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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초목의 바둑, 역사속으로] 대원군은 점술사한테 후절수를 얻어 맞는구나

  • 입력 2014.08.04 10:20
  • 수정 2014.08.05 17:21
  • 기자명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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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문의 세도정치가 서슬푸르던 시절 흥선대원군이 은인자중 피강 자보하며 세월을 낚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의 대흥동 사저에 김만인 이라고 하는 점술사가 나타났다.

흥선 이하응을 보더니만 땅에 엎드려 넙죽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대는 뉘길래 이사람에게 큰절을 하시는가?” 하고 묻자,

"이 집에 제왕의 기가 떠 있으니 경축하옵니다" 하면서

마당에서 놀고있던 명복을 가리키며,

"저 아이가 아무날 아무시에 왕이 될것입니다" 말하면서 이내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흘러 그날이 되자 점술사의 예언대로 나이어린 명복이 고종에 등극하고 흥선 이하응은 대원군이 되어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일차적으로 세도김문을 밀어내고 적폐일소에 나선다. 우선 도포자락과 담뱃대 길이와 갓 넓이를 짧게하여 허례허식을 일소하고, 양반에게도 세금을 부과하여 상민의 부담을 덜어 주었으며, 당쟁과 민폐의 온상이었던 만연한 서원을 과감히 정리하여 지방의 해묵 은 민원을 속 시원히 해결했다.

세도가의 고리 대금업으로 전락한 환곡 제도를 본래의 취지인 춘궁기 빈민구제사업으로 되돌려 놓았으며, 적서 반상의 구분을 타파하여 널리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열열한 지지를 받는다.

이렇게 개혁이 착착 진행되고 있던 어느날 김만인이 바람같이 나타나서 대원군에게 하례를 올린다.

"국태공이 되신 것을 경하하옵니다."

"허 어디갔다 이제야 오시는가? 내 그대를 얼마나 찾았다고..그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소식을 몰랐거늘...이제 이렇게 만났으니 내 그대 에게 부귀영화를 안겨줄 것이야." 하니,

"당치 않습니다. 소승이 어찌 부귀영화를 탐하리까 마는 나리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 면 해인사의 장경 납출권한이나 주시옵소서, 경이나 읊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나이다."

"정히 그러하단 말인가? 그리하다 마다" 하면서 대원군은 관리를 시켜 즉각 증서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하여 김만인은 합천 해인사로 내려가고 대원군은 다시 나랏일에 힘 쓰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까지 잘나가던 정무가 김만인이 왔다간 뒤로는 일마다 꼬여간다.

경복궁 복원공사의 재원조달책으로 당백전을 발행하게 됐는데 이로인해 화폐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치솟자 민심이 들끓고, 정국수습을 위해 문호 를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을 취하자 이번에는 일본은 물론이요 서구 열강 외세가 함포 사격을 갈겨댄다. 내우외환 사면초가의 국면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처럼 나라안팍의 사정은 어려워지고 정적들은 들고 일어날 기회만 엿 보고 있는 살얼음판의 정국이 계속되는 어느날 대원군은 머리도 식힐겸 훈련대장 신헌과 사랑방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삼각산에서 왔다는 탁발승 하나가 시주를 받고 돌아나서며

"살 만인하셔야 이 집에 부귀영화가 오는도다." 라고 중얼거리며 사라 진다.

"殺萬人이라...? 저런 괴이헌."

그런일이 있은 후 공교롭게도 대원군은 천주교도를 처형하는 무리수를 두게되는데 절두산, 새남터, 당고개 할것없이 시체가 산을 이루어간다. 그러함에도 사태가 풀리기는 커녕 점점 꼬여가고 있던 어느날 울적한 심사에 신헌판서를 불러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대마 생사의 갈림길에서 상대의 요석을 잡고 겨우 대마가 살았다고 휴~하며 안심하는 순간 방금 따낸 그 자리에 돌이 '딱' 하고 놓인다. 이를 유심히 바라본 대원군 ‘억’신음을 토하며

“아이쿠 이게 어찌된 일인가, 후절수가 아닌가? 내가 그것을 못 보다 니..”

대마가 절명위기에 봉착한다. 그때 마침 좌포장 이경하가 들어서며 아뢰 기를,

"대감, 만인을 채웠습니다." 하며 천주교도 만명을 죽였다며 의기양양 보고를 한다.

