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다양한 모양의 꽃들이 산야에서, 공원에서 나들이 하라고 손짓한다. 솟아오르는 봄기운 받아 혼신을 다해서 터트리는 꽃망울들! 이들은 벅찬 환희를 함께 누리자고 우릴 부른다. 사방에서 봄꽃 축제 소식이 들린다.
달포전, 봄바람 쐬러 가자고 친구 다섯 명이 뭉쳤다. 우린 여중․고 동창으로 오랜 친구다. 수선화 꽃축제가 열리는 1004섬 신안군 선도에 갔다. 우리는 압해읍 가룡항에서 축제 기간만 운행하는 배를 이용했다. 약 30분 정도 타고 가니 섬에 도착됐다.
선도는 면적 5.6㎢에 151가구, 233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으로 4시간 정도면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이 섬은 매년 봄이면 귀엽고 발랄한 수선화로 황금물결을 이룬다. 무려 3천평에 달하는 넓은 면적으로 수선화 군락지는 조성됐다. 때를 만난 수선화가 섬마을 봄바람에 넘실대고 있었다.
수선화는 열매 맺지 못하는 식물로 가을에 구근을 심어서 다음 해 봄에 꽃 피우는 알뿌리 화초다. 수선화는 종류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양하다.
드넓고 야트막한 앞동산 언덕을 꽉 채운 수선화 단지는 온통 노란 수선화 꽃으로 춤추고 있었다. 문득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해바라기’의 한 장면, 화면 가득 압도했던 대평원의 해바라기 꽃밭이 오버랩됐다.
우리는 소나무 그늘을 따라 이어진 수선화 꽃길에서 봄바람을 맞으며, 즐거운 수다로 웃음꽃을 피웠다. 수선화 군락지에 있는 무인까페와 전망대, 마을의 주택 지붕까지도 노란색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포토 존으로 설치한 벤치 위 노란 맞배지붕도 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선도가 수선화 섬으로 변한 것은 초등 교사 출신인 한복순 할머니의 수선화 사랑에서 시작됐다. 할머니는 1986년 서울에서 남편의 고향인 선도로 귀촌하였다. 섬은 배가 없으면 육지로 나갈 수 없는 고독한 공간이다.
섬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할머니는 농사 대신 수선화 구근을 사다 심기 시작했다. 섬 생활은 처음인지라 수선화를 심고 가꾸며, 낯선 섬 생활의 외로움을 달랬다.
자식처럼 정성껏 가꾼 수선화는 매년 봄 예쁜 꽃을 피웠다. 나중에는 이웃들에게도 수선화 구근을 나눠주어 수선화를 가꾸게 되었다.
2018년도부터 신안군의 작은 섬 특화 전략에 의해 군에서 예산을 투입하여 선도에 수선화 재배단지를 조성했다. 2019년 봄에 제1회 수선화 꽃 축제가 열렸다. 한복순 할머니의 수선화 사랑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선도가 수선화 섬으로 발전한 것이다.
섬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수선화 꽃을 선물해 준 할머니의 선한 영향력에 경의를 표한다.
수선화 축제 입장료는 6천원이었다. 그 중 5천원을 신안군에서 쓸 수 있는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노란색 코디의 경우 입장료는 3천원이고, 3천원 전액을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줬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사례다.
폐교된 선치국민학교에도 아이들 대신 황금빛 수선화가 가득 자리 잡아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봄바람에 춤을 추며, 노래하고 있었다. 선도는 섬 모양이 매미같이 생겼다 해서 맵재, 선치도, 매미 선자를 써서 선도(蟬島)라 부른다 한다.
선도에서 나올 때는 정기여객선을 이용했다. 정기 여객선은 인근 섬을 경유하다 보니 가룡항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 섬에 들어갈 때보다 30분 더 소요됐지만, 뜨끈뜨끈한 선실 바닥 난방 덕분에 피로가 확 풀렸다.
우리는 압해읍에서 맛 집으로 소문난 ‘꽃피는 00가’ 식당에 오후 1시쯤 도착했다. 점심으로 영양만점 ‘전복해초 솥밥’과 밥도둑 ‘꽃게 간장게장’, 그리고 새콤달콤한 ‘낙지초무침’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즐거움!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꼴깍! 지금도 입안에서 군침이 돈다. 슴슴하게 만든 간장게장은 먹기 편하게 작게 잘라져 있어서 좋았다. 식대는 수선화 축제장에서 되돌려 받은 신안군 지역 상품권으로 계산했다.
내년 봄에도 선도에는 황금빛 수선화로 빛나는 섬마을의 꽃 축제가 계속될 것이다. 여기저기서 봄꽃 축제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이 봄, 꽃의 향연을 맘껏 즐겨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