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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천국으로의 여행', 강선봉 작가를 만나다

한센인 인권회복을 위해 애쓰는 강선봉 작가
"한센병 완치된 사람을 왜 한센인이라고 부르죠?"

  • 입력 2025.05.22 07:26
  • 수정 2025.05.22 20:16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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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봉씨가 소라껍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계시는 모습 ⓒ오문수​
▲강선봉씨가 소라껍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계시는 모습 ⓒ오문수​

15일(목), 제22회 한센인의 날을 맞아 소록도 남생리에 살고 계시는 강선봉(86세)씨를 만났다.

한센인 르포소설을 준비하고 있는 필자는 몇 년 전부터 강선봉씨와 교류하고 있다. 한센인 인권회복을 위해 애쓰는 강씨는 병이 완치된 환자들인데도 한국에서만 한센인이라고 부르는 점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와 수인사를 한 후 그가 살아온 내력을 들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여기까지 찾아오셨네. 비도 많이 오고 감기에 걸려 집에서 소라껍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경상남도 함안이 고향인 강씨는 한센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공동묘지 옆 산골짜기에 방 하나 부엌 하나짜리 초가집을 마련한 강씨의 부모는 구걸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다섯 살 되던 가을 어느날 아버지는 동냥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끙끙 앓기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마저 병세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당국에서는 경남 각 지역에서 증상이 심한 환자들을 부산 태종대에 집결시켰다. 함안에서 잡힌 사람 중에는 어머니와 강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400여명의 일행은 부산 용호동으로 실려와 일본군이 사용하던 막사에 수용되었다.

그해 여름 수용된 환자들 사이에 무서운 전염병인 콜레라가 돌아 1/3이 죽었다. 사람들은 죽은 환자들 위에 휘발유를 부어 불태운 후 바다쪽으로 밀어버렸다. 1946년 11월, 부산 앞바다 오륙도에 검은 화물선 한 척이 들어와 일행을 배에 태웠다.

화물창고에 차곡차곡 실린 300여명은 배가 파도에 흔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쏠리며 뱃멀미하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파김치가 되어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한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조그만 섬 소록도였다.

▲강선봉씨가 소라껍질을 이용해 만든 '매화' 작품이다. 강선봉씨의 작품집 에서 촬영했다. ⓒ강선봉​
▲강선봉씨가 소라껍질을 이용해 만든 '매화' 작품이다. 강선봉씨의 작품집 에서 촬영했다. ⓒ강선봉​

섬에 내린 일행을 7개팀으로 분류한 사람들은 강씨를 장안리에 배정했다. 며칠만에 편안한 잠을 자고 일어난 그의 눈에는 신기한 게 많았다. 열흘 후 병원 당국에서는 어린이들을 불러모아 옷을 벗기고 진찰한 후 음성판정을 받은 아이들을 모두 보육원에 입소시켰다. 강씨가 배정된 방에는 8명의 어린이가 있었다.

일본인들이 살던 방에는 방 가운데 난로가 있었고 방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 새로 들어간 세 명이 식사 당번이 되어 밥과 반찬을 타갔지만 큰 아이들이 많이 먹어버리니 나이 어린아이들은 배고플 수밖에 없었다. 배고픔을 못 참은 아이들은 노란 고롱개 열매를 주워먹었다.

▲강선봉씨의 작품 '수탄장' 모습. 강선봉씨의 작품집 에서 촬영했다. 환자 부모와 미감아들은 길 양편으로 갈라서 한 달에 한 번 만났다. 이날 부모와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수 있어 탄식과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하여 '수탄장'이라 불렀다.  ⓒ강선봉​
▲강선봉씨의 작품 '수탄장' 모습. 강선봉씨의 작품집 에서 촬영했다. 환자 부모와 미감아들은 길 양편으로 갈라서 한 달에 한 번 만났다. 이날 부모와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수 있어 탄식과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하여 '수탄장'이라 불렀다.  ⓒ강선봉​

