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전희정의 문화이야기③] 웹툰은 청년정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스마프폰 보급과 더불어 발전, 간결하고 강렬한 이야기로 독자 사로잡아

  • 입력 2022.12.15 08:50
  • 수정 2023.01.23 21:04
  • 기자명 전희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출처. Spade "A" 키덜트 놀이터 (wiht 베어브릭) 2012.07.06.
▲ 출처. Spade "A" 키덜트 놀이터 (wiht 베어브릭) 2012.07.06.

나에게 만화는 어린 시절 ‘추억의 소환’ 이다. 만화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내 첫 만화는 만화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아빠의 눈을 피해 오빠, 언니를 따라 몰래 갔었던 1970년대 겨울 어느 날 시작된다. 우리 1남 3녀의 단결은 만화방을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착한 우리 남매들의 이탈은 만화가 부정적이었던 시대를 대신할 수 있다.

연탄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읽었던 만화, 그곳에서 먹었던 불량식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만드는 마법과 같았다.

내 또래는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그 시대(1970~1980)에 만화는 먹으면 해가 되는 불량식품과 같은 저질스러운 (하위문화) 취급을 받았다. 또한, 필자의 중, 고등학교 때(1980~1990)에는 만화방을 가는 학생들은 학생주임(학주)의 감시를 받았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몰래 숨어 다니던 청춘들의 숨구멍 역할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픈' 이야기지만, 그 시대를 살아내었던 기성세대에게는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이다. 이후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때(1990~)부터 문화가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어둡고 칙칙하던 만화방은 밝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탈바꿈했다. 친구들이나 연인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 같은 공간으로 나름의 모양새를 갖추며 유행처럼 흘렀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아빠가 매월 정기적으로 사주셨던 어깨동무, 소년중앙, 여학생 등 제법 두께가 있는 잡지.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만화는 아니었지만 다양함(잡지형식)으로 만화에 대해 그리움을 달래 주었고 새로운 형식의 볼거리를 주었다.

필자에게 만화는 신문 어느 한구석에 있는 만평이기도 하다. 개인의 표현 자유는 물론이고 언론의 자유, 창작물까지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시대에 손바닥 크기가 안 되는 한 컷의 만평은 그 시대를, 그날의 이슈를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역할이 되어주었다.

어린 나는 만화가 흑백이건 컬러이건, 단행본이든 연재이든 내게 주는 즐거움은 언제나 ‘참’ 이었다. 그러나 아빠 몰래 만화방을 다녔던 우리들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당시 만화방은 불량스러운, 학교생활에 비주류로 취급 받았던 아이들이 가는 하류문화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만화가 시대의 청년문화로 변화하는 것은 청년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스스로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원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만화가 나름의 형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류(하위)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온 나와 비슷한 나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어릴 때 흑백만화는 컬러만화로 발전되기까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닌 서사적 이미지라 볼 수 있겠다. 내가 살아왔던 시대의 만화는 ‘본다’라는 것보다 ‘읽는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다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고속 인터넷의 보편화, 모바일기기화면의 발달 등으로 고해상도 컬러 이미지는 글에 집중보다는 시각적 이미지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다.

흑백만화 속 주인공의 드레스가 컬러로 달라져 나타났을 때(지금으로 비추어 보면 너무나도 초라한 색깔이지만) 그전에 집중하던 글이 그림으로 옮겨져 갔었기 때문이다.

▲왼쪽 강풀 작가(출처. 포토뉴스2013.12.19)와 오른쪽 강풀 만화 한 장면 (출처. 블로그2021.09.09.)
▲왼쪽 강풀 작가(출처. 포토뉴스2013.12.19)와 오른쪽 강풀 만화 한 장면 (출처. 블로그2021.09.09.)

기성세대에게는 만화의 주류였던 문화는 2004년 강풀의 순정만화의 대중적 성공을 분기점으로 웹툰이 만화를 점령해 가고 있었다.

에피소드 중심으로 창작되던 인터넷 만화의 트렌드를 깨고 ‘서사웹툰’이라는 형식을 제시해 우리 만화의 지형을 뒤바꿔 놓은 디지털 스토리텔러 강풀의 웹툰의 시작은 수많은 웹툰 작가들을 탄생시켰으며, 웹툰 작가가 유명세를 타고 각종 연예 프로그램까지 출연하게 되고, 그들은 마치 연예인처럼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만화가 지면을 여러 컷으로 나누어 글이 장면을 설명하며 한 장씩 넘기는 형식이라면 웹툰은 한 장면이 한 컷으로, 그림이 강조되어 보여주는 형식으로 ‘읽는다’에서 ‘본다’로 만화의 기존 틀을 파괴해 버렸다.

이후 웹툰은 강렬한 색채와 컴퓨터그래픽으로 섬세함을 더해 2011년 무렵 신문이나 잡지 등 지면으로써 표현하던 방식이 온전히 웹 서비스, 온라인 방식으로 형식이 탈바꿈되면서 한국에서 웹툰은 대규모 사업이자 젊은 층 사이에서 오락 문화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웹툰의 주요 독자층이 젊은 세대가 된 것은 빠른 스마프폰의 보급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웹툰의 서비스가 고용량 이미지와 다양한 작품을 독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도 한 몫을 했다.

웹툰은 2012년 만화진흥법 입법으로까지 연결되었으며 만화교육기관(대학교 만화관련학과)이 생겨나고 인터넷 콘텐츠로 간주되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규제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그럼으로 웹툰은 주류문화로 발돋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웹툰은 이제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으로도 사용될 만큼 웹툰의 영역은 과히 청년문화에 그치지 않고 있다.

▲네이버웹툰 유미의 세포들
▲네이버웹툰 유미의 세포들

그러나 어느 시대를 살더라도 그 시대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젊어서 향유했던 문화가 비록 하류문화라고 하더라도 추억으로 포장 해버리는 이상한 속성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향유층이 지닌 동시대 정서를 노골적인 유머나 해학으로 풀어 낼 수 있는 것은 만화, 웹툰 만큼 간결하고 강렬한 것은 없다는 필자의 생각은 웹툰은 청년문화에 정서적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청년층의 주류문화로 이미 정착되었다는 생각이다.

필자도 서글프지만 이미 기성세대가 되었기에 우려스러운 마음 한 조각을 표현한다면 웹툰이 청년문화에 바르게 안착하여 승화되려면 사회적 좌절을 쉽게 표현하지 않아야 하며, 웹툰 작가가 개인의 명성과 상업적 성공에 부각되려고 하여 무분별한 창작보다는 시대성을 반영하는 유희문화로 사회적 서사를 담아 낼 수 있는 세련된 문화의 한 영역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김시경 2022-12-15 12:39:51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