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여수 흥국사에서 봉축법요식이 열렸다.
구름이 끼어 조금은 흐린 날씨에도 불자들은 영취산 흥국사에 모였다. 4월 초파일, 대웅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천수경을 외었고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절 밖에서 가만히 합장했다.
절 앞마당에는 색색의 연등이 가득했다. 본격적인 법요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곳곳에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아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외는 주지스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흥국사 주지스님은 신도들을 위해 준비한 말씀을 전했다.
“오늘은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입니다. 부처님은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사월 초파일 탄생하셨습니다. 왕위를 계승하고 태평세대를 이끌 수 있었으나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깨달으시고 왕궁의 부귀를 내려놓고 출가하여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참선 후 성도하셨습니다.
부처님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며 다짐하고 또 분발합니다. 이후 참 나에 눈을 뜨면서 새 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생사 없는 진리를 믿고 실천해 해탈하는 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곳 흥국사는 마음이 청정한 사람들이 와서 쉬어가는 곳입니다. 마음이 바르고 깨끗하면 누구나 성자입니다. 초하루 법회에서 법문을 들으면 번뇌와 망상은 불심으로 변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3천년이 된 오늘날에도 전세계적으로 봉축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설 이후로 오랜만에 흥국사를 찾은 70대 정 씨는 가만히 불경에 귀기울였다. 집에서도 자주 불경을 외곤 한다는 그는 흥국사야말로 마음의 휴양지라고 말했다.
80대 김선자, 명창옥 부부는 아침 일찍 광양 운암사를 찾은 뒤 흥국사로 향했다. 시간이 나면 전남의 다양한 절을 찾는다는 부부는 함께 국보로 지정된 흥국사를 찾아왔다.
“원래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을 세 곳 다녀오라 했어요. 그래서 해년마다 초파일에 세 곳의 절을 찾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 여수 남산동에 살았는데 그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향일암을 다녔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하고 좋습니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욕심도 버리고 부처님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합니다. 죄 짓지 않고 남을 도우며 사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그러려면 욕심도 버려야겠죠.”
신기동에서 온 70대 김장곤 씨는 명절이나 부처님 오신 날이면 흥국사를 찾는다.
“불자는 아니지만 일년에 대여섯 번 절에 옵니다. 스님이 외는 불경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곳 삼일동이 고향이라 젊은 시절에는 흥국사에서 자주 부처님을 뵙고 가족 모두 행복하기를 소망했습니다.
1960년대, 이곳이 삼일면으로 불리고 여수산단이 입주하기 전, 흥국사 주변에는 마을이 많았어요. 그때는 초파일이면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는데 지금은 그때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씩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관불의식을 앞두고 사람들은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으며 절을 한바퀴 돌며 법당의 부처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아기부처님께 목욕을 시키는 관불의식이 끝나고 절을 찾은 사람들은 다함께 준비된 비빔밥을 나눠먹었다. 진달래마을 신미경 원장도 함께 공양봉사를 했다.
“다양한 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비빔밥은 공생과 화합, 평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음식은 어느 한 재료가 돋보이면 맛있을 수 없죠. 이처럼 우리도 늘 주변 사람과 함께 어울려 조화롭게 화합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준비했습니다.”
이날 여수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의 여성들도 흥국사에 모였다. 아침 일찍부터 절에 모여 음식을 준비했다는 이들은 10년째 절에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공양을 하고 있다.
태국에서 왔다는 닛폼 카사린 씨는 이제는 한국이름 유리나가 더 익숙하다. 그는 고구마반죽을 둥글게 빚어 튀긴 후 컵에 담아 절을 찾은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함께 한 카사린 씨의 남편은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에 음식을 준비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싶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