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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부모는 자녀를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를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는 사람이다

  • 입력 2025.05.16 08:15
  • 수정 2025.05.16 11:31
  • 기자명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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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그맘허그인 여수직영센터’ 주경심 원장
▲‘허그맘허그인 여수직영센터’ 주경심 원장

학교부적응을 겪고 있는 미란이는 부유한 가정에 호감형의 외모를 갖고 있는 학생이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부적응을 겪고 있다.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어렵다보니 학교성적은 평균 30점이 안되고, 친구 관계도 어려워하고 있다. 먼저 다가가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다 친구가 말을 걸어와도 우물쭈물하다 대답할 기회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친구들 역시 미란이에게 말을 거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쉬는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이들 사이에 오롯이 혼자서 숨을 쉬는 아이가 미란이고 안 듣는척을 해도 사실은 교실안의 모든 단어와 숨소리를 듣고, 경험하는 아이가 미란이였다.

혼자여서 외로운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군중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단지 외롭다는 단어만으로는 표현이 어려운 초라함, 비참함, 참담한 그 이상이다.

미란이는 이 모든 문제가 본인의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성적이고, 말이 없고, 낯선 상황에서 긴장과 불안을 경험하다보니 환경에도, 사람에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이다.하지만 단지 미란이의 성향때문이라면 고등학생이 되도록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란이는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불안이 높지만 소통이 안되는 엄마는 아이의 욕구를 탐색하기보다는 자신의 불안과 욕구에 맞춰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버렸고, 결국 발달과정에서 반드시 성취해야할 과업을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혼자서 마음껏 기고, 탐색하면서 성취해야할 자율성은 물론이고, 혼자서 이것저것 시도하고 도전하면서 얻게되는 주도성마저 성취하지 못했다. 미란이의 엄마는 미란이가 고등학생이 되도록 혼자서 외출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마트에서 과자를 선택하는걸 허락하지 않았고, 옷이며, 친구관계까지도 미란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당연하겠지만 아이의 감정과 생각도 허락하지 않았다.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엄마 마음에 들면 허락하고 인정해줬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채 폭발을 했다.

런(Run)이라는 영화를 보면 아이가 독립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어서 근육이 무기력해지는 동물에게 먹이는 약을 딸에게 먹이면서 아이의 보행과 자유를 방해하는 엄마가 있다. 그 약으로 인해 딸은 하반신마비로 철저하게 엄마의 보호와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영화를 보면서 아이를 잃은 상처로 인해 남은 아이에 집착하는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엄마가 어떻게 저럴수 있냐고 다들 아쉬움을 토로하게 된다. 문제는 영화 주인공인 클로이 엄마의 문제는 보면서 정작 내가 엄마로서 내 아이에게 하고 있는 통제와 행동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 너를 사랑해서 그래! 니가 다칠까봐 그래! 너는 내 인생의 보물이니까!’라는 말로 포장해서 아이의 생각, 감정, 태도, 행동, 선택, 책임을 제단해 버린다.

상담을 하면서 아이의 힘듦을 부모에게 알렸을 때 받아들이는 부모가 있고, 아이보다 더 힘들어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가 있다.

2년 전 지능검사에서 산만함과 충동성이 보인 아이에게 집중력 훈련과 ADHD검사를 제안했었는데, 아버지는 강하게 거부하면서 굉장히 불쾌해하셨다. 이런 부모가 바라보는 상담사는 돈벌이를 위해 아이를 이용하는 장삿꾼 정도일 것이다. 그런 시선과 편견을 알기에 아버지에게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불쾌한 연락을 주시라고 달래서 돌려보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실제로 문제가 생기고 나니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 굉장히 후회를 하셨다. ‘그때 선생님 말씀을 들었더라면...’

화장에도 베이스가 중요하듯, 성장도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그리고 적기가 있다. 지능과 성격발달이 최적기, 자율성 발달의 최적기, 언어발달의 최적기가 있고 그 시기를 놓쳤을 경우를 우리는 발달장애 또는 발달지연이라고 부른다.

그 말은 적기를 놓치면 따라가는데 그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소리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또 다른 과업을 수행하고 있을 때 시기를 놓친 아이들은 거꾸로 돌아가서 놓쳐버린 과업을 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미란이의 부모는 결국 미란이의 힘듦을 부정해 버렸다.

친구관계에 필요한 대인관계기술, 그 안에서 경험하는 감정을 처리하는 기술, 자신에게 던지고 있는 언어, 사고처리과정에 대한 변화와 연습의 기회를 주는 대신 이 모든 문제를 상담사의 기술부족이나 장삿속으로 치부해버렸다.

“제가 인정할 수 없어요!!” 어머니의 그 말은 마치 “왜 제 삶을 부정하세요.” “왜 제 아이를 이상한 아이로 만드세요.” 라고 따져묻는 것 같았다.

부모로서의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고, 아이의 삶의 한계가 결정되는 순간이다.

아이가 상담실에서 낯선 사람에게 힘들다고 호소하는 것이 어려운만큼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 부모에게 부모가 모르는 아이의 힘든 점이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열이 나는 아이를 열이 나는게 아니라고 우겨도 얼굴이 상기되고, 식은 땀이 나고, 오한이 들고, 무기력 해지고, 입맛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엄마가 인정하지 않아도 아이가 열이 난다면 우선 아이의 열을 내리는 것이 진짜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미란이는 자신의 열감을 내내 부정하면서, 그럼에도 힘들고 눈물이 나는 자신을 비난하면서 살아내야 할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한계다.

독수리가 새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찧는 고통을 감내하듯 부모역시 내 아이의 삶을 위해 자신의 고집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와 고통을 감내해야 비로소 창공을 나는 독수리, 그런 독수리의 시야로 세상을 보는 자녀를 양육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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