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의 여름 바다는 71일간이나 숨죽이는 전쟁터였다. 폭탄을 퍼붓는 듯한 폭염은 바다를 찜통으로 만들어 삶아 죽이려 작정한 듯 예년과는 전혀 다른 심각한 위기였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넘어갔다.
금년 고수온 특보 기간은 여태껏 최장기간이라는 신기록을 갱신했다. 고수온 특보는 제도가 생긴 2017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발령되었고 발령 기간도 점차 늘어나면서 지난 5년만에 3배나 길어진 71일간이나 이어졌다.
특보에서 가장 높은 ‘심각‘단계는 바다 표층 수온이 28℃ 이상에서 3일간 지속되었을 때 발령된다. 28℃의 수온은 어패류가 폐사되는 극한의 온도이다. 금년에 여자만의 최고 온도는 32℃를 웃돌았으니 현재 최상위인 ’심각’단계 보다도 더한 ’아주심각‘ 단계를 신설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이를 사람에 비교 하자면 평상시 체온이 37℃인데 41℃까지 올라간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내년 초봄쯤 미역 텃자리에 미역 싹이 자라지 않는다면 금번에 심한 열상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10월 2일이 되어서야 그동안 30℃를 웃돌았던 전국 연안의 고수온 위기 경보를 전면 해제 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2년 전 방영된 kbs의 “제주의 명물 소라와 자리돔이 강원도 인근 바다에?”란 시사 프로에서 소라의 스트레스를 확인하는 시험을 하였다. 시험 방법은 23℃에서부터 하루 1℃씩 수온을 올려 3일째 25℃까지 올리고 관찰하는 것이었다. 온도를 올리자 소라의 움직임이 점차 빨라졌고 혈액 검사에서는 면역력 감소와 활성산소량이 2배나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다. 바다 수온 상승에 따른 소라 개체군들이 3℃ 수온 상승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주는 내용이었다.
2021년 우리나라 연근해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약 19도로 20년 전보다는 약 0.6도 상승한 온도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았던 생명체들이 3℃ 수온 변화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국립해양조사원의 자료에 의하면 고수온 경보가 발효 중이던 지난 9월 19일과 20일, 여자만의 표층 수온이 32.24℃로 나타났다. 쿠로시오 해류가 올라오는 대만의 란위섬(蘭嶼鄉) 해역 수온(30.9℃)보다도 무려 1.3℃가 높았으니 놀랄만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4호 태풍 ‘풀라산’이 중국 대륙으로 향하다가 9월 19일부터 양일간 갑자기 한반도로 진로를 급변경하였다. 여수시와 주변 지역에 강수량 400mm나 되는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단비가 되어 내려주었다.
내만으로 육수가 충분히 유입되었고 표층 수온은 32.3℃(9월20일)에서 일시에 19.3℃(9월21일)까지 내려 상승 기세를 꺾고 안정세로 되돌려 놓았다. 태풍 덕을 톡톡히 보았는데 만약 태풍이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검측 온도는 데이터상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높은 수온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여자만과 가막만이 위험하다
여자만은 여수, 순천, 보성, 고흥으로 둘러싸인 항아리 모양에 면적은 318㎢로 수심은 비교적 낮은 6~8m의 점토질 지형이다. 넓은 갯벌 지역은 순천만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해양생물의 보고로 가치를 인정받은 각종 어패류 산란장이다.
천혜의 갯벌 지역이지만 수심이 낮고 외해와의 해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금년 특보가 해제되는 마지막 날까지도 6개 연안 중에서 여수의 가막만과 여자만은 25℃를 유지하였는데 앞으로의 대책 마련에 좋은 자료가 된다. 가막만은 평균 수심이 10~20m로 해수 소통에 유리하지만 고수온 상황에서는 급상승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개연성이 확인되었다.
여자만은 이미 2000년 초반부터 기후변화에 예민하게 반응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사례로 보성 벌교는 갯벌만 파면 참고막이 나오던 우리나라 최대 산지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1만 톤 이상을 생산하여 1kg당 1000원 가격으로 시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1997년부터는 2001년까지 연간 1만여톤씩을 중국으로 수출까지 하였다.
