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와 나누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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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와 나누는 대화
  • 환희
  • 승인 2020.03.0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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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정원' 연재(17)
매일 묘목에게 말을 걸며 상태를 살피는 재미
15년이 지나니 식물과의 교감도 더욱 섬세해져
모든 생명의 궁극적 소망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우리 정원에는 감나무가 세 그루 있다. 척박한 땅이라 잘 자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그루가 제법 실하게 컸다. 감이 주렁주렁 열릴 것을 기대하고 해마다 기름진 퇴비를 듬뿍 주는 등 정성을 다했지만 감은 잘 열리지 않았다.

어느 날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정원에 놀러 오셨기에 감나무에 감이 열리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그래? 감이 안 열린다고?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지. 나무한테 단단히 일러. 너 내년에도 감이 안 열리면 뽑아서 장날에 팔아버릴 거야! 그렇게 단단히 일러두면 내년엔 틀림없이 감이 열릴 거야.”

어린애 같은 할머니의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이나 웃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확실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라고 재차 강조하셨다. 밑져야 본전, 할머니의 말씀대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다음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협박’이 나무에게 통한 것이다.

황홀한 마법의 세계, 가끔 성인(聖人)들의 글을 보면, 사람과 교감을 나누듯 꽃과 나무와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성인들의 삶을 미화하기 위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가능한 일일 수 있다고 본다. 믿거나 말거나, 나도 꽃과 나무와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초기에 나무를 많이 심었다. 입구까지 들어오는 길은 겨우 차 한 대 다닐 정도로 좁아서 손가락 굵기 정도의 작은 묘목을 심었다. 이 묘목의 생사는 한 달 사이에 결판이 나는데, 이 시기에는 열심히 물도 주어야 하고 혹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지 매일 섬세하게 보살펴야 한다. 묘목이 무사히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물을 줄 때마다 말을 건다.

“꼭 살아야 돼. 잘 살아나주면 사랑스럽게 보살펴줄게.”

대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새로 심은 묘목이 밤새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피고, 퇴근할 때는 잘 견디라고 격려하기도 한다. 나무가 생사의 기로에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볼 때면 나 역시 간절한 마음이 되어 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나무를 뽑거나 자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정을 할 때는 꼭 대수술을 하는 것처럼 아플 것 같아 참으라고 다독거려 주고, 나무를 뽑아낼 때는 최대한 미안함을 표시한다.

이렇게 15년 이상 꽃과 나무를 키우다보니 언제부터인가, 과거 친정엄마가 제사를 지낼 때마다 ‘귀신’들과 중얼중얼 대화를 하셨듯 나 역시 정원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갈수록 꽃과 나무의 ‘언어’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3월 초 생명이 막 움트기 시작하는 초봄, 나는 식물의 부산한 웅성거림을 실제로 듣는다. 터질 듯한 생명의 기운이 그대로 전달되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온 세상이 축제를 벌이듯이, 꽃들이 차례로 피어난다.

아련한 연노랑 산수유가 제일 먼저 피어나고 다음은 붉은 홍매화,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 진노랑 수선화가 피어난다. 거의 동시에 개나리가 온 계곡을 노란 세상으로 만든다. 이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던 아이리스가 정원 곳곳에서 쑥쑥 올라온다.

4월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샤스타데이지가 피고 옆에서 짝을 이루듯 정열적인 붉은 작약꽃이 피어나면 온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황홀감을 맛본다.

아, 어떻게 이런 꽃들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있겠는가. 꽃이 피어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탄을 그들에게 전달한다. 말로도 전달하고 몸짓으로도 전달한다. 너무 사랑스러워 살짝 어루만지기라도 하면 꽃들은 부르르 떨면서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이런 황홀한 봄을 벌써 열다섯 번이나 맞이했지만 감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정원은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져 날이 갈수록 감동은 커진다. 그만큼 식물과 교감도 섬세해진다.

꽃과 나무들도 여기저기서 자기를 봐 달라고 아우성치면서 시선을 끌려고 노력한다. 그들도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꽃잎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꽃도 있고, 강한 향기로 주목을 끄는 꽃도 있다. 모든 생명의 궁극적 소망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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