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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교수, "권력과 폭력의 경계는 백지장 한 장 차이"

여수YMCA, 6.10민중항쟁 37주년 기념식에서 강연 가져

  • 입력 2024.06.11 07:22
  • 수정 2024.06.11 14:46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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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YMCA  주관 6.10민중항쟁 37주년 기념식 참석자
▲ 여수YMCA  주관 6.10민중항쟁 37주년 기념식 참석자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10민중항쟁이 37주년을 맞았다.

이에 여수YMCA(정금호 이사장)는 10일 광무동 여수YMCA회관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잇는 기념식과 강연회 자리를 마련했다.

▲ 김종기 부시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김종기 부시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1부 기념식은 6월 민중항쟁 관련 영상 상영으로 시작됐다. 영상에는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불러온 6.10민중항쟁과 이후 200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기념사에서 김종기 부시장은 “37년 전 오늘,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군사정권에 맞서 싸웠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여수시는 6월 민주항쟁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를 힘차게 열어나아가겠다”라고 말했다.

▲ 여수YMCA 정금호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여수YMCA 정금호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또한 여수YMCA 정금호 이사장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군복무 중이었고 그때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저의 첫 선거는 부정선거였고 그런 아픈 시대를 지나왔으니 우리가 이뤄야 할 사회에 대해 박구용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2부에서는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구용 교수가 ‘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인간은 원래 민주적으로 태어나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보수적인 사람이 된다”

▲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구용 교수가 ‘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구용 교수가 ‘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이날 박 교수는 “인간은 원래 민주적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며 보수와 진보 각각이 가진 프레임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는 민낯이 아니라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 창틀(프레임)은 크게 보수와 진보 두 가지로 나뉜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게 ‘그 정도는 나라를 위해 참고 견뎌라’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수프레임을 가진 것이라 보면 된다. 이는 가족을 위해 큰딸에게 희생을 바라는 것과 같다.

최근 국민의힘 성일종 사무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이 엄격한 아버지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가 빠졌다. 아버지가 자기 스스로에게도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서 자식을 때린다면 그건 그냥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어떠한가. 절대군주제라는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라는 존재를 두지 않는 보수프레임과 달리, 진보는 여기에 다정한 어머니라는 또다른 프레임을 둔다. 여기서 아이들은 언뜻 보면 다정한 부모를 좋아할 것 같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엄격한 아버지를 좋아한다. 인간은 원래 민주적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시사회에서) 사바나에서 목숨을 걸고 사냥을 나갈 때, 매번 '어떻게 할까' 상의하는 대장을 원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 사냥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갈 대장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유전자는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을 더 선호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진보의 길은 힘들다.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보수적인 사람이 된다.“

이어 박 교수는 “오늘날의 정의관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 한정될 수 있다”며 “전통적 정의는 자신의 직책(신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 진리는 텍스트가 아니라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일단 맥락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특정 시스템에서 엘리트가 되면 어느 순간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부터 멀어지며, 여기서 불안감이 드는 대신 스스로 정당하고 떳떳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정치엘리트화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치가 양극화되면 문제해결능력이 없어진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정치인 또는 법조인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들이 선거공학에 빠져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정치가 그러하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지금까지 내가 세상을 이해한 방식과 새로운 현실이 다르다면 사람은 누구나 이 불일치를 바로잡으려 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가장 쉬운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또다른 새로운 정보를 추가한다. 결국 가장 나쁜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앞서 있는 정의관이란 언어를 빼앗긴 사람의 언어가 되는 것

박 교수는 이어 “정치인은 언어를 빼앗긴 사람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자는 자기가 말하는 것과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헷갈린다. 그러나 상대방은 대체로 내 말을 듣고 이해하지 않는다. 이는 부모자식을 비롯해 모든 관계에서 그렇다. 오늘날 가장 앞서가는 정치인과 예술가, 학자, 시민은 이 맥락에서 발언권을 빼앗긴 존재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언어를 빼앗긴 사람의 언어가 되려는 것이 가장 앞서있는 정의관이다. ‘혹시 나의 말, 우리의 말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발언권 자체를 빼앗긴 사람이 없는가’ 고민해야 스스로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고통받는 사람의 감수성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고민하며 네트워킹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진보다.“

나의 말을 의미있게 들어주는 곳이 많아야... 더 나은 민주주의로 가는 발걸음

▲ 박구용 교수는 강의에서  '누군가 혼자 말을 독점한다면 그가 폭군'이라고 설명했다.
▲ 박구용 교수는 강의에서  '누군가 혼자 말을 독점한다면 그가 폭군'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누구든 정치 프레임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 치안감이 되어 있다. 권력과 폭력의 경계는 백지장 한 장 차이”라며 “부모가 자식을 이기는 방법은 폭력과 돈, 두 가지가 있고 이것은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정치인은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돈을 사용한다. 결국 국민은 한 순간에 노예가 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는 지금 폭탄, 총알보다 설탕 때문에 더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먹을 이겨내는 것은 쉽다. 내가 좀 더 강해지면 된다. 그러나 돈은 이겨내기 어렵다. 결국 민주주의의 제1의 적은 돈이다. 우리는 폭력이 아니라 건강한 권력이 필요하다.

3명이 있는데 누군가 혼자 말을 독점한다면 그가 폭군이다. 말이 전달되는 크기가 곧 권력의 크기다. 권력은 말을 통해서 전달된다.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나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만나 수다를 떤다. 최근 OECD 연구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1.2배 말을 더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권력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또한 누군가의 말을 빼앗는 사람은 사회에서 발언권이 없는 사람이다. 권력허기증에 처한 것이다.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충분히 들어주어야 하고 그런 사람은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의 말을 의미있게 들어주는 곳이 많아야 하고, 이것이 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로 가는 첫 발걸음이다“

강의가 끝나자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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