"보육소 생활이요? 그 사람잡는 데여. 거기는 선생은 선생대로 착취해먹고 큰 애들이 먼저 먹어버리니까 먹을 것도 없고. 다다미방이라 춥고 이불은 솜이불인데 그냥 솜이 뭉쳐서 반대쪽 불이 보여요. 배고프다 소리했다가는 반쯤 죽어요"

어느날 형들이 공회당에 영화 보러 간 사이에 방에 남아있던 아이들과 함께 며칠 전 창고에서 보았던 반쯤 썩은 콩알 몇 개를 주워 먹은 후 잠이 들었던 그는 꼼짝없이 콩도둑 놈이 되었다.

추운 겨울날 밖에서 얇은 옷만 입고 팔들고 서있으라는 벌을 받던 그는 손과 발이 시려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손과 발에 점차 감각이 없어지고 스르르 잠이 오면서 기절해버렸다.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손과 발이 붕대로 칭칭 감긴 채 방에 누워있었다. 다음날부터 치료 본관에 가서 손과 발을 치료했지만 물만 줄줄 나올 뿐 차도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이 "너는 병사지대로 내려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발가락이야 어찌됐건 어머니 곁으로 갈 수 있어 좋았다.

어머니는 민간요법에서 사용하는 약초를 구해 푹 끓여 식힌 물에 발을 담그고 한 시간 정도 있으라고 했다. 어머니의 민간요법은 효과가 있었다. 며칠 후 여자 숙소에 남학생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하여 남자 독신사인 7우 12호로 방을 배정받아 나왔다.

독신부에 온 그는 녹산소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소학교 1학년 과정을 부산 용호동 수용소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소록도 생활에 적응하고 열심히 공부하던 그에게도 환자들이 겪어야 할 시련의 시간이 왔다. 소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할 무렵 양 팔꿈치 안쪽 볼록 나온 부위에 멍울이 생기면서 바늘로 콕콕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옷을 갈아입을 때 옷이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양팔을 마음대로 흔들 수도 없어서 팔을 거의 고정해 놓은 뒤 큰 소리로 울면서 팔딱팔딱 뛰기도 하고 밖으로 쏘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별짓을 다해도 통증은 계속되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진료소에 가니 의료보조원이 "자통은 특별한 약이 없고 세월이 지나야 낫는다"하며 진통제인 APC 6알을 처방해 주면서 2알씩 하루 3번 먹으라고 했다.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날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아픔을 참기 어려워 우는 그를 보고 어머니가 누르스름한 물 한 그릇을 주시면서 말했다.

▲강선봉씨의 그림 제목 '기도'로 병마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간절한 마음을 그렸다. 강선봉씨의 작품집 수평선끝에서에서 촬영했다. ⓒ강선봉​
▲강선봉씨의 그림 제목 '기도'로 병마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간절한 마음을 그렸다. 강선봉씨의 작품집 수평선끝에서에서 촬영했다. ⓒ강선봉​

"이것 마셔랴. 자통에 좋은 약이다"

약이라하여 단숨에 마셨더니 약간 고소하기도 하고 간간한 맛이 났다. 어느날 저녁 무렵에 날이 어두워지자 어머니가 그를 불러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고 해 어머니를 따라간 곳은 공회당 뒤쪽 외진 길이었다. 어머니는 "마른 똥들을 주워오라"고 하시더니 주워 온 똥을 양철판 위에 놓고 볶았다.

볶은 똥을 집으로 가져와 깨끗한 헝겊에 싸서 물을 부어 한참 끓여 식힌 뒤 "마시라"며 주셨다. 그제서야 물의 정체를 알았지만 자통이 낫는다는 말에 아무 말 없이 마셨다. 환자 치료약 DDS가 처음 나와 진통제인 APC와 같이 복용하자 정신이 몽롱해졌다. 어머니는 생똥을 싸서 한 사발씩 해주셨지만 차도가 없었다. 극심한 자통을 느낀 그는 자통을 견디다 못해 양잿물을 먹고 자살한 아저씨가 생각났다.

