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어디세요? 점심 같이 할까요?”
2023년 12월 22일수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귀찮고 추워서 나가기 싫다고 했다. 수영은 전통팥죽집 가서 팥죽이랑 김밥을 사갖고 오겠다고 했다.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잠시 후 “언니, 오늘 이집에 대기 줄이 엄청 길어요. 어떡할까요?” 다시 전화가 왔다. 집에 다른 반찬이 없어서 오는 길에 그냥 김밥만 사오라고 했다.
김장김치랑 갓김치를 꺼내서 수영이랑 함께 김밥을 먹었다. 수영은 김치가 넘 맛있다면서 본인은 김장을 못 했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왜 못 했느냐”고 물었더니, "김장할 정신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수영은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며 “어떡하면 좋냐”며 울먹였다. 남편이 오래 전에도 회사 여직원이랑 바람피운 전력이 있다고도 했다.
수영은 남편 폰에 ‘여자랑 함께 찍은 사진’과 ‘보고 싶다는 등 부적절한 밀어를 나눈 톡 내용’이 들어 있다고 했다. 2~3개월 된 것 같다면서 당장 이혼하고 싶어도 결혼 적령기의 자식들이 있다 보니 그럴 수도 없다고 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데, 김장이 무슨 대수일까? 수영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대다 찾아왔을까?
수영은 5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6살 아래 동생이다. 수영의 남편은 퇴직 후 소방․안전 관련기사자격증을 취득하여 재취업해서 광주에서 일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안전이 화두’이다 보니 전기기사, 산업안전기사, 소방설비기사 등 소방․안전과 관련된 직종은 퇴직 후에도 재취업이 잘 되는 편이다. 나는 수영에게 "불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이 사실을 자녀들에게도 알리겠다고 경고하라"고 조언했다. 어떤 아버지도 자식에게 본인의 추악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어느 자식도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을 테니까.
수영은 내게 "남편에게 안부 전화처럼 해서 현재 위치가 어딘지 알아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수영은 상대가 어떤 여자인지 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래, 쫓아가서 머리채라도 잡아서 혼쭐내고 싶겠지.’
수영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지만, 난 수영에게 "정신 차리고 냉정하게 생각하라고, 그 여자를 만나 보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수영의 기대와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또한 남의 가정사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생각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순간의 성적 쾌락을 위해 아내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놈 같으니라고! 수영 남편은 육십이 넘어서도 철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을 설마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착각하는 머저리는 아니겠지. 바람피우는 남자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바람 피우는 남자들은 아내와 애인, 양쪽 다 상대하려면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기 어려울 것 같다. 아내한테 들키지 않으려면 그야말로 쇼를 하듯이, 이중인격자 또는 사기꾼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띵하고 지끈거린다.
일설에 의하면 ‘성적 쾌락은 평균 2년을 넘기기 어렵다’ 하고,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도 한다.
영국의 모 대학 연구팀 발표에 의하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속을 들여다보면 사람을 흥분시키는 호르몬 도파민이 급격하게 분비된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호르몬은 중독효과가 있지만 한 사람을 상대로 늘 같은 수준으로 분비되지는 않고,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정도 간다’ 고 한다. 또한, 호르몬 도파민 분비는 1년이 지나면 50% 정도 감소하고, 대신 애착은 증가한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결혼한 커플의 신혼기간을 6개월에서 3년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호르몬 도파민 분비 기간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영에게 도움 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네이버에 ‘바람 피우다’로 검색 해봤다.
<아담과 이브사이> 남편 혹은 아내가? 바람피우는 신호 5가지 - 2017년 1월 건강다이제스트 희망호에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의 도움을 받아서 정유경 기자가 쓴 글이 있었다.
- 일부 발췌 내용-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아름다운 불륜, 어쩔 수 없는 불륜은 없다.
-중략-
바람피우는 것을 두고 봐서도 안 된다. 그 바람을 당장 알아채 더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부부가 힘을 합쳐 바람을 멈춰야 한다.
-중략-
여기서는 바람을 멈추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4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바람피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둘째, 배우자에게 알게 됐다는 것을 알리고 대화를 시도한다.
셋째, 대화를 통해 바람피운 두 사람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
넷째, 결혼 생활을 돌아보고 부족했던 부분과 해결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짚어보고 부부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나는 수영에게 네이버 검색 내용을 캡쳐해서 톡으로 보낸 후, 자세하게 읽어보고 남편과 협력해서 남편의 바람기를 잡으라고 했다, 수영 남편의 바람기가 곧 멈추길 간절히 바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후 2개월이 지나, “언니,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남편 문제 다 해결됐어요.”하고 수영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했다. 수영의 남편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니 참으로 다행스럽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는 속담이 있다. 수영의 남편은 단란한 가정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수영의 행복을 기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