후절수 한방으로 케오펀치를 날리고 회심의 미소를 짖고있던 신헌이 그 소리를 듣더니만,

"대원이 대감, 만명을 채웠는데도 시국이 이토록 어수선하니 그때‘살 만인’이라 하던 그 스님을 찾아 비답을 들어보는 것이 어떠할런지요?" 하고 묻는다

대원군은 신헌의‘살만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김만인이라는 자의 아리송한 정체가 갑자기 뇌리를 스치며 불안감으로 엄습한다.

"아차 그거였구만. 그거야, 지금 당장 해인사에 가서 김만인을 잡아 오너라."

대원군의 명령 일언직하에 득달같이 해인사로 내달렸으나 김만인은 이미 장경각에 숨겨져 있던 해인(木印)을 인출하여 사라진지 오래였다.

사실보고에 접한 대원군,

“아뿔사! 해인(海印)을 절취당하다니, 내가 그 자에게 뒷통수를 얻어 맞았구만, 후절수 한방을 된통으로 얻어맞고 말았어, 후절수를...”

이후 대원군은 부귀영화는 커녕 내리막길로 들어서 결국 권좌에서 물러 나게 되는데 ...

여기서 <조선비결전집> 중 집사야록편에 전하는 해인사(海印寺)에 얽힌 전설 하나를 얘기해야 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아주 옛날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전 신라 40대 애장왕때 생긴 일이다. 합천의 어떤 마음씨 착한 한 선비가 500년 묵은 거북이 약용으로 팔려 나가는 것을 보고 이를 불쌍히 여겨 자기가 타고 온 말과 바꾸어 거북을 살려보낸 일이 있었다.

이일로 인하여 선비는 용왕의 초청을 받고 용궁 을 방문하게 되는데 용왕은 그 거북이 자기의 딸이라고 하면서 딸을 살 려준 감사의 보답으로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도장 (木印) 하나를 선물한다.

선비는 선물받은 도장을 지상세계로 가지고 돌아 왔으나 도장의 쓰임을 몰라 그냥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귀(龜) 법사라는 한 노인이 찾아와‘그 목인(木印)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신물’이라고 말하며 그 쓰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방광불大方廣佛>이라 적힌 흰 종이를 한 장을 건네주며 사라졌다.

착한 선비는 대방광불이라는 뜻을 알아차리고 절을 짓기로 결심한다. 목인의 마법을 이용해 각종 자재와 목공과 인부들이 먹을 음식하며 절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준비물 일체를 마련하여 합천에 절을 세웠다(‘마이 다스의 손’과 같은 탐욕의 마법과는 질이 다르다).

절이 완공되자 절의 이름을 바다에서 가지고 온 도장의 힘으로 지었다 하여 해인사(海印寺) 라 명명하고 온나라가 꽃으로 화하는 세상 - 대방광불 - 을 구현할 것을 기원하며 목인을 아무도 몰래 장경각 비밀장소에 보관해 두었다.

헌데 김만인이라는 술사가 그같은 내막을 어떻게 알았는지 계획적으로 대원군에게 접근하여 신물(神物)인 海印을 훔쳐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대원군이 보기좋게 당했는데 조선말기 재야인사들의 필수덕목 이를테면 비하인드 컬쳐는 풍수도참과 바둑이였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5공시절 서슬푸르던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죽던 그해에 박통의 신임이 엷어짐을 감지하고 함양에 사는 박도사한테서 신년운세로‘풍표 낙엽차복전파(風標落葉 車覆全破)’라는 참구를 받아온다.

그것을 차조심하라는 말로 알아 듣고는 매양 차조심만 하고 다녔는데 일은 결국 초 겨울 낙엽떨어지는 시절에 車지철은 엎어트렸으나 全두환에게 당하고 마는 차복전파로 나타나는데 뒤에 숨어있는 은둔자 이게 바로 후절수다.

대원군은 잠저시절 야심을 감추고 상갓집 개신세로 지내면서도 바둑과 함께 풍수도참에 능통했던 인물이다.

한번은 불공을 드리는 부인 민씨를 따라 화계사에 갔다가 그곳 주지승의 잠언에 따라 선친 남연군의 묘를 예산으로 이장한다. 그리고 나서 태어 난 아이가 나중 왕(고종)이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풍수지리 도참에 내공이 쌓였으며 바둑이 고수급인 대원군인지라 천하를 휘저어도 모자랄 판인데 탁발승이 흘리고 간‘살만인’이라는 참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애꿎은 인명만 만명씩이나 살상했으니 이를 어이할꼬...? 업보로세

더군다나 해인(海印)까지 잃고 말았으니 아! 애석하도다. 조선의 앞날 이여...

후절수 그것은 비수다. 어설피 건드렸다간 뒷통수 맞는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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