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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당신의 SELF, 잘 지키고 계시나요?

스스로 해보려는 용기와 도전
나를 믿어주는 마음
타인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사는 삶이 바로 'SELF'

  • 입력 2023.10.14 09:45
  • 수정 2023.10.14 10:33
  • 기자명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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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 있어. 출처 pixabay
▲  누구나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 있어. 출처 pixabay

‘SELF’는 우리의 삶 곳곳에서 쉽게 쓰이고 있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스스로’라는 의미의 이 단어에 대해 고민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의 지시나 결과 때문이 아니라 나의 욕구를 내가 알아차리고,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고 정보를 조직화하면서 결과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만족해하는 이 모든 과정이 바로 ‘SELF’가 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나보다는 타인에 의해 더 많이 불리지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는 걸 알게 되고,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었을 때 내가 나임을 알게 됩니다. 마치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꽃이 아니고, 또한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수동적/의존적인 존재도 아닙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나 스스로 나를 꽃이라고, 나무라고, 때로는 구름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호칭으로 불릴 때조차 호칭으로 인해 존재감이 커지거나 작아져서도 안 됩니다.

“김 대리는 참 일을 잘해! 우리 회사에 딱 필요한 인재야!”
“우리 며느리는 야무져서 흠잡을 데가 한 군데도 없어.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들어왔을까?”
“우리 남편은 외모, 능력, 성격까지 다 완벽해…. 딱 내 이상형이야”
“강 대리는 사람이 참 친절해서 같이 있으면 참 편안하다니까”
“엄마가 시키는 대로 다 하니까 얼마나 이뻐! 역시 내 딸은 착해!”

이런 칭찬과 피드백을 들으면 누구라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이런 피드백은 타인의 만족감일 뿐 온전한 ‘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평가로 인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다음 스텝을 망설이는 사람이 더 있습니다.

부장님은 나를 믿고 계시는데 괜히 이런 말 했다가 나에게 실망하면 어떡하지?’

‘어머님이 나를 더 이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엄마가 나 때문에 속상해하시면 어떡하지?’
‘내가 친절하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더 이상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 거야’

▲ ⓒ출처: pixabay
▲ ⓒ출처: pixabay

나의 욕구를, 생각을, 감정을 누르는 핑계를 기어이 찾아내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스스로, 나답게 잘 해내고 있는지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당당한 존재일까요? 타인이 나의 삶과 나의 존재를 평가하도록 계속 내버려 두어야 할까요?

흔히 마흔을 불혹이라고 합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어떤 유혹이 없어도 흔들리는 나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 나이가 바로 불혹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자신에 대해 회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간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젊지만은 않은 몸뚱이는 심심치 않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줍니다. 오죽하면 허파 꽈리 끝이 어디인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만큼 육체의 존재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죠.

▲ 고통을 참지 못하고 부리 찧는 것을 멈춘다면 더 이상 부리 사냥이 어려운 독수리는 얼마 안 가 죽고 만다. 출처: pixabay
▲ 고통을 참지 못하고 부리 찧는 것을 멈춘다면 더 이상 부리 사냥이 어려운 독수리는 얼마 안 가 죽고 만다. 출처: pixabay

독수리는 사십 년을 살고 나면 스스로 바위에 부리를 찧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고, 그 고통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죠.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부리를 전부 깨서 버리면 새 부리가 자라서 다시 사십 년을 더 살 수 있습니다. 만약 고통을 참지 못하고 부리 찧는 것을 멈춘다면 더 이상 부리 사냥이 어려운 독수리는 얼마 안 가 죽고 맙니다.

인간에게 있어 ‘부리’는 바로 ‘SELF’입니다. 그동안 누군가의 딸로, 아들로, 아버지와 엄마, 며느리 사위, 직위와 직책으로 살아오던 나에게 비로소 ‘나’를 선물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상담에 ‘SELF’가 빈약한 상태로 옵니다. 이 말은 자신보다는 타인 위주의 삶을 살고,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타인이 만들어 준 ‘나‘ 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신경 쓰고 있는 ‘나’가 바로
되고 싶은 이상적인 나와 살아내고 있는 초라한 현실의 나와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 차이가 클수록 자존감은 낮아지게 되죠.

상담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를 묻기도 합니다.

'원장님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고민으로 상담에 오나요?’
‘원장님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심각한 건가요?’
‘상담받는 거 알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 내 삶의 지도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해
▲ 내 삶의 지도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해

나의 옷을 보고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뭐라 할 수도 있고 내가 고른 메뉴를 누군가는 못마땅해할 수도 있습니다. 관점, 성격, 가치관이 다름으로 인해 도출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어릴 때 동요로 배운 것처럼 똑같은 건 젓가락 두 짝이면 충분합니다.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SELF’ 찾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일 경우 매번 패배감과 좌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상을 보는데 엄마가 세 살짜리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는 리더니? 따라가는 사람이니?“
세 살 아이가 대답합니다.
“나는 리더에요”

엄마가 다시 묻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가 대답합니다. “내 생각이니까요”

혹시 이 아이가 세 살이 아니라 서른 살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생각과 결정을 자신이 믿어주는 그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이에게 나를 사랑하는 법, 즉, 나를 사랑함으로써 내 삶의 지도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삶의 모든 선택과 과정에서 주어가 ‘나’여야 합니다.
자, 이제 저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리더인가요? 따라가는 사람인가요?
여러분은 자기 삶에 리더로 살고 싶은가요? 누군가를 따라 하면서 살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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