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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노동자, 그들을 반기는 유일한 '쉼터'

학동 이동노동자쉼터에서 만난 배달기사와 대리운전기사
낮에는 배달라이더를, 밤에는 대리기사로 일하며 생계 이어가
온종일 배달대행어플로 콜을 확인하고 부르는 곳으로 '이동'하는 이동노동자
코로나19로 여행객의 발길 끊겨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는 여행가이드까지
이들이 눈치 볼 필요 없이 지친 몸 뉘일 곳은 이동노동자쉼터 뿐

  • 입력 2021.05.22 15:42
  • 수정 2021.05.23 21:37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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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이동노동자쉼터를 찾은 배달기사 이 씨가 콜을 받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전시은
▲여수이동노동자쉼터를 찾은 배달기사 이 씨가 콜을 받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전시은

40대 이 씨는 대리기사와 배달라이더를 겸하고 있다. 낮과 밤 부지런히 밖에서 돌아다니는 그는 이동노동자다.

그는 배달대행 어플과 카카오택시 어플을 통해 손님을 맞는다. 근방의 행인이 콜을 부르면 이를 가장 먼저 수락한 대리기사에게 배차가 되는 방식이라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해야 일을 끊기지 않는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보며 콜을 기다리기 때문에 핸드폰이 그에겐 ‘밥줄’이다. 손님이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 차를 몰고 도착지에서 다시 콜을 받는다.

일을 마치고 차에서 내리면 그는 그 근방에서 다시 손님을 받든가 아니면 대리기사 요청이 많은 번화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주로 술집이 밀집한 여천동, 선원동, 소호동에서 콜이 많이 들어온다. 많을 때는 하루 50건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주말과 평일 손님의 수는 차이가 많아, 한달 수입을 따지면 벌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이 씨는 “주말에 대부분 외곽으로 놀러 나가서 콜을 부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동선이 겹치면 학동 수자원공사 3층에 있는 이동노동자쉼터를 들러 안마를 받는다. 술집, 카페가 밀집한 곳이라 근방에 콜이 자주 오니, 하루에 두세번 들를 때도 있다. 쉼터에서 ‘일에 없으면 안되는’ 핸드폰도 충전한다. 쉼터가 문을 열기 전에는 주로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 씨는 여수, 광양, 순천을 오가며 차를 몬다. 드물지만 멀게는 경기도와 서울까지 운전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손님을 순천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손님을 데려다주고 다시 맨몸이 된 이 씨는 첫차를 타고 여수로 돌아온다. 새벽 두시가 지나고 행인이 뜸해지면 그가 퇴근할 시간이다. 최근에는 밤 10시 이후 영업이 금지되며 일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여수 1호 이동노동자쉼터, 학동에 문 열다

▲여수이동노동자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서씨 ⓒ전시은
▲여수이동노동자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서씨 ⓒ전시은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는 지난 2016년 서울 서초동에 처음 설치됐다. 그리고 여수노사민정협의회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4월 여수에도 이동노동자쉼터가 들어섰다. 이용자는 적지만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만족감을 표했다.

쉼터 출입관리대장에 따르면 오전 0시부터 3시 사이에 이용객이 가장 많다. 온종일 밖을 돌아다녀야 하는 그들에게 쉼터는 눈치 볼 필요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최근 코로나19로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대리기사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쉼터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쉼터를 찾은 또다른 40대 대리기사 서 씨가 바로 그런 사례다. 그는 2018년부터 프리랜서 여행가이드로 관광객에게 여수를 소개했다.

봄과 가을, 날씨가 좋으면 여행객들과 여수 곳곳을 누볐다. 여행사 소속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일하는 그는 SNS와 블로그를 통해 여행객과 접촉한다. 여수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하고 싶어서 가이드일을 시작한 그는 “프리랜서지만 충분히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닥치면서 일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끊겼다”. 4월과 5월 한창 여행객으로 붐빌 시기에 그를 찾는 여행객은 단 한명도 없다.

타지에서 오는 여행객의 발길이 끊기자 결국 그는 대리기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래도 여수에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전에는 하루 10개 이상의 콜을 받았다. 때로 피곤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콜을 받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콜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오후 7시반 콜을 받는 앱으로 확인해보니 현재 여수 전역에 콜이 겨우 2건 떠 있었다. 예전같으면 10개 이상의 콜 요청이 떠 있을 시간이다. 서 씨가 쉼터에 머무는 한 시간 동안 콜은 단 한건도 오지 않았다.

