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 화재참사 17주년 추모기도회가 6일 오전 11시 화장동 화재참사 추모비 앞에서 열렸다.
전남동부기독교협의회와 여수시민단체연대회의,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시민모임 ‘마중’,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주관한 추모기도회는 침묵기도와 추모찬송으로 시작됐다.
둔덕동에 위치한 여수 함께하는 은현교회 김왕규 목사는 17년 전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사그라든 외국인노동자를 추모했다. 김 목사는 “우리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된 것은 조상과 선배들이 이방 땅에서 피 흘리고 천대받았기 때문”이라며 외국인보호정책을 세울 것을 주문했다.
“우리 땅에 수많은 외국인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외면하고 학대, 비명(非命)하도록 방치하고 조장했습니다. 무도한 사람들의 불송함을 용서하고 이 땅의 나머지 사람들을 돌보아주소서.
오늘도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들의 형편을 알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없도록 보호하고 정책을 만들어 그들을 보호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여수 YMCA 임현미 간사는 신명기 14장 29절을 낭독했다. “너희가 사는 성 안에 재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내리사람이나 떠돌이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여라. 그러면 주 너희 하나님은 너희가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이어 여수열린교회 정한수 목사는 “여전히 전국의 외국인보호소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시정되어야 할 외국인정책이 많다. 특히 불법체류자에 대한 법안이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는 코리안드림을 안고 온 우리의 이웃이다.
이들을 대하는 국가정책과 우리의 태도, 전국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의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보호소 안에 장기구금되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 가족에게 연락하지 못하는 문제점, 과밀수용 등이 조속히 개선되길 바란다.
외국인노동자는 성경에 나오는 고아,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며 감금된 노동자는 더더욱 그러하다. 외국인인권문제는 곧 우리의 인권문제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울리지 않는 화재경보기만 무심히 보호되고 있었다
순천희락교회 목사이자 시인인 정홍순 목사는 추모시 ‘꽃도 구름도 없었다’를 낭송했다.
정 목사는 “당신들이 중국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여수 순천으로 일자리 찾아 고향 떠나던 날 오늘까지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며 낭송을 시작했다.
”먼 이국땅까지 애써 죽음을 찾아왔겠는가? 여수출입국외국인사무소 304호실에서 당신들은 자고 있어야 했다.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울리지 않는 화재경보기만 무심히 보호되고 있었다.와이어 자물쇠는 당신들의 꿈을 단단히 채우고 있었다. 당신들은 죄수가 아니다. 수갑을 차지 마라. 새우꺾기도 당하지 마라.”
사망 후 입금된 체불임금 770만원...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이유
화성외국인보호소 ‘마중’ 방문모임 이윤정 활동가는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윤정 활동가는 “모든 법은 생명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비국민을 불법화하고 가두는 것은 국가폭력이다”라고 말했다.
“10년, 20년을 살아도 이들에게 정주는 허락되지 않았다.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임금을 체불당해도 강제출국이 두려워 신고할 수 없다. 보호소 화재로 고인이 되신 분 중에는 체불임금 때문에 희생된 분도 있다.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시간은 지금도 정지된 채 머물러있다. 외국인보호소에서는 아직도 보호당하다 사망하는 일들이 지속된다. 우리는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를 넘어, 분노하고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겠다.”
전남동부NCC 총무를 맡고 있는 여수솔샘교회 정병진 목사는 체불임금 770만원을 기다리다 보호소에서 사망한 우즈베키스탄인 엘킨 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설명했다.
“2년 가까이 이곳에 구금된 엘킨 씨가 사망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체불임금이 입금됐다. 엘킨 씨 뿐만 아니라 다른 사망자의 체불임금도 사고 이후 신속하게 입금됐다.
재판기록을 보면 당시 당직근무자는 잠들어 있었고 구금자의 이상행동을 발견함에도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참사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저 내버려둔 것이다.
현재 이곳 보호소는 휴대폰 사용도 가능하고 스프링클러도 설치되는 등 조금씩 환경이 개선되어가고 있다 한다. 곧 개방형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수갑을 채우고 발에 밧줄을 묶은 새우꺾기 자세로 격리된 이들
목포 나눔인권센터 문지영 사무처장은 “17년 전 뼈 아픈 사건으로 외국인사무소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손을 뒤로 수갑을 채우고 발에 밧줄을 묶은 새우꺾기 자세로 격리된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보호라는 이유로 격리되어 있고 인간의 존엄한 권리는 파괴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며 분위기는 더 안좋아졌다.
토끼몰이식 단속에 인권침해도 발생했다. 법무부 직원이 여성이주노동자 목을 조이는, 일명 헤드락 장면이 담긴 영상이 퍼져 공분이 일기도 했다.
어떤 이는 단속 과정에서 어깨가 탈골되었지만 병원이 아닌 보호소에 수용됐다. 행정편의를 위해 가두고 내쫓는 것으로 일관하는 외국인정책의 전향적인 변화를 촉구한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출입국 외국인정책으로 차별당하고 고통받는 수많은 내쫓김과 사라짐을 기억하겠다. 그리고 다시는 화재참사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날 여수출입국사무소 화재참사 17주년 추모기도회는 참여자 헌화로 마무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