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기 힘든데, 우리를 위해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허요.”
제도의 한 어르신이 건넨 첫마디였다. 그 짧은 말 속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반가움과 벅찬 고마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남 여수 앞바다에 자리한 제도(齊島)는 백야도에서 배로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아름다운 바다와 고즈넉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지만, 주민의 다수가 고령층이어서 생활 편의시설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미용실을 찾는 일은 더욱 어렵다. 머리를 단정히 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야 하고, 하루가 꼬박 걸리기도 한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을 단정한 모습으로 맞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섬 어르신들에게 그것은 쉽게 이룰 수 없는 바람이었다.
그 마음을 헤아린 여수시민복지포럼 6명의 미용 재능기부 봉사자들이 아침 일찍 배에 올랐다. 작은 가방에 담긴 가위와 빗, 펌 약품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마음을 밝혀줄 선물이었다.
마을회관에는 이미 많은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애타게 기다렸소. 추석이 다가오는데 머리 손질을 하고 싶은데 육지로 나가기가 쉽지 않아서…” 한 어르신의 간절한 말은 봉사자들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했다.
퍼머와 가위질이 시작되자 회관은 금세 활기를 띠었다. 김명숙 봉사자는 오랜 경력을 살려 능숙한 손길로 머리를 다듬었다. “웃음을 되찾으시는 순간, 저희가 오히려 더 큰 힘을 얻습니다.”라며 정성스레 머리칼을 매만지는 모습은 장인의 손길 그 자체였다. 그는 “내 손끝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라는 소신으로 봉사를 이어오고 있었다.
옆자리에서는 김명희 봉사자가 펌을 말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섬 봉사에 여러 차례 참여해 온 경험이 있었다. “섬까지 오는 길이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르신들이 ‘덕분에 젊어진 것 같다’고 웃으실 때마다, 오히려 제가 선물을 받는 기분이에요.”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흘러내렸지만, 거울 속 활짝 웃는 어르신의 얼굴이 모든 피곤을 잊게 했다.
이날은 혼자 사시는 배동춘 할아버지(90)와 김모진 할머니(92) 댁에도 직접 찾아가 머리 손질을 해드렸다. 오래된 가구가 놓인 작은 집 안에서 두 분은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반가워하며 연신 손을 잡으셨다. 머리를 단정히 정리한 뒤, 할아버지는 “머리만 깎은 게 아니라 마음까지 다녀간 것 같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 역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이제야 명절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된 것 같소.”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작은 방 안 가득 울려 퍼진 웃음소리는 마치 작은 축제를 닮아 있었다.
이날 봉사자들은 20여 명의 어르신들의 머리를 정성껏 손질했다. 서로의 변한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어르신들의 얼굴은 꽃처럼 환했다. 덕담이 오가며 마을회관은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현장을 지켜본 임채욱 이사장은 “복지는 책 속이나 구호 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늘처럼 현장에서 함께할 때, 비로소 복지는 살아 움직입니다.”라고 말했다.
섬에서의 미용 봉사는 단순한 머리 손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르신들의 존엄을 지켜드리고, 외로움 속에 위로를 건네며,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작은 손길이 모여 큰 기쁨이 된 하루였다.
제도의 바닷바람 속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복지는 구호가 아니다. 복지는 실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