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 화재참사가 발생한 지 15년이 지났다.
11일 오전 10시 화장동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는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예배가 열렸다.
추모예배에는 전남동부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여수시민사회연대회의, 아시아의친구들 관계자가 참여했다.
지난 2007년 2월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내 외국인보호실에서 발생한 화재참사로 보호실에 있는 55명의 외국인 중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이곳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보호실로 건물 관계자가 외국인을 범죄자로 여기고 문을 열어 주지 않아 사고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공동성명서에서 “이름은 보호소였지만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생명권조차 보호받지 못했다.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 화재참사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함부로 가두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만든 한국정부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정책의 맨얼굴을 비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한국정부는 화재가 났어도 도주를 우려해 철창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여수솔샘교회 정병진 목사는 추모발언에서 “외국인보호실 화재참사가 일어나기 전 오마이뉴스에 여수 화재참사를 예견하는 듯한 기고문이 올라왔다”며 말문을 떼었다. 기고문을 작성한 사람은 미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고문은 ‘4월 11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에서 자살을 시도했고 22일 러시아인이 불을 질렀는데 장판만 타고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는 피할 수도 없었다’는 문장으로 위험성을 알렸다. 그 경고를 제대로 들었어도 이런 외국인보호실 화재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쓴이는 외국인보호실의 가장 큰 문제로 사회적 고립을 꼽았다. 바깥에서 볼 때는 깔끔해보이지만 이곳 보호소는 감옥보다 더 심한 감금시설이다. 실제로 화재참사가 났을 때도 안에는 연기가 가득했지만 건물 바깥으로는 연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출동한 여수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신고를 받자마자 보호실 화재를 수용소 화재로 인식하여 “수용소 치고는 적은 인명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사고를 방지하려면 철창 안에 갇힌 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김대희 여수YMCA 사무총장은 한국에 거주하며 일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렸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한국에는 합법적으로 250만명 정도가 외국인으로 등록되어 있거나 거주신고가 돼있다. 하지만 40만명 정도가 불법체류자 혹은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정부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중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특정 시설에 보호되는 전남동부지역 사람들이 갇힌 곳이 이곳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나라의 법과 제도는 그 나라의 구성원의 생각을 앞지를 수 없는 것이 대체적 모습이다. 즉 법과 제도가 바뀌려면 특정 제도와 법을 개정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야만 국가시스템이 그 뒤를 따라가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들 특히 외국인노동자나 불법체류자 노동자를 위한 국가시스템의 법과 제도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국민생각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본다. 즉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끊임없이 불법체류자 외국인의 인권을 생각해주어야 그들의 인권이 강화될 것이다.
이들이 설령 여기서 합법적 경제활동을 하다가 사회적, 정치적 등의 이유로 억압을 받다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문제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과감히 난민으로 인정하고 지위를 인정해주고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포용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인들과의 소통, 신뢰를 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단체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대표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아시아의 친구들’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다.
김 대표는 사망한 외국인들의 사연을 하나씩 설명했다. 고 김성남 씨는 당시 54세로 건축과 서비스업에서 일하다 잠시 미등록 가두리양식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밀린 임금을 기다리며 여수에 머무르다 변을 당했다. 사망한 지 하루 뒤에 그의 통장에는 밀린 임금이 들어왔다.
중국인노동자 천셴후이는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여수에서 하루 더 머무르던 중 사고를 당했고 재중동포 김광석 씨는 당시 39세로 보호소에서 폭행을 당해 치료는커녕 독방에 갇혀 인권유린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수외국인보호소측은 김 씨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예르킨은 당시 47세로 체불임금 420만원을 받지 못해 1년간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갇혀 있었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예르킨은 귀국 날짜만 기다리던 중 화재로 사망했다.
김 대표는 “15년이 지났지만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외국인보호실의 시설은 그대로”라며 “기약없이 가둬놓는 현실이 변하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사망자 중에는 어린 아이의 부모도 있었다. 김 대표는 사건이 잊혀지기 전에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중에도 이 사건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참사 이후에 발간된 '여수출입국 30년사'에도 기록돼있지 않고 유튜브 여수출입국사무소 홍보 영상에도 이 참사에 대한 기록은 빠져있다.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실 관계자와 지역사회는 건물 앞에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길 바란다.”
이날 추모예배는 참여자들의 헌화로 마무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