그나마 서 씨는 거주지가 쉼터 근처라 자주 찾는 편이다. 그렇지 않는 노동자는 무리하게 시간을 내어 쉼터로 향해야 한다. 서 씨는 “작은 규모라도 시내 곳곳에 쉼터가 설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동노동자쉼터는 필수안전망

▲ 쉼터를 찾은 이동노동자가 안마의자에서 쉬고 있다 ⓒ전시은
▲ 쉼터를 찾은 이동노동자가 안마의자에서 쉬고 있다 ⓒ전시은

이동노동자를 위한 복지에 가장 앞장 서는 지자체는 경기도다. 최근 경기도는 공공기관에 택배차량 전용주차면을 조성하고 무인택배함 설치를 늘리는 등 이동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여수이동노동자쉼터가 이용객의 만족도가 높음에도 방문객이 적은 이유로 신성남 노조지부장은 주차가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여수이동노동자쉼터는 이용자들의 접근성은 좋지만 택배차량이 들어서기는 어렵다. 여수시 공영주차장이 있지만 비용이 부담되어 오지 않는다. 경기도에서는 이같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택배 탑차 주차가 가능한 택배노동자쉼터 조성을 검토 중이라 밝힌 바 있다.

건물 내에 쉼터를 조성하는 것 외에도 도로에 부스형과 캐노피형의 간이쉼터도 설치해 중간중간 이동노동자가 길에서 쉴 수 있도록 한다. 간이쉼터는 이동노동자 접근이 용이하고 짧은 시간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동노동자의 근로환경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일하는 길 위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잠깐의 방심이 큰 사고로 이어져 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사고위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쉼터가 자리잡기 전 이 씨는 여수에서 순천을 오가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오토바이를 몰고 그대로 보도블럭 위를 오르고, 또 어느 날은 옆차를 살짝 긁기도 했다. 몸이 좋지 않으면 일을 하루 쉬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종일 기다려도 콜이 한 통도 오지 않는 날도 있기 때문에 그는 무리해서라도 목표치를 채우려 한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은 콜이 평소보다 1.5배 많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토바이에 오를 수밖에 없다.

▲기자와 인터뷰 도중 이 씨는 콜을 받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전시은
▲기자와 인터뷰 도중 이 씨는 콜을 받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전시은

배달라이더와 대리기사 일을 해도 받는 금액이 모두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 씨는 소속 회사에 수수료 3,500원과 매일 출근비 겸 보험료 3천원 등 한달에 약 9만원이 고정지출로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출근비는 대리기사앱을 켜는 순간 즉시 차감된다. 손님을 받든 안 받든 무조건 지출하는 시스템이다. 거기에 손님이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요금까지 따로 지출해야 한다. 당연히 음료를 사고 머무르는 카페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스틱커피와 자판기,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화장실이 있는 쉼터가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장소다.

서 씨와 이 씨 같은 이동노동자는 여수에 몇 명이나 될까? 현재 여수에는 한진, 롯데, CJ대한통운, 우체국택배 총 4개의 택배업체가 있으며 택배기사는 대략 250명 정도로 추산된다. 등록된 대리기사는 6~700명이며 미등록상태로 일하는 경우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많다. 규모 212㎡의 쉼터 하나를 설치했다고 해서 그들의 안전이 온전히 보장된다고 말하기 곤란한 이유다.

밤낮으로 일하는 이들은 스스로 몸 상태를 살피고 있을까? 놀랍게도 이 씨는 10년 넘게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다. 대리기사로 일하기 전에는 주유소 관리원으로 3년간 일했으나 그때도 4대보험을 들지 못했다. 그는 쉼터에서도 건강검진과 관련된 정보는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이동노동자지원센터는 매달 1회 쉼터 이용자 대상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으며, 부산 이동노동자쉼터 '도담도담' 은 이용자를 위한 출장건강검진을 꾸준히 실시했으나 최근 코로나19로 중단한 상태다. 이용자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 지자체와 달리, 단순한 '장소제공'에 그치는 여수이동노동자쉼터에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 씨가 바라는 것은 24시간 언제든 피로를 풀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22살부터 대리기사 일에 뛰어든 그는 “나이가 드니 계속 돌아다니면 무릎이 아프다”고 고백했다.

기자와 인터뷰 도중 이 씨는 콜을 받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콜이 끊기는 새벽 3시면 그는 지친 몸을 눕히기 위해 다시 쉼터로 돌아올 것이다.

"허벌라게 힘들지만, 그래도 아따 먹고 살아야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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