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상담의 선구자로 불리는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다세대 가족치료 이론에서 개인이 적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고와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자아분화’능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 개별성(나)과 집단성(우리) 사이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와 감정을 적절하게 잘 분리하는 것이 ‘인격’이며 인격은 정서적 단위(emotional Unit)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맞다’ ‘틀리다’가 아닌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가족 안에서 불안과 긴장이 만연하고, 이를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는 어른이 가족 구성원 중 힘이 없는 자녀 한 명을 자기편으로 흡수해서 어른들의 문제 상황에 억지로 참여시켜버리면 적절한 자아분화가 이뤄지지 못한다. 이것을 우리는 삼각관계라고 부른다.
삼각관계란?
지연씨는 아버지의 간섭과 통제 때문에 상담에 왔다. 지연씨 아버지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고, 배고픈 사람을 위해서는 어디서든 지갑 열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모두의 존경을 받는 분이셨다. 문제는 집안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집안에서의 아버지 모습은 밖에서의 모습을 한 가지도 찾아볼 수 없었고,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 모든 가족 구성원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괴롭히고, 통제하고, 야단쳤다. 공부, 정리, 친구 관계, 학교생활 분야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가족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원가족은 물론이고 현가족 중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아버지와 말조차 섞지 않는 엄마와 중학생 이후 아버지와 단절을 선언한 오빠로 인해 아버지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음에도 간섭과 비난을 멈추지 못했다. 지연씨도 그런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마저 아버지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너마저 나를 무시하면...
지연씨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지연씨에게 쏟아냈다.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지연씨가 전달해주기를 종용했다. 만약 지연씨가 들었던 내용을 전달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지연씨에게 ‘너마저 나를 무시하느냐’며 몇 날 며칠을 말도 하지 않고 화를 내셨다.
문제는 이런 아버지로 인해 지연씨는 어느새 가족 간 말을 전달하는 연결책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된 엄마는 다시 지연씨에게 불편함을 전했고 분노를 표출했다. 엄마와 아버지의 모든 단어를 전달할 수 없었던 지연씨는 자체 검열을 통해 가족의 평화를 지키되 꼭 전달해야 할 부분을 선별해서 전달하게 되었다.
삼각관계 위에 세워진 가정
지연씨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가정에서 아이를 중간에 두고 부부가 힘겨루기하고 있다. 엄마랑 아빠가 헤어지면 누구랑 살 건지를 정하라고 윽박지르고, 아이에게 두 사람의 감정과 단어를 전달하는 역할을 시키기도 한다.
“아빠한테 밥 먹을 거냐고 물어봐”
“엄마한테 네가 차려주는 밥 안 먹는다고 전해”
그뿐인가?
서로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아이에게 호소하는 때도 다반사다.
“내가 다시 태어나면 너희 아빠랑은 절대 결혼 안 한다. 미쳤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생기는 바람에 내가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는 거야. 너만 안 생겼어도. 내가 여기 있지도 않을 텐데... 진짜 짜증 난다.”라고 말하는 엄마, 그리고 아이의 행동에서 유난히 배우자를 닮아 싫은 점을 부각하기도 한다
“말하는 게 엄마랑 똑같아. 아주 제 엄마 딸 아니랄까 봐!!”
부부는 인연으로 만난 사이지만 부모와 자녀는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즉, 부부는 싫으면 인연을 끝낼 수 있지만 혈연은 내가 선택한 적도 없고, 싫다고 끊어낼 수도 없다. 그렇기에 아이가 경험하는 불안과 혼란은 두 사람의 전쟁보다 심각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편 가르기에 무력한 아이들
부모가 이런 모습일 때 아이는 두 가지 모습을 보이게 된다. 굉장히 순응적이면서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굉장히 도전적이면서 반항적으로 된다. 어느 모습을 해도 누군가에게는 미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자녀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음에도 부모는 이를 멈추지 못한다.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이니?
‘너는 엄마랑 살 거야. 아빠랑 살 거야?’
‘네가 내 편이라는 것을 증명해봐’
‘너 같으면 네 아빠 같은 사람이랑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질문에 아이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부모를 부정하는 건 곧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아이가 취하는 태도가 아니라 아이의 위치와 역할을 다르게 정해놓고 강요하는 부모가 문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이는 아이의 두 가지 모습은 사랑 받으려는 방법이며, 버러짐의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시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연씨는 순응적이며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잘 해내는 아이였다. 자신마저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 가정이 정말로 붕괴할 것 같아서 친구 문제나 학업 문제에서 어려움이 있어서 티 내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고 참아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참으면 언젠가는 해결될 것 같았던 부모 문제가 자신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멈추지 않자 지연씨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들어주던 모습에서 아버지의 말에서 기어이 잘못을 찾아내는 뾰족 새로 변해버렸고, 순응보다는 분노하는 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다. 입안의 혀처럼 굴던 지연씨가 더 이상 내 편이 아니고, 오히려 적이 되어버린 모습에서 배신감마저 들어서 모든 분노를 지연씨를 향해 토해내고 있었다.
자녀의 독립과 자율성을 인정해라
아버지는 지연씨의 독립과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연씨를 탓할 것이 아니라 어린 지연씨 등에 업혀서 아내와 아들의 비난을 피해 온 것에 대해 충분한 사과와 함께 그만 멈추고 어린 딸의 등에서 내려와야 한다.
지연씨는 아버지의 비난과 분노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를 달래주고 싶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30년 가까이 가족의 균형을 위해 ‘나’를 포기하고 살아온 지연씨가 마음만으로 내 편을 들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를 달래주고 싶은 나와 독립하고 싶은 나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건강한 삶을 위해 분리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지연씨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돌봐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편하게 느낄 수 있다. 관계의 습관이 바로 익숙함이며, 익숙한 것을 좋다고 착각해버린다.
지연 씨의 경우 상담에서는 ‘나’에 대한 질문과 탐색을 통해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가족의 소망이 아닌 ‘나’의 소망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