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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칼럼] 이 세상에 영웅은 없다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공정하지 않은 사회

  • 입력 2022.09.21 14:31
  • 수정 2022.09.22 09:42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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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위엔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 우리 주위엔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이 세상에 영웅은 없다. 있다면 그냥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우린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영웅 찾기에 나선 지가 꽤 오래다. 우린 영웅을 찾기에 앞서 사람에 대한 통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마천은 다음 말에서 사람과 삶에 대하여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人固有一死 )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惑重于泰山)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惑輕于鴻毛)
그것은 죽음을 이용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用之所趨異也)

사마천은 우리에게 ‘영웅(英雄)으로 사느냐, 범인(凡人)으로 사느냐’에 앞서 삶과 죽음 앞에서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영웅으로 살았지만, 새털보다 가벼운 삶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삶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 역사에 선각자는 있지만, 우상은 없다. 영웅은 죽은 지 오래다. 아니 영웅은 원래부터 없었다. 그 우상은 사회나 학교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우상은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 사람은 처음이자 끝이다. 사람속에서 영웅을 찾지 마라.
▲ 사람은 처음이자 끝이다. 사람속에서 영웅을 찾지 마라.

작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병태와 엄석대 그리고 반 친구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우상과 영웅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한편으로 그 영웅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영원할 것 같던 엄석대의 권력도 새로운 담임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권력이며 가짜 영웅임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서울에서 시골 학교로 전학을 온 한병태는 상식과 공정을 말하는, 말 그대로 평범한 학생이다. 다만 다른 친구보다 총명할 뿐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까지 지닌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등장인물이다.

그는 반 전체가 담임이 아닌 반장 엄석대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보고 그 이상한 현실에 끝없이 질문하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 교실은 이미 엄석대라는 가짜 영웅이 철옹성을 쌓아 놓았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맡은 임무를 포기하다시피 한 담임으로 인하여 엄석대는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며 병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반장 엄석대는 청소부터 종례까지 담임을 대신해 반 친구에게 지시를 한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자신이 마실 물까지 당번을 정하여 챙기게 하고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고 귀중품까지 빼앗는 행위를 밥 먹듯이 한다.

이것을 지켜보던 한병태는 마침내 계란이 되어 바위에게 맞선다. 던지고 또 던지지만 결국 상처를 입은 것은 계란 뿐이다. 이상하게도 반 친구들은 이런 병태의 행위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고 방관할 뿐이다. 결국 병태는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고뇌의 결단을 내린다.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불의와 불공정에 물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병태 또한 석대에서 무릎을 꿇는다. 상식적으로 진실이 거짓을 이겨야 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게 삶의 불편한 진실이다.

한편 이 소설에서 새로운 담임으로 인하여 엄석대가 가짜 영웅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진다. 그리고 그는 학교를 스스로 떠나지만 일그러진 영웅답게 학교에 불을 지르고 사라진다. 우리 주위엔 일그러진 영웅만 있을 뿐 “진짜 영웅은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어렴풋이 읽을 수 있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다수의 국민이 반 친구들처럼 억지 영웅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라는 무형의 울타리 속에서 국민은 교육이나 제도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 나는 인간 홍길동이다. 결코 영웅이 아니란 말이다.
▲ 나는 인간 홍길동이다. 결코 영웅이 아니란 말이다.

혹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국가는 가혹하게 그를 다스렸고 싹수가 노랗다고 매스컴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며 그를 두 번 죽인다. 그런 환경에서 다수의 국민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그냥 모른 체 하며 자신의 삶에 열중한다.

현대사를 이끌었던 많은 지도자가 있다. 김구,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등은 결코 우리의 영웅도 우상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국민이 그들에게 위임한 권력을 어떻게 사용했는냐”에 따라 역사에 치욕스러운 이름과 꽃다운 이름을 남겼을 뿐이다.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 환경이나 능력이 같아서 평등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같지 않고 유일하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평등을 개인이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을 우상화하고 영웅화했던 인물이 많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직도 매스컴에서 영웅 이야기를 종종 꺼내곤 한다. 그들이 무슨 영웅이란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그들은 일그러진 영웅이다. 진정한 영웅이나 지도자는 국민이 평가할 뿐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울창한 나무속에 야윈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햇빛을 받지 못한 야윈 나무도 제 몫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생명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 오직 하나뿐인 생명이 놀라 평범이고 위대한 평등이다.

우리 이젠 영웅과 우상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맑게 지워버리자. 우린 모두 평범한 사람일 뿐 그 누구도 영웅으로 태어나서도 안 되고 영웅으로 숭배되어서도 안 된다. 영웅은 또 다른 영웅을 만들 뿐 더 이상 더 이하의 의미는 없다.

추신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방관했던 담임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한병태를 비롯한 친구들은 문상을 왔지만, 결국 엄석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조화 2단을 보내어 자신의 권력을 알린다. 친구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엄석대는 조폭의 보스가 되어 ‘일그러진 영웅’으로 생명력을 이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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