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 생각이 틀리네”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하지만, 이문장은 틀렸다. 정확한 표현은 “너랑 나랑 생각이 다르네”다. 단순한 언어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 혼돈 속에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를 의미하고,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 나다’를 의미한다.
‘다름’은‘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중립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고, ‘틀림’은‘너는 틀렸다.’처럼 옮고 그름을 판별하는 논리적 차원의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이 둘을 혼동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틀렸어’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왜 우리는 다름을 받아 들이지 못할까?
첫째, 우리는 기준을 삼는다. 자신의 경험, 가치관, 생각을 기준으로 여기고, 그 기준을 벗어나면 ‘틀렸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남편과 아내의 아이들 육아 문제에 대해. 남편은 아이들의 자율성을 우선 시 여기는 반면, 아내는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요구하는 방식이라면 누가 틀린 사람이 되는 걸까? 둘다 틀리지 않았다. 단지 육아철학이 다를 뿐이다.
둘째, 다름은 불안을 주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가 틀린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가진다. 그래서 방어기제를 작동 시킨다. 상대를 ‘틀렸다’고 규정하면, 나는 자동으로 ‘옳다’가 된다. 나의 확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다름을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이 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져 왔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성공과 실패, 회색지대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회색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드물다. 대부분은 관점의 차이, 상황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넷째, 공감 능력의 부족이다. 내 눈으로 세상을 보니, 다른 시각이 보이지 않는다. 육아맘은 워킹맘을 이해 하지 못하고, 청년은 노인을, 노인은 청년을 이해 하지 못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만드는 사회적 비용
소통의 단절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는 끝난다. 상대방은 방어적이 되거나, 공격적이 되거나, 침묵한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동료끼리,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관계가 깨진경우가 허다하다.
다름을 포용하지 않는 인식은 다문화 가정이나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나타나며, 불통의 정치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생각, 다른 방식, 다른 시도가 모두 틀린 것으로 치부되면 창의성도 억압되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법
첫째, 내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자.
“나는 이렇게 생각해,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냐”
이 한마디를 마음에 새기자, 내가 옳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
둘째, 판단하기 전에 “왜”라고 물어보자.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해” “어떤 경험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상대의 다름 뒤에는 그 사람만의 이유와 맥락이 있다.
셋째, 역지사지하자. 직장맘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마음, 상급자나 하급자가 업무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채식주의자가 고기를 거부하는 신념, 나와 다르지만 상대의 입장에 나를 대입해 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다.
넷째,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만 인정하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받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구나 정도만 인정하면 된다.“나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네 생각도 충분히 이해해” 이 한마디가 관계를 살린다.
다섯째, 언어를 바꾸자. “너는 틀렸어”대신 “우리는 생각이 다르네”
“그건 잘못됐어”대신 “나는 다르게 생각해”“왜 그래”대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작은 언어의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
다름이 풍요로움을 만든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다. 그것은 성숙함이고, 지혜이며,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 들일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우리와 다른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 다름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소통을 가로막는 언어폭력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