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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너 스스로 알아서 해!" 부모의 말, 책임일까 결정권일까?

부모의 결정 안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들
선택은 책임질 수 있어야 하며 사전에 배워야
책임이 빠진 결정권은 아이를 좌절하게 만들어

  • 입력 2023.10.09 14:25
  • 수정 2023.10.09 14:36
  • 기자명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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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감과 외로움에 지친 아이
▲ 소외감과 외로움에 지친 아이

고등학교 1학년 지은이는 심각하게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보다는 취직을 목표로 고등학교를 정하고 갔는데 예상과는 달리 교육과정도 일반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학습위주의 교육인 데다가 학교 규칙이 너무 빡빡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친구끼리 같은 고등학교를 진학하다 보니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또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외감과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한 시기이다 보니 친구가 없이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위경련과 배탈을 앓았고, 어지럼과 편두통도 호소했지만, 아버지는 지은이의 힘든 상황에 대해 공감이나 위로보다는 “공부에 더 집중하라"는 말로 일축해 버렸다.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지은이는 상황에 비해 화를 크게 냈고 분노조절 장애라는 지적까지 듣게 되면서 상담에 오게 되었다.

지은이 아버지는 학생이 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의 역할을 하듯 지은이에게도 자신의 역할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해야
▲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해야

자퇴하겠다고 고민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상담에 오는 부모님의 바람은 딱 한 가지다. 십분 양보해서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학교만 다녔으면 한다는 것이다. 아낌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남들 다 다니는 학교도 못 다니겠다고 말하는 자식을 보면 부모 속이 얼마나 타들어가고, 속상할 지 짐작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에게 상담사는 학교를 보내는 상담은 없다고 정중히 말씀드린다.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안 바뀌는 부모를 본 적이 없다. 덧붙여 “다만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고 난 뒤에 학교에 가보겠다고 하는 아이를 말리지도 않는다“고 하면 그제야 안심한다.

매슬로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욕구 중에 자아실현의 욕구는 가장 상위에 있는 욕구로 그것이 채워지기 위해서는 그보다 하위욕구인 결핍의 욕구, 안정감에 대한 욕구, 소속감에 대한 욕구, 자존감에 대한 욕구, 심미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다 채워져야만 비로소 자아실현의 욕구가 채워진다고 했다.

지은이의 경우 안정감과 소속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자아상 역시 바람 빠진 공처럼 쭈글쭈글해져 있다. 그러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것이다.

지은이는 자퇴 후에 어떻게 지낼 것인지에 대해 일-월-년을 기준으로 계획표를 만들었고, 인생 그래프까지 그려서 아버지께 보여드렸지만 결국 자퇴를 하지 못한 채 상담에 오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성공의 열쇠이며,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조금 시야를 넓혀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세상에 수만 가지 직업이 있고, 수만 가지 감정이 있고, 수만 가지 성향의 사람이 있고 그들을 상대하고, 그것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원과 기술, 능력이 필요하듯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 역시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중간 지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옛말에 멍석 깔아주면 하던 짓도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자퇴하겠다고 찾아온 아이들에게 이제껏 자퇴한 학생 중에 가장 멋진 자퇴를 하기 위해 오늘부터 우린 한 팀이라고 동맹을 맺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학교, 친구, 선생님, 과목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좋은 점과 싫은 점을 찾아보고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아있어야 한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에 대한 예외 상황도 탐색하면서 상담하다 보면 시간은 가고, 방학이 오고, 방학이 지나면 그냥저냥 다녀보게 된다.

▲ 자녀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 자녀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자퇴를 포기해서가 아니라 자퇴가 유일한 선택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결정하는 데 부모가 반드시 개입해야 할 부분과 개입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에 있어 부모는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되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묵인해서도 안 된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이유는 반복이 익숙함이 되고, 그것이 성격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며 어릴수록 안전을 위해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더 많이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필요한 삶의 기술은 열 살 이전에 터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모는 아이의 삶을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녀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지 검열해봐야 하며, 그리고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책임지려고 애쓰고 있는지를 살피고 아이에게 선택이라는 명분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지 봐야 한다.

여섯 살 영재는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했고, 친구들을 괴롭혔으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서 상담실에 방문했다. 전형적으로 산만함과 충동성이 관찰되었으며, 언어사용이나 사회성, 표현력에서 지능검사가 필요함을 시시했다. 영재 어머니 역시 아이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 것 같다면서 지능검사 일정과 주의 집중력 훈련 일정을 잡고 갔는데, 다음날 전화가 와서는 영재가 하고 싶지 않으니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

여섯 살 아이는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며, 해결책을 스스로 제시하지 못하며 언어가 세련되지 못하고, 관계 불편감을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다. 이런 아이에게 자기 삶과 문제 해결에 대한 결정권을 주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중3 혜지 엄마도 그랬다. 혜지는 비행으로 인해 경찰서 연계로 상담에 온 친구로 심리검사 결과 상당 수준의 우울과 자살 사고가 있어서 어머니께 연락을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어머니는 지금의 상황을 모두 혜지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예전부터 이런 문제가 있었고 상담실에 데려갔었는데 본인이 안 한다고 해서 안 했는데 부모가 뭘 더 해야 하느냐고 되려 역정을 내셨다. 그러고는 지금 만나는 친구, 불안한 학교생활을 용돈과 통금 즉, 힘으로 통제하고자 했다.

▲ 아이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스스로 선택하라 떠밀고 비교적 간단한 문제는 부모가 해결하는 현실
▲ 아이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스스로 선택하라 떠밀고 비교적 간단한 문제는 부모가 해결하는 현실

혜지는 자신이 상담과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선생님이 엄마에게 얘기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너무 어린 혜지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힘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힘들어할 때마다 ‘네가 안 한다고 했잖아!”라는 엄마의 말로 인해 자살 생각으로 옥상에 몇 번이나 올라갔을 때도, 가장 편하게 죽는 방법에 대해 검색했을 때도 엄마에게조차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건 선택에 따른 책임까지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이가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친구와 놀잇감은 부모가 정해주고, 아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삶과 건강은 아이에게 정하라고 한다.

이혼을 앞둔 부모가 아이에게 엄마랑 아빠 중에 선택하라고 하는 것! 아이는 선택을 하지만 선택의 기쁨보다는 선택하지 못한 또 한 명의 부모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선택이라는 건 선택하는 사람의 능력에 적합해야 하고, 기회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연령에 적합해야 하고, 철회했을 때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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