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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피는 평화의 꽃, 제주4.3예술제

[스케치기사] 제주 4.3 초청, 첫째날

  • 입력 2018.04.17 15:56
  • 수정 2018.04.17 16:14
  • 기자명 박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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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들춰낸 4.3의 기억전 전시물 중 하나. 1994년 첫 예술제 포스터로, 제주 4.3 예술제는 벌써 30돌이 넘게 개최해오고 있었다. ⓒ 박샘별.

계획된 시간보다 일찍 제주문화예술진흥원에 도착하였다. 2시 40분에 모이기로 하고 각자 관람모드.

마침 진흥원의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서는 4.3을 맞이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전시실은 4.3 역사에 관한 사진전을(기억투쟁 70년 4.3기록 사진전), 2전시실은 그간 제주에서 추진했던 4.3 기념행사 포스터를 위주한 특별전시(예술로 들춰낸 4.3의 기억전)를 하고 있었다.

1994년 제 1회 4.3예술제를 개최한 제주는 어언 2014년엔 30돌을 기념할 정도로 행사역량과 지역 내에서 합의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제주민예총을 위시로 놀이패, 풍물굿패, 미술인협회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적인 작품들을 발표해왔고, 이러한 내용'만'으로 전시실 한 곳을 온전히 채웠다는 것 자체부터 훌륭한 귀감이 되었다. 그럼, 순천은? 여수는? 이라는 물음 앞에 부끄럽기만한 입장이지만, 이러한 자극을 계기로 여순 70주년을 내실있게 채우는 동력이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전시실을 휘적이었다.

 

1전시실 또한 4.3당시의 사진들을 고루고루 준비하여 시선을 끌었다. 

놀라운 점이라면 전시실을 기준으로 절반은 흑백사진, 나머지 절반은 컬러 사진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진이 담은 범주도 흑백과 컬러에 따라 판이하게 보여주고 있더라는 점이었다. 흑백사진은 주로 미군정 사진, 당시 군경 사진, 민초의 피해 상황 등 '과거' '사실'에 집중되어 있었고 컬러 사진은 주로 '현재사(*현대사보다 더 근접함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의 기억'을 화두로 담고 있었다. 

즉. 위령제 참석한 유가족 사진, 유해 발굴 사진, 해년마다 장소를 달리하여 개최한(정뜨르, 빌레못굴, 곤을동, 다랑쉬 등) 해원상생굿 기록사진(2002~2017), 현재의 4.3유적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시회 자체를 '기억'과 '투쟁'의 이름으로 담은 만큼, 제주는 여전히 흑백과 올컬러를 오가는 기억들 사이에서 분투하고 있구나, 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아울러 당시의 기억에 못지않게 기억해 나아가는 것에 제주 4.3은 많은 방점을 찍고 있구나, 흑백의 단조로운 과거사를 무지갯빛 컬러로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몫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4통 3반 복층사건 연극 장면. 무대를 아래층과 위층으로 구분하여 위층은 현재의 외지인(젊은이) 이야기를, 아래층은 4.3을 겪은 제주도민을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박샘별

소극장 느낌 물씬 풍기는 아담한 문예회관 실내에서, '예술공간 오이'가 만든 연극을 함께 관람하였다. '블랙코미디'이자 '기억코미디'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와 현재를 복층의 구조로 '평행선'처럼 그려보았다, 라는 호기로운 제주 청년들의 고심이 연극 곳곳에 깊이감있게 느껴졌다. 부끄럽지만 제주 사투리는 '너영 나영', '혼자 옵서예' (약간 영어 Nice to meet you, thank you 정도를 아는 수준이라고 비유하면 어떨지.) 두 개밖에 모르는 어찌할 바 없는 '뭍사람'인지라 1층의 4.3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띄엄띄엄 때로 눈치 짐작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는 게 크나큰 아쉬움이었다. (지슬 느낌. 그나마 지슬은 자막이라도 있지.ㅠㅠ)

그나마 코믹적 요소가 군데군데 양념처럼 버무려 있어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현대어 '밀당'을 연상케 하는 '밀였다 당겼다', 몰춤(말춤-싸이의 강남스타일 춤)과 바당춤(바당은 제주어로 '바다'라는 뜻)을 추는 제주 청년들의 해피 바이러스에 빙긋 웃음이 났다.

 '촛불이 날 지켜준다'며 촛불 하나를 심지처럼 불 밝히던 소녀의 모습, 최근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맨도롱 또똣'이라는 제주 토속어 등에서, 촛불혁명과 접선하고자 하는, 현재의 뭍사람들과 접선하고자 하는 제주의 의지가 엿보였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무엇보다 2층의 현재 청년들의 고민을 적나라하게, 공감있게 '진실에 가닿게'(진실은 때로 사실보다 힘이 세다.) 표현한 점도 굉장히 좋았다. 특히 주인공 상식이 '선택적 루저'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꺼낸 돼지 도축장 취업 에피소드는 유대 역사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떠올리게 할만치 소름이 돋았다.

