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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 소울메이트

'춤추는 정원' 연재(15)
신이 주신 선물, 도반 자인
의식이 성장하며 관념에서 자유로워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 입력 2020.02.21 16:50
  • 수정 2020.04.25 17:11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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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청정하고 맑은 기운이 가득하지만 원래 이곳은 개나 오리, 닭 등을 키우던 곳으로 매입 당시 견고한 철책에 둘러싸이고 시멘트 가건물이 여기저기 널린 곳이었다.

땅을 구입하고 맨 처음 한 일은 시멘트와 철책을 모두 걷어내는 일이었다. 거대한 포크레인으로 인부들과 함께 한 달간 철거 작업을 했다. 동네사람들은 그 좋은 시멘트 길을 왜 걷어내냐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공사작업이었다.

그러나 사실 벅찼다. 공사과정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토목과 관련된 문제가 많았는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마땅히 의논할 대상이 없었다. 남편도 막 시작한 한의원 일에 매달릴 때였고, 도시에서만 자라 이 분야에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소울메이트를 만나다

가끔 이런저런 문제로 지칠 때면 나도 모르게, ‘하느님, 힘 잘 쓰고 시골일 잘하는 남자 한 사람 보내주세요. 그럼 이곳을 아름답게 만들어 좋은 일 할 테니까요’라고 기도하곤 한다.

내 기도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이번에도 우주는 내 청을 들어 주었다!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인부들과 갈등이 생겨 힘들어 하고 있을 때였다. 혼자 풀이 죽어 현장 바닥에 앉아 있는데 자인이 찾아왔다. 자인은 예전에 명상센터에서 한때 같이 공부했던 도반으로 소식을 듣고 온 것이다.

환하게 웃고 들어오는 자인을 보자 눈물이 날 뻔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토목 일을 혼자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방문만으로도 감동했다.

당시 자인은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할 준비를 하던 때였지만 내 상황을 보고 입산을 미루고 나를 도왔다.

무엇보다 시골 출신인 그는 토목공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직감적으로 자인은 우주가 나에게 보내준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자인은 내 의도대로 우리 정원으로 ‘출가’를 했고 지금까지 나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면서 정원을 가꾸고 있다.

자인은 타고난 수행자다. 여자 못지않게 섬세하고 예민하며, 종합예술인이라 불릴 만큼 재능도 많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명상과 더불어 차를 공부해온 터라 차에 대한 미각과 지식이 남다르다.

정원에 놀러 온 사람들은 그를 보고 한결같이 ‘어디서 저런 보물을 데려왔냐’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 정원을 위해 신이 주신 선물이에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삶에서 운명적인 만남은 그리 흔하지 않다. 자인과의 만남도 내 생애 몇 안 되는 ‘운명적 만남’이다.

자인 외에도 가깝게 지내는 몇몇 도반이 있다. 수행을 하다 조계종으로 출가한 도반도 있고 멀리 미얀마로 출가한 도반도, 한달에 몇 번씩 명상과 요가 등 수련을 함께 하는 도반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일상을 공유하며 수행의 길을 함께 가는 ‘소울메이트’는 자인뿐이다. 우리는 영혼의 단짝처럼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한다.

세속의 눈으로 볼 때 우리의 관계는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남편과 자인, 그리고 나는 일상을 공유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의식이 성장할수록 낮은 차원의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 진보적 사상과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남편과 나, 자인 우리 셋은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어떻게 보면 가족 또한 이해관계로 얽힌 관계다.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는 짐이 될 수 있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족 전체가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을 할수록, 의식이 성장할수록 우리는 가족이나 국가 같은 이데올로기적 관념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렇다. 자유다. 결국은 수행의 목표도 ‘대자유’다.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자유, 물질적 삶으로부터의 자유, 나를 구속하는 에고로부터의 자유.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수행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반’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신념이 아무리 강하고 의지가 투철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수행이라면 더더욱.

수행이란, ‘잠들어 있는 세계에서 깨어나 지켜보는 것’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이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소란스러운 세상을 피해 산으로 들어가거나, 수행자끼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도 한다.

나 또한 한때는 그런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모임 역시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땅에 나만의 수행처를 마련했다. 아이가 부모의 품에서 자라다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로부터 독립이 필연인 것처럼.

새로운 땅에서 나는 평생의 ‘소울메이트’를 만났고, 정원에서 함께 춤추고 명상하는 새로운 길벗들을 만났다.

루미의 유명한 시가 떠오른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엔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약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정원도 소울메이트와 함께하는 길벗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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