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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칼럼] 자식을 망치는 부모의 언행

살리는 사랑과 죽이는 집착 사이에서

  • 입력 2025.04.27 10:25
  • 수정 2025.04.27 10:31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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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에서 왔다는 부부는 암벽에 동전을 붙이며 자식들에 대한 소원을 빌었다.ⓒ조찬현 (자료사진)
▲ 포항에서 왔다는 부부는 암벽에 동전을 붙이며 자식들에 대한 소원을 빌었다.ⓒ조찬현 (자료사진)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망치는 방식이 있다. 그들은 종종 자식이 잘되면 자신이 잘 살았다고 여긴다.

우리 사회에서 자식의 성공은 부모의 자랑이자 인생의 보상처럼 여겨졌다.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자식을 먹이고 키우는 일이었고, 그마저도 등골이 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자식은 곧 인생의 증명이었고, 그 증명이 화려할수록 더 잘 산 삶이라고 믿었다.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제 앞가림을 잘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건 인간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무가 있다. 자녀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 이건 자식에게도 해당되는 의무다. 부모는 품에서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떠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 지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이는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이다. 그는 《예언자》에서 이렇게 썼다.

“너희는 활이고, 너희 자녀는 너희로부터 나아간 살아 있는 화살들이다. 그들은 너희를 통해 왔을 뿐이지, 너희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비록 너희와 함께 있으나 너희 소유는 아니다.”

자식은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 독립된 존재이다. 화살은 혼자 날아갈 수 없다. 화살이 멀리 날아가려면, 활이 그것을 놓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많은 부모는 활이 아니라 화살통이 되길 원한다. 자신의 품속에 자식, 그리고 며느리나 사위까지 넣어 늘 곁에 두고 싶어한다. 자신이 원치 않는 화살은 애초에 꺼내지도 않는다.

이것이 비극을 만든다. 드라마《폭싹 속았수다》에서 박영범은 착한 아들이었고, 좋은 연인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그리 되지 못했던 이유는, 결국 그의 착함이 온전히 혼자서 만들어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착한 아들도, 좋은 연인도 부모와의 ‘합작’이 필요했다.

반면, 금명이는 좋은 딸이다. 왜일까? 금명이의 부모는 딸을 사랑하면서도 기꺼이 ‘활’이 되기를 자처한다. 자신의 자랑을 넘어서, 딸이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멀리 쏘아 보내는 용기를 택한다. 그리하여 금명이라는 화살은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날아간다.

어쩌면, 서로를 ‘살리는 사랑’과 ‘죽이는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얇은 한 장이,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사랑은 어려운 합작품이다. 부모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식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이 합작품을 잘 만들어내는 일은 고되지만,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원래 가치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많은 이들이 이 어려운 사랑을 지혜롭게 해내기를.  나 또한 그 어려운 사랑의 길을 오늘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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