이후로 계속 출하량이 감소하여 작년에는 48톤까지 하락하였고 소매가는 1kg에 4만원을 홋가하고 있다. 급감 원인으로 남벌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고수온 때문이다. 드넓은 항아리 모양의 벌교 건너편에 있는 여수 화양 반도에서도 볼 수 있었던 참고막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같은 시기 제주도 바다도 수온 상승의 영향으로 미역과 감태가 사라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뒤늦게 보성군에서는 10년 전부터 참고막 자원 회복 사업으로 참고막 종묘 배양장을 설치하고 종패를 늘려 복원 노력을 해왔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같은 환경에서 기존 참고막 종패를 뿌려 놓은들 살아남을 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러한 상황을 빨리 인지한 여자도 어민들은 발 빠르게 새고막 양식으로 전환하였고 지금까지 기반을 잘 다져온 터이다. 하지만 금년 같은 고수온에는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소라의 스트레스 테스트 사례에서 보았듯이 상한치를 벗어난 32℃ 온도라면 최대 규모의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리고 고수온 피해는 당장 확인되는 것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야 확실한 피해 파악이 가능하니 더 지켜볼 일이다. 여자만에서 새고막 사업을 하고있는 여수 수산인 협회장 최광오(70세)씨를 찾아 바다 사정을 들어 보았다.
“여자만의 주 어업은 새고막 양식으로 10 ha(0.1 km2) 면적을 1건으로 해서 350건의 면허가 허가 되어 있습니다. 이곳 양식업자들이 세운 어업회사법인 ‘여수 새고막 주식회사’가 지난주 자체적으로 피해조사에 나섰어요. 보통 1건에 30톤가량의 종패를 갯벌에 뿌리는데 작년과 올해 뿌려진 종패는 평균 80% 이상 폐사된 것으로 여자도 출장소에 피해 상황을 보고 했습니다”
피해 보상은 법적으로 정해진 ha당 살포 당시 종표 가격이며 100% 폐사일 경우 270 만원/ha로 책정되어 있다. 2년을 키운 성패라 해도 기준가 보상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불만이 섞여 나온다. 실제 살포량은 법적으로 제한된 살포량보다 많아서 어민들이 떠안아야 할 잠재적 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최광오씨한테 올해 어황에 대해서 묻자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수온 변화에 예민해서 고기들은 순식간에 전부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올해 어장은 고기잡이는 망쳤지만 특이하게도 갑각류인 새우, 꽃게 등이 많이 잡히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여름 폭염의 직격탄을 맞은 여자만은 내년에는 어떤 변화를 보일지 궁금하다.
기후변화, 적극적인 대응이 대안이다
육지는 육지대로 태풍, 폭우, 열대야 등 기상이변의 피해는 재난 수준이었다. 바다에서도 육지 못지않게 바다의 폭염 현상이라 할 수 있는 해양 열파가 발생하여 많은 환경 변화를 맞고 있다. 해양 열파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특정 해역에서 평균 해수면 온도가 수일에서 수 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근래에 더 빠른 속도로, 더 장기적으로, 또 더 높은 온도까지 가기 때문에 그 피해 규모를 예상할 수 없어 난감할 뿐이다.
제주 바다는 어류와 산호들이 아열대와 열대종이 50%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우리 밥상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 고등어, 멸치, 갈치 광어, 조피볼락 등이 멀지 않아 자취를 감출 것이다. 또한 즐겨 먹어온 미역이나 다시마, 톳 등 해조류도 사라지고 이를 먹이로 하는 해삼, 전복, 소라 까지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해양 생태계 파괴는 먼 미래가 아닌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재 당면한 일이다.
금년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해조류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열상의 직격탄은 갯녹음과 산호초 백화현상을 촉진할 것이고 결국에는 바다 사막화로 죽은 바다가 될 것이라는 게 정해진 수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양식어가에 대한 피해복구 지원뿐만 아니라 아열대성 양식 품종으로 대응해 가는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세계는 지구온난화를 낮추기 위해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맺고 지구 온도상승을 2℃가 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협약에 많은 나라들이 동참해서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이제는 개인들까지도 스스로 적극 동참하는 것이 지구와 인류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 이 기사는 한국 섬 뉴스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