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교육연구소 이의엽 소장이 ‘노동존중사회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강의에 나섰다.
이의엽 소장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 새세상연구소 이사, 통합진보당 정책위원회 공동의장, 제19대 총선 통합진보당 상임선대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11일 오후 6시 반 여수시이순신도서관에서 열린 여수시민학교에서 이 소장은 강의 참여자에게 “왜 노동이 존중되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에서 그는 “인권은 곧 노동력”임을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인권의 보장이다. 그러나 인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노동권은 제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인권이 곧 노동권이다.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2800만명 중 노동자는 2100만명이다. 즉, 4명 중 3명이 노동자이고 시민의 75%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다. 노동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이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여수에 오니 ‘기업하기 좋은 도시 여수’라는 글을 보았는데 이는 ‘노동하기 힘든 도시’라는 뜻과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 일자리가 없으면 소득의 90%가 사라진다. 그러니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만을 외치는 것이다.
여수는 전형적인 노동자의 도시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노동자를 위한 도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조직률이 높고 힘이 세다면 정치인이 노동을 앞세우겠지만 기업을 앞세우고 있다.”
대한민국, 초고속 인터넷 보급도 노인빈곤율도 ‘세계 1위’
덧붙여 그는 한국이 사회임금이 낮은 점을 지적했다. 사회임금이란 사회구성원이면 누구에게나 노동 여부에 관계없이 지급하는 돈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스웨덴 노동자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 경우 최장 35개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이후의 고용은 정부의 책임이다. 반면 한국은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최장 9개월이고 이 역시 20년 이상 근속해야 받을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에서 사회임금비중이 전체 100 중에서 7.9라는 낮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2010년 기준) 미국 17, 스웨덴 48.5, 프랑스 44.2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치다.
이 소장은 “한국은 사회보장임금을 높여야 한다. 사회보장임금을 높이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의 역할 중 하나가 세금을 걷고 이를 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설명하면서 국민의 세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한국을 지적했다.
“한국은 GDP가 세계 10위 안에 들지만 예산을 낭비하고 있으므로 복지가 취약하다. 이는 안 써도 될 곳에 세금을 쓴다는 뜻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망 세계 1위인 한국은 노인빈곤율도 1위이다.
지난 2015년 광주광역시 예산을 뜯어보았더니 지하철 적자가 400억원이 나왔다. 이용율이 적은 지하철에 사용할 400억원에서 200억원이면 대중교통을 무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적자에도 지하철을 설치한 이유는 이 공사가 누군가에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 지하철 노선은 조선대학교, 전남대학교를 지나가지 않는다. 지하철 노선이 왜 이렇게 휘어가는 것일까. 이곳 토지 주인의 힘이 세다는 뜻이다.
여수-남해해저터널도 마찬가지다. 다리를 놓는 것이 저렴한데 땅을 파려 한다. 프랑스와 영국의 도보해역은 관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 서로에게 미루느라 난리인데 한국의 해저터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헌법적 권리를 주장했더니 범죄자 된 노동자,
임금이란 “어제와 같은 오늘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날 강의에서 이의엽 소장은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언급하며 노동자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이 잘못됐음을 꼬집었다.
이 소장은 “(국가가) 헌법에 규정된 노동단체를 범죄단체로 보고 있다. 이는 노조활동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라며 노동자를 건폭으로 규정한 윤석열 정권에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헌법 33조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말로 안되면 행동하라는 것이다. 헌법적 권리를 주장했더니 범죄자로 몰아간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법이 지켜지지 않으며 현실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2023년 대한민국 노동자는 헌법적 권리를 주장했더니 폭력배가 되었으며 그것을 죽음으로 항변하는 시대가 됐다.
노동존중의 기본은 임금이다. 노동자는 겸업을 하지 않는 이상 소득이 임금이기 때문이다. 임금의 정의는 ‘노동력의 재생산비용’이다. 즉 어제와 같은 오늘이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론적으로 노동력이 재생산되어야 공장에서 물건 생산이 가능하다. 이는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지역봉쇄를 경험하며 깨달았다. 쿠팡 노동자는 야간근무와 낮근무가 같은 임금을 받는데 이는 한국이 야간노동을 권장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노동자와 함께 움직이는 정당의 활동이 중요함을 힘주어 말했다.
“노동권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노동조합의 힘(조직력)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정당의 힘(지지율)이다.
노동이 존중받으려면 노동자의 편을 들어주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노동권은 결국 임금이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보는 것이고 그러려면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높여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조합비로 움직이지만 정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자금을 보조받는다. 그러므로 정당의 활동이 중요하다. 정당이 없으면 아무리 투표를 해도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북유럽 국가의 정치인은 선거철에 노동자를 찾는데 이는 종친회, 동문회를 찾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10년 넘게 노동을 연구해온 이 소장은 노동에 관한 사회적 상식과 합의가 재정립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됨을 몸소 체득하고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실천이 사회적 합의를 불러오고 이후 모두의 상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