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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

3일 안도 이야포서 수중탐사와 추모제, 표지판 제막식 겸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사건 목격자와 유족대표 등 참석

  • 입력 2019.08.03 23:30
  • 수정 2019.08.05 11:09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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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여수시 남면 이야포 현장에서 열린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3일 안도에서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및 표지판 제막식'이 열렸다.
추모제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지만, 처음 표지판이 제작설치돼 의미를 더했다.
이번 행사는 지역 내 다양한 단체가 함께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박근호, 엄길수)를 구성해 추진되었다.

행사는 총 2부로 나뉘어 폭염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진행됐다.

10시에 시작된 1부 행사에서는 한국해양구조단 여수구조대 6명의 다이버가 폭격을 맞아 수장된 피난선을 찾는 수중탐사를 진행했다.

이날 날씨는 아주 맑았다. 다이버들은 난파선을 봤다는 안도 해녀의 증언을 토대로 폭격현장을 탐사하여 피난선 잔해 및 유류품을 수색했지만 안타깝게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추모제에는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현장에 최초로 사건을 알리는 표지판 설치도 겸해, 이를 기념하는 제막식도 함께 열렸다. 이날 행사는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됐으며 여수드론항공교육원 드론촬영팀도 함께 하여 제막식 장면을 영상제작 할 것을 약속했다.

추모제를 지내고 있는 여수넷통뉴스 엄길수 이사장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3일, 남면 안도 이야포 상공에서 정찰 중이던 미군전투기가 피난민선에 기총사격을 하였다. 당시 배에는 피난민수용소를 거쳐 거문도로 이동 중인 350명의 주민이 타고 있었다. 전투기는 네 차례에 걸쳐 기총사격을 하였고 이로 인해 피난민 150여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크게 다쳤다.

이장님을 대신해 나온 안도 주민 박희자 씨는 “면장과 박성미 의원이 도와주어 지난 7월 10일부터 장소를 마련하였다. 오늘 제막식이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길 바라며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이 작은 제막식이 평화의 공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과거 편안한 섬이었던 안도는 이 사건으로 큰 슬픔에 빠졌다. 시민들의 관심으로 안도가 행복한 섬으로 탈바꿈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박종길 이사

여수지역사회연구소도 20년 전 처음 시민 제보로 이야포 사건을 알게 됐다. 박종길 이사는 여순사건을 조사하던 중 이야포 사건을 접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 생존자들 조차도 희생자의 규모를 알지 못했고 사건을 언급하는 일 조차 금기시되어 자세한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 1998년에 박 이사가 처음으로 세계일보에 이 사건을 제보하며 알려지게 됐다. 박 이사는 그동안 모은 증언을 편집하여 이야포미군폭격사건의 과정을 설명했다.

본래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피난민들이 타고 있던 배였다. 그러나 피난민들은 부산 역시 안전하지 않음을 깨닫고 최종목적지인 제주도로 내려오다 안도에 정박하다가 폭격을 당했다.

목격자 이사연 씨
한국전쟁 미군폭격사건 민간인희생자유족회 포항지구 허명규회장

당시 폭격을 목격한 이사연 씨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투병으로 전남대병원에 있으면서 이번 제막식을 위해 안도까지 왔다.

허명규 한국전쟁미국폭격사건 민간인희생자유족회 포항지구 회장은 “젊은 세대가 이야포 사건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 왜 우리부모형제가 전쟁 죽에 죽어야 했는가, 20년간 진실을 찾아 헤멨지만 알려진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는 유족들에게 말로만 법, 법 하지 말고 실제로 배보상을 하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20대 국회에 특별법이 올라왔지만 그대로 멈춰 있어 통과될는지 의문이다. 정치인들은 각성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여수시의회는 이야포 및 두룩여 미군폭격 진상규명촉구건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허 회장은 “일반적으로 법원에서 보도연맹 사건 시효는 진실규명을 받은 날로부터 3년이지만 미군 사건은 희생자된 날로부터 5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포항에서는 북송리 사건을 포함 총 5건의 사건을 재판에 냈는데 법원에서 ‘전쟁통에 미군이 저지를 사건이므로 한국은 마을 폭격이 있었는지 우리는 이를 알 수 없었으니 이는 미군 책임이다’고 말했다”며 국가와 법원의 무책임함을 통탄했다.

법원의 이 말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데 전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이다. 허 회장은 “그게 국가가 할 말인가” 반문하며 “안타깝지만 현재 한국 실정이 그렇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2000년에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해서 북송리 사건을 알렸는데 그 후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미군 사건과 관련되어 한국당 울진 강석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있는데 상정도 못 되었다. 국가는 재판이 아니라 진실규명이 되면 이후 배보상이 바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국회가 들어서고 나서 국회를 다니며 위원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의원들은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는 법안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일단 회의장에 들어가면 모르쇠로 일관했다.

올해 6월 27일 소의원회에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후 한국당의 반대로 조정위원회에 들어갔다. “조정위원회는 구성기간도 만만치 않게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법이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다. 이제는 지쳤다”고 허 회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포항 환여동 미군함포사건은 한국군이 관여했던 자료가 발견되어 현재 재판중이다. 이달 두 번째 재판에 들어간다.

추모시와 추도사 낭독도 있었다.

추모시는 시인 이민숙씨가 추도사는 여천고 학생들이 낭독했다.

학생들은 “이야포사건을 묵인한 정부 뿐만 아니라 관심을 가지지 못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비극이 발생한 지 69년이 지났지만 이 행사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야포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양영제 소설가가 관련사진과 함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여수역 양영제 소설가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묘사하여 참가자들의 사건 이해를 도왔다. 그는 이야포 폭격사건은 "단순히 폭격사건이 아니며, 미국의 말처럼 전쟁 중 발생한 오폭이 아닌 학살이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전선도 형성되지 않은 이야포에서 미군기가 태극기를 단 피난민선을 폭격했다는 것은 엄연한 학살이다. 당시 최신식 비행기 슈팅스타가 폭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유족이 그림으로 설명한 폭격기와 모양과 형태가 같다.  대법원도 이 학살사건을 인정했지만 시효가 끝났다며 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서 배상받지 못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판단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면서 양영제 소설가는 이야포 사건이 ‘학살’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제막식에는 부산에서 참가한 유족대표 이춘혁씨와 한국전쟁미군폭격사건 민간인희생자유족회 포항지구 허명규 회장, 지역사회연구소 박종길 이사, '여수역' 작가 양영제, 샘뿔인문학연구소 이민숙 시인, 여천고문예반 학생 5명, 여수드론항공교육원 관계자, 남면 사무소 와  안도리 박희자 이장과  주민들이 참석했다.

수중탐사를 준비하는 해양구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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