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광양 망덕포구에 있는 배알도(拜謁島)로 나들이 갔다. 광양 光陽, 지명이 말해 주듯이 광양은 빛나는 태양의 도시다. 한 달 전 ‘정병욱 선생 가옥’에서 건너다보이는 배알도를 못 보고 온 게 아쉬워 다시 갔다.
‘윤동주 시인 유고를 보존하여 국가 문화재로 등록된 백영(白影) 정병욱 선생 가옥’을 다녀온 후 광양 망덕포구가 예전보다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태인동 1번지인 배알도는 0.8ha 규모의 작은 섬으로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 끝자락이자 남해의 시작점에 덩그러니 떠 있다.
배알도는 <대동여지도> 등에 사도(蛇島)로 표기되어 뱀섬으로 불려오다가 ‘배알도(拜謁島)’로 부르게 됐다. 배알(拜謁)은 ‘지위가 높은 분을 뵈러 간다’는 뜻으로 알현(謁見)과 동의어다. 사극을 보면 ‘임금님을 알현(謁見)한다’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이 섬은 망덕리 외망마을 산정에 있다는 천자(天子: 명당이 있다고 전함)를 향해 절을 하는 형국에서 ‘배알도’라는 이름을 얻은 신비한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다.
망덕포구 앞에 동그랗게 서 있는 섬은 2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포구에서 배알도까지는 ‘별헤는 다리’, 배알도에서 수변공원까지는 ‘해맞이 다리’로 이어져 있다.
‘별헤는 다리’는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에 보존된 윤동주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시 ‘별 헤는 밤’을 모티브로 탄생했다.
이 다리는 길이 275m, 폭 3m 규모의 현수교식 해상 보도교다, 현수교 케이블을 지지하는 주탑은 전어(錢魚) 물고기 형상으로 설치됐다. 국내 최초로 곡선 램프를 도입해 경관 조망성을 높이고,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부 공간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해맞이 다리’는 ‘빛과 볕의 도시 광양光陽을 상징하는 태양’을 모티브로 빼어난 일출을 자랑하는 장소성도 함께 담겨 있다고 한다. 이 다리는 길이 295m, 폭 3m 규모의 해상 보도교로 단순하지만 유려한 곡선미가 돋보인다,
우리는 배알도 수변공원에 주차하고 ‘해맞이 다리’를 걸었다. 다리 밑 바다에서는 물고기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면서 여기저기서 ’펄떡펄떡‘ 춤추듯 튀어 올랐다. 저렇게 높이 뛰는 걸 보니 분명 전어가 맞겠지?
섬진강물과 남해가 만나는 지점이라 전어, 재첩, 벚굴 등 어종이 풍부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뜰채만 있다면 춤추며, 비상하는 물고기들을 금방이라도 떠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휴대폰 카메라로 담으려 했지만 순간 포착이 쉽지 않았다.
햇볕을 피해 배알도 숲과 하동 방향 푸른 바다를 끼고 설치된 데크 길을 돌아 나오니, ‘별 헤는 다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낮 시간이라 별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별 헤는 대신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선생‘ 인연에 얽힌 이야기꽃을 피우며 걸었다.
망덕포구에 도착하여 ‘별 헤는 다리‘가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 좌석에 앉았다. 딸은 덥다며 ’아이스아메리카‘를, 커피를 좋아하지 않은 나는 딸기 쥬스를 마시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카페 위치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요즘엔 어딜 가나 전망 좋은 장소는 어김없이 모두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시 ‘별 헤는 다리‘를 건넜다. 날씨가 좋아 시간을 잘 맞추면 아름다운 해넘이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배알도에 되돌아왔을 땐 이미 해가 산 뒤로 넘어가 노을 지고 있었다.
배알도 ‘해맞이 다리’는 아침 일출과 저녁 해넘이를 모두 다 즐길 수 있는 다리다. 이 다리를 ‘해의 다리’ 또는 ‘태양의 다리’로 바꿔도 어울릴 것 같다.
포토존은 ‘배알도’ 글씨를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간색으로 성인 키보다 크게 만들어 설치했다. 우리도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보니 빨간색 ‘배알도’ 포토존 아래 상처 난 듯 벗겨진 잔디가 눈에 거슬렸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많은 사람의 발밑에서 잔디인들 제대로 살아낼 수 있었을까? 광양시는 좀 더 관심을 갖고 잔디관리를 잘 해주면 좋겠다.
우리는 수변공원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저녁 먹으러 망덕포구로 이동했다. 망덕포구는 ‘전어’의 고장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어를 활어로 개발했고, 매년 ‘전어 축제’가 열리고 있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전어는 가을이 깊어갈수록 기름기가 돌아 더욱 깊고 고소해진다.
딸이 네이버 검색해서 예약한 횟집으로 갔다. 전어 코스요리(회, 무침, 구이)를 주문했다. 딸은 싱싱한 전어회가 고소하고 달큰하다며 맛있게 먹었다. 새콤달콤 초무침, 고소한 향이 진동하는 전어구이까지 딸과 함께 즐거운 저녁이었다.
딸은 미식가다.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 말’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딸은 전어구이 머리까지도 먹을 줄 안다. 맛있게 먹어주니 예쁘고 행복하다. 딸은 어려서부터 음식 간을 잘 봐서 별명이 ‘조장금’이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다 간이 안 맞을 때는 ‘조장금’이 간을 봐주면 맛깔난 음식이 된다.
저녁 먹고 나오니 ‘별헤는 다리’의 경관 조명과 다리 입구 데크에 설치한 커다란 별 하나가 조화를 이루며 빛나고 있었다. 마침 음력 15일이 다가오고 있어 보름달을 향해 가는 둥근 달(상현달)이 하늘 높이 떠서 데크에 조명별 하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