년 8월 4일 12시 30분 극동공군본부에서 작성한 1950년 8월 3일 00시부터 24시까지 작전요약에 "전투기들은 여수항구에서 150피트의 보트 4척을 파괴했고 정착한 차량에 폭격" 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종사가 직접 작성한 임무보고서(Mission Report, Mission Interrogation From)의 특징은 부대명 (3rd Bob Group), 임무번호, 날짜, 전투기 번호, 조종사, 항해사, 폭격수, 기총병, 관측병, 편명, 폭격시간, 무기(비행기 번호, 폭탄번호, 폭격종류 등), 목표물 통계(목표물 종류, 지역명, 위치, 공격 축, 고도, 폭격 결과), 목표 위치의 날씨, 적 활동 관측 내용 통신장애 등 다양한 정보에 1950년 8월 3일 3폭격전단의 여수 안도 일대 폭격 내용이 담겼다.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조종사가 직접 작성한 임무보고서는 1950년 8월 3일 3폭격전단, 임무번호 217호, 전투기 749(조종사 Erdosey-Bowers), 257(조종사 Allen), 230(조종사 Schultz), 266(조종사 Eno), 287 (조종사 Walten), 688(조종사 Plotnik) 총 6대, 14시 21분 ~ 8시 40분의 목표물 통계: 여수(34.44 N 127.44 E) 광도(34.16 N, 127.32E), 고도 8,000 등 상세한 폭격 내용이 있다. 삼산면 광도를 폭격한 기록도 나온다.
RG 342 (공군사령부)의 항공요도는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미공군 전술정찰대가 남북한 지역을 정찰한 것을 연대별로 정리했다. 요도는 정찰기가 비행궤도를 따라 정리한 것인데 임무 번호 (R252C), 촬영날짜(195.08.01), 정찰부대(8Tactical Reconnaissance Squadron), 초점거리, 고도, 지점표시 및 지도축적 등을 기재하고 미 육군지도국에서 제작한 1:250,000 지도로 활용했다.
맥아더나 각 사령부 사령관에게 보고되는 정보보고서 RG554(UNC)는 극동사령부의 관할 구역인 한국, 일본, 필리핀, 중국-만주,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을 포함해 정치, 군사, 문화, 경제 분야 중 일일 1급 또는 2급 기밀 사항들을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했다. 1950년 8월 4일자 2886호에 8월 3일 여수에서 1대의 트럭과 보트 4대를 파괴했다는 내용과 1950년 8월 9일 항공관측, 4시10분 250척의 낡은 어선들이 지역의 섬들로 흩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담고 있다.
미 공군 전술정찰대대에서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1950년 8월 1일과 3일 8전술정찰대대가 고도 2,700피트에서 여수 남면 안도리 이야포 일대 정찰사진을 촬영했다. 현재 8월 1일과 3일 두 차례 8TRS에서 여수 안도 일대를 촬영했는데 국내 미수집된 정보다.
적군이나 미군작전구역내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
전갑생 박사는 "침몰된 이후 포착된 위치는 항공사진을 봤을때 그 위치인것 같다. (당시 필름이 보관된)캔뚜껑을 열면 70년 이상된거라 냄새가 지독해 1시간 이상 작업할 수 없는데 항공사진 보는게 곤욕스럽지만 왜 민간인 선박을 적으로 간주해 폭격했나? 그부분을 논리적으로 보려면 그 보고서를 분석하는 것이 연구자의 마인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에 왜 민간인을 타깃으로 폭격하거나 기총소사를 했는지 기본적인 인식은 적의 작전구역이나 미군작전구역에 있는 모든 민간인들은 적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서울이나 여수를 적으로 간주한거다.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미군의 공격에 대한 정책적인 문제점입니다. 미군이 재점령했을 때 그때 민간인들을 포로수용소로 다 보내는데 이는 적으로 간주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미군의 폭격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았기에 전쟁시기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해 폭격과 기총소사를 실시해 희생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명확하게 흰옷을 입은 민간인을 봤고 그것을 조종사 임무보고서에 썼어요. 그런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불능처리했어요. 이는 정치적인 부분이 강했고, 또하나 전쟁중이니까 민간인 피해가 생길 수 있는것 아닌가? 이런 논리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전갑생 박사는 이어 "70년전 미군이 했던 폭격의 지침이 최근 이스라엘뿐 아니라 러시아, 우크라이나나 민간인에 대한 폭격의 동일한 지침 즉 전쟁에서 민간인을 대피해야 한다는 규범인 국제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하지 않았다는 거다"면서 "헤이그 조약에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해 폭격하면 안된다고 나와 있다. 미군도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폭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건 작전의 문제를 떠나서 미군의기본정책이 변하지 않았기에 발생했던 것"이라며 "과거 월미도, 포항등에서 진실규명된 것을 보면 오폭이 아닌 작전으로 수행해 민간인에 대한 폭격과 기총소사해서 명백한 범죄로 인정받았다"라며 "그런 부분을 본다면 이번 자료들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부수적인 희생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건 어쩔수 없다고 하는데 노근리 사건 케이스를 보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민간인에게 사격을 한것을 미국이 인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전갑생 박사는 "미군이 명백하게 민간인 선박임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총소사를 했다면 당연히 전쟁범죄로 얘기할 수밖에 없고 미국의 책임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야포 특위 박성미 위원장은 "70년 전후로 가서 제 눈앞의 우리가 들어왔던 현실들이 영화의 한편처럼 조각조각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모든것이 행동해야 할 때가 있는것 같이 지금이 그때가 아닌지 생각된다"면서 "침몰선 용역조사에서 탄피인지 못인지 모르겠다고 결론지어 황당하지만 명백한 증거자료가 나왔으니 진화위를 찾아가 진실규명과 진상조사를 촉구하겠다"라고 약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