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학생의 눈앞에는 공책보다 태블릿이, 칠판 대신 대형 스크린이 자리한다. 인공지능이 맞춤형 문제를 제시하고, 학생의 표정과 반응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학습 난이도를 조정한다. 교사의 손에는 분필 대신 데이터가 들려 있다. AI는 이제 학교의 교과서이자 조교이며,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되었다.
AI가 교육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개별화 학습’이다. 과거 교실이 동일한 속도의 진도를 강요했다면, 이제는 학생마다 다른 학습 여정이 가능해졌다. 어떤 이는 빠르게 문제를 풀고, 또 다른 이는 기초부터 다시 배운다. 효율의 측면에서는 혁신적이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간의 성장이라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따뜻함을 대신할 수 있는가?”
AI에게 묻는다.
누가 아이의 눈동자 속 슬픔을 읽을 수 있는가 .
누가 분필 가루 속에 스며든 교사의 숨결을 기억하는가
AI가 지식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사랑을 가르칠 수는 없다.
AI가 문장을 완성할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의 인생을 완성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배운다는 것은 결국사람을
만나는 일 아닐까?
AI는 정보를 빠르게 가르칠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깨우치게’ 하지는 못한다. 시험 점수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학생이 느끼는 두려움과 희망의 온도를 읽지는 못한다. 교육의 본질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하는 일’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교사의 한마디 격려와 친구의 손길이 주는 울림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AI의 시대는 오히려 인간다운 교육의 필요성을 더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기계가 지식을 가르친다면, 인간은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데이터가 정보를 쏟아낸다면, 교사는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AI가 계산을 담당할 때, 우리는 사유와 성찰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노자는 말했다. “큰 도는 사람과 더불어 흐른다(大道與人行).” 기술의 발전도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학교가 AI로 인해 효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몰락이다. 그러나 AI를 인간의 이해와 공감, 창의와 윤리의 도구로 활용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진보다.
AI가 바꾸는 것은 단지 학교의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배운다’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쓰게 만드는 일이다. 지식을 넘어 지혜로, 경쟁을 넘어 공존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AI 시대의 학교는 인간의 얼굴을 지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