 

제주 4.3을 홍보하기 위한 여러 단체의 안내 부스들. 다채로운 체험거리와 친절함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샘별

전야제 시작 전까지 빈 시간은 개인 자유시간으로 주어졌는데, 뭘 하며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던 필자를 사로잡은 것은 다채로운 여러 체험 부스였다.

가장 인기있었던 부스 중 하나는 '음식으로 만나는 4.3-제주 향토음식 보전 연구원'. 삶은 빼때기(고구마 말랭이), 감저(고구마) 범벅, 피난 죽, 오메기떡, 보리상웨떡 등 피난 당시의 음식들을 '직접 먹어볼 수 있는' 부스였다. 그 옆 부스는 이에 곁들여 마실 만한 차와 커피를 나눔하고 있었다.

이외의 부스들은 대체로 '사회 참여형 부스'(세월호 리본달기, 제주환경연합의 제주 2대공항 반대 부스, 제주여성 4.3의 기억 등)와 '미니 공방(캘리그라피, 탈취제 만들기, 열쇠고리 인형 만들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방형 부스의 경우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작업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였고, 사회참여형 부스의 경우 제주 4.3이 별도의 동떨어진 사건이 아닌 현대사-현재사와 연결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오후 5시 40분부터 제주 4.3항쟁 전야제 '기억속에 피는 평화의 꽃'이 열렸다

전야제 장소는 문예회관 앞마당이었다. 놀랍게도, 설치된 무대 뒤의 (실제) 동백꽃과, 경찰서가 나란히 보였다. 국가에 의한 명백한 폭력을 행한 대명사인 경찰서와, 그럼에도 활짝 핀 동백, 그 너머로 동백 꽃잎이 어룽지는 무대의 모티프가 기가막히게 오버랩되었다. 이건 뭐 소름을 넘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진혼굿 형식의 식전공연 후, 이번 4.3 평화문학상 시부문 수상작 '취우-정찬일'의 낭송이 이어졌고, 액자식 구성으로 할망과 손녀가 나란히 손을 잡고 나와 '무근 풀 비어가듯'(묵은 풀 베어가듯) 사람 목숨이 베어졌던 4.3의 아픔을 딛고 인권의 존엄함을 알리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등장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고튼 날 고튼 디서'(같은 날 같은 데서) 줄초상들... 전쟁도 교통사고도 아닌데 왜 같은 날 제삿날인지 궁금해하는 소녀의 입장은 아마 4.3을 처음 접하는 많은 이의 궁금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몬딱마씸'(몽땅 다) 그렇게 희한한 비극이어야 했던 할머니의 분노는 4.3을 겪은 경험자의 그것이고 말이다.

유명 가수에 기대기보다 자체적으로 준비한 여러 공연들을 선보이는 모습도 느낌표였다. '제라진 소년소녀 합창단'의 앳띤 공연과, 4.3 희생자 유가족 및 시민 합창단403명(4.3을 연상케 하는 숫자까지 절묘하다.) 이 함께 한 화음을 내는 모습은 한 개인의 열창보다 수백 배 감동적이었다.

대만, 오키나와 그리고 제주의 '동아시아 평화메시지'는 제주 4.3이 이미 국제적인 인권 평화의 성지임을 천명하는 듯 오소소 소름돋는 일갈이었다.

 제주의 경우 유족회 수장이 직접 '수많은 민간인학살 중 4.3이 그 시금석이 되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는 했다. 다만 잊지는 말아야 한다' 등을 힘주어 말씀하시는 대목이 울컥 마음에 남았다. 대만과 오키나와의 경우 각각 중국어 및 일본어로 긴 문장을 전달하였는데, 미리 준비된 한글 자막이 나왔음에도 글자 크기가 작아 잘 전달되지 않는 점은 매우 아쉬웠다. 

뒤이어 70주년 평화인권 선언문을 당당하게 외친 현기영 소설가 분은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명언의 연속이었다. 애도, 슬픔에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4.3 조상님'을 기억해야 한다, 4.3은 단순 희생자가 아닌 역사의 당당한 주체이다,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는 화룡점정의 주장까지 멋진 자존의 언어로 비춰졌다.

시대를 풍미한 민중가수 정태춘이 백발의 미노년으로 등장하셔서 자신의 삶 전체를 읊조리듯 고백하는 대목도 가히 '멋졌다'. "하늘과 땅에 분노하지 않았지만 시대와 사람에 분노했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랴." "분노의 구름을 걷어내는 발전의 역사를 기대했다" 등의 구절은 그가 그렇게 선하게 분노했던 영혼이었기에 가닿을 수 있는 절절한 진정성의 넋두리였다.

미리 배부한 LED 조명으로 동백꽃과 잎새, 흰 배경을 수놓은 모습은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었다. 특히 '꽃도 잎도, 그리고 배경도 모두 소중하여라'는 가르침을 4.3 영령들이 친히 해주시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 평화, 4.3, 동백꽃 피었습니다를 함께 외치며 그 자리에 선 모두와 하나 되는 느낌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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