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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씨 목소리 통해 76년만에 되살아난 노래 '청석포'

[현장] 23일 여수미술관 1층 여연갤러리카페에서 '청석포 앨범 발표회' 열려

  • 입력 2020.07.27 16:06
  • 수정 2020.07.31 07:43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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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씨가 '청석포'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는 노래가 맘에 들어 6개월을 준비했다고 한다. ⓒ 오문수

지난 23일(금) 저녁 7시, 여수 도원로에 소재한 여수미술관 1층 여연갤러리 카페에서 '청석포 앨범발표회'가 열렸다. 여수상공회의소가 후원한 발표회장에는 15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주최측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꼭 필요한 최소인원만 초청했다"라고 밝혔다. 
 
'청석포 앨범발표회'의 주인공은 안철씨다. 그는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프로가수가 아니다. 여수국가산단에 28년째 근무하는 근로자다. 그는 고등학교시절부터 가수를 꿈꿨다. 하지만 삶의 현장이 그의 꿈을 가로막았다.
 
가슴 속 깊이 응어리를 품고 살던 그는 퇴직하기 전까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는 2014년 4월 26일 여수시 장애인 복지관에서 1시간짜리 공연을 했다.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며 나선 첫 번째 공연은 그 자신을 돕는 계기가 됐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매년 15회 정도 지역민들 앞에 섰다.

그의 목소리와 음조를 들으면 '여수의 장사익'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15곡 정도를 발표한 그에게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그의 음반이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진군의 전남음악창작소 음반제작 및 마케팅 지원사업에 선정(2019년)되어 음반을 제작 중이다.
 
작곡자 이종만이 안철을 택한 이유...한국적 정서를 잘 표현하기 때문에
 
간단한 인사소개에 이어 '청석포'를 작곡한 여도초등학교 이종만 교사가 청석포 음반앨범 제작 과정과 노래를 불러줄 주인공으로 안철씨를 선정한 이유를 말했다.

청석포 작곡자 이종만(왼쪽) 교사와 여수넷통뉴스 오병종 편집국장이 대화하고 있다. ⓒ 오문수

"약 22년 전인 1998년 어느 날 지인인 여수고 음악 교사 김성수씨가 86세의 윤형수씨를 모시고 와서 시집을 내놓으며 작곡을 부탁했어요. 한 달여간 작곡을 해 바리톤 최승남• 소프라노 채미영 등 성악가들과 함께 힘을 합쳐 작품을 발표했었죠. 그 작품은 테이프로 만들어 보급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미진한 느낌이 들어 아쉬워하던 중 안철씨가 생각나 2020년 여도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안철씨의 목소리로 '청석포'를 올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철은 한국적 정서가 짙게 묻어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창을 하듯하는 개성있는 목소리의 소유자입니다."

'청석포'...개도에 소재한 아름다운 포구 이름

스토리가 곁들여진 음악은 깊은 감동을 준다. '청석포' 가사 속에는 깊은 사연이 숨어있다. 청석포는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에 있는 포구 이름이다. 청석포는 개도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용과 호랑이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형상이다.

태평양을 향해 반원형으로 뻗어있는 포구 인근 바위에는 파란색 바위가 있었고 납작한 바위는 온돌 구들장 용도로 쓰였다. 청석포 왼쪽 산등성이에 있었던 층을 이룬 바위들은 시루떡 떼어내듯 잘려나가고 아픈 상처를 간직한 해변에는 파도에 밀린 몽돌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개도'라는 말을 들을 때 웃는다. 퇴직 역사교사이자 향토사학자 김병호씨가 '개도'에 대한 내력을 설명했다.

청석포 앨범 CD와 청석포 사진 모습. 사진작가 박근세는 청석포에 파도가 몰려오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현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한다 ⓒ 박근세

"개도의 '개'는 한문으로 덮을 '개'자를 쓰는데 덮을 '개'와는 전혀 상관없어요. 말 그대로 집에서 키우는 개란 뜻의 개섬이거든요. 전국의 지명들을 행정처리하느라고 한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섬'이 '개도'로 바뀐 겁니다. 이 섬을 돌산에서 보면 꼭 개를 닮았어요. 개도에는 천제산과 봉화산 두 개의 산이 있는데 이 두 산의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개의 쫑긋한 귀처럼 생겼거든요. 그래서 '개섬'이란 이름이 붙었어요."

'청석포'... 일제 말엽 문학청년이었던 분들이 "세상에 꼭 내보이라!"고 부탁한 시

▲ 청석포 앨범발표회장 모습

 



마이크를 이어받은 이는 여수넷통뉴스 편집국장인 오병종씨다. 전직 여수문화방송 PD였던 그가 '청석포'에 얽힌 사연을 자세히 전해줬다.

"2003년 어느 날이었어요. 회사 동료가 어르신 한 분을 내게 안내해 주셨어요. 팔순이 넘은 그분은 내 앞에서 큰 봉투를 열더니, 편지 한 통과 자신이 지은 몇 편의 시, 그리고 그 시에 붙인 곡을 붙인 악보와 노래 테이프를 내놓았습니다."

다음은 윤형수씨가 내민 편지 내용이다.

고인이 되신 윤형수씨 모습. 일제강점기인 1944년 5월 친구인 정세진씨와 함께 개도에 소재한 '청석포'를 주제로 시를 발표했다. ⓒ 이종만

"안녕하십니까? 편지 한 장 쓰는 데 50년, 60년이 걸렸다면 거짓말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편지가 바로 그런 편지입니다. (중략) 당시 화정 조합에 봉직하고 있던 소생은 정세진씨와 함께 '청석포'를 초안하였습니다. 차일피일 미뤄오다 점차 나이가 차면서 부족하나마 이 시를 보완 끝맺었습니다. (중략) 이것이 정세진씨의 묘 앞에 새겨진다면 훗날 전설의 고향과 같은 예가 될 것입니다. 부족하나마 이것을 밑거름으로 지방 문예활동에 많은 노력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세진은 6.25동란 중에 젊은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윤형수도 개도를 떠났고 1960년대에 어업조합에서 은퇴했다. 소경도에서 86세의 노구를 이끌고 홀로 살아가던 윤형수의 꿈에 어느 날부터인가 먼저 간 정세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꿈에서 그들은 개도 이곳저곳을 함께 거닐며 시를 읊조리고 끄적이다 문학집까지 만들어 냈다. 꿈에서 깬 윤형수는 정세진과 함께 꿈에서 읊조렸던 시구들을 복원해 냈다. 정세진은 "그 시들을 세상에 꼭 내보이라"고 부탁했다.

▲ 안철씨가 '청석포'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엽 윤형수와 정세진은 문학청년이었다. 그들은 화정면 개도에서 어업조합(수협의 전신) 직원들이었다. 지금은 윤형수도 고인이 됐다. 다음은 문학청년 정세진 윤형수가 1944년 5월에 쓴 시로 '청석포'의 노랫말이다.

 

청석포 청석포 남풍에 울었느냐 웅크렸느냐
청석은 층층 자개돌 3층으로 진을 쳤는데
밀려드는 파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청석에 부딪친 파도는 산산이 부서져
노호하며 치솟아 오르고 배성금 골짝엔 우거진 녹음이로다
청석포 청석포 개도의 청석포 수평선에 띄운 배는 어데로 가나
가건 말건 크게 적게 파도 소리만


"곡이 너무나 맘에 들어 6개월 동안 준비했다"는 안철씨는 "'청석포' 작품을 기획하면서 여러 사람과 공동작업하니까 힘도 덜 들고 보람도 컸다"며 "지역 음악가들과 힘을 합쳐 좋은 음악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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