자통은 세월이 가야 낫는다는 말이 실감날 즈음 신약인 '다이아손'이 나와 태풍이 지나가고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중학과정을 마친 후 어려운 녹산의학강습소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소록도는 6천명이 넘는 환자들이 생활하면서 치료받고 있었지만 정부에서 파견한 의사는 고작 3~4명, 간호사도 4~5명 정도였다. 때문에 소수의료진으로는 6천명이 넘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중등교육 이상자 중에서 시험을 거쳐 20~25명을 선발했다.

선발된 강습생들은 1년은 의학에 대한 학술교육, 1년은 실습 교육을 거쳐 수료증을 준 후 내과, 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 약제과 등에 배치했다. 입학시험 과목은 영어, 수학, 국어, 일반상식이었지만 상당히 어렵게 출제되었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세워진 구라탑 모습으로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강선봉씨의 작품집 "수평선끝에서' 에서 촬영했다. ⓒ강선봉​
▲소록도 중앙공원에 세워진 구라탑 모습으로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강선봉씨의 작품집 "수평선끝에서' 에서 촬영했다. ⓒ강선봉​

"내과라 하면 주임, 수간호까지가 의학강습소 출신이고 의학강습소를 안 거친 사람은 보조를 해야돼. 그리고 간호사라 하면 그냥 데려다가 주사 연습시킨 후 썼어. 그냥 뭐 불법이지. 그래도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때 증류수, 포도당 이런 거는 여기 자체에서 만들어 썼어. 약제과에서 소화제라 하면 소다에다가 건말, 이런 걸 조제해서 주고, 의학강습 교육은 해부학에다가 내과진단학, 약리학까지 공부해야 하는 데 거의 일본어책이라 골치아팠어"

오마도 간척 공사 당시 의료 담당으로 있다가 고향 정착촌에서 의료부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그는 정착촌에서 돌팔이 치과의사를 하며 돈을 벌었지만 무면허로 고발당해 형사가 오기도 했었다. 그런 생활에 염증이 난 그는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닭 300수를 기르던 어느 날 밤 이웃에 환자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치료해줬더니 "병원장 왔다"는 소문이 나 환자들이 줄을 섰다. 서귀포 도립병원에서 병리사로 근무해달라는 부탁이 왔지만 엄두가 나지 않은 그는 부산대학병원에서 3개월 동안 방사선사 교육을 받고 방사선사가 됐다.

▲기구한 삶을 산 강선봉씨가 출판한 "소록도, 천국으로의 여행' 책 표지 모습. 일본어로 번역되어 2024년에는 일본독자들이 강선봉씨를 만나기 위해 소록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강선봉​
▲기구한 삶을 산 강선봉씨가 출판한 "소록도, 천국으로의 여행' 책 표지 모습. 일본어로 번역되어 2024년에는 일본독자들이 강선봉씨를 만나기 위해 소록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강선봉​

기구한 삶을 산 그는 <소록도, 천국으로의 여행>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책 제목을 한글로만 읽으면 혹자는 소록도가 천국일거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강선봉씨의 소설 제목에서 말하는 천국은 ‘천할 천(賤)’자의 ‘‘천국(賤国)’이다. 하늘에 올라가 그리운 어머니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그는 요즈음 환자 인권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

"세상에는 백인, 황인, 흑인, 한센인의 네 인종이 살고 있나요? 폐암 걸렸다. 나은 사람을 폐암인이라고 불러요? 감기 걸렸다 나은 사람을 감기인이라고 불러요? 일본에서는 한센병 걸렸다 나은 사람을 조심스럽게 회복자분이라고 부르고, 대만에서는 강복자라고 불러요. 왜 한국에서는 한센병에 걸렸다 치료된 사람을 한센인이라고 부르죠?"

소라껍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던 그가 "밟고 지나가버린 사람은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가지만 밟힌 사람은 안다"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 강선봉